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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장세전망 한판승부 여의도 ‘후끈’
[포커스] 장세전망 한판승부 여의도 ‘후끈’
  • 이원재 기자
  • 승인 2001.08.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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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증권 알프레드 박 “700선까지 반등” vs 대우증권 이종우 “500선도 위험” “연말까지 주가지수 700선까지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지금이 터닝포인트다.
”(알프레드 박) vs “경제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500선도 위험한 상황이다.
”(이종우)
두명의 투자전략가가 하반기 증시전망을 놓고 한판승부를 벌이면서, 여의도를 다시 한번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분석틀뿐만 아니라 경력, 성격, 직업철학 등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면을 보여주면서 대결을 더욱 흥미로운 국면으로 끌어가고 있다.
“오른다”는 전략가는 ‘해외파’인 알프레드 박(한국명 박일수·34) 동양증권 시장분석/전략팀장이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립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저지, 서울,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등을 오가며 펀드매니저·애널리스트 생활을 했던 그는 “우리는 장기적 전망에 대해 확신을 갖는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다”고 밝히는 등 분석에서도 해외파 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는 “종합주가지수 500선까지 위협받은 한국증시가 일단 하락세에서 벗어나 반등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과감하게 진단했다.
최근의 나스닥 급락세에 따른 국내증시 하락에도 “불안할 이유없는 정상적 조정”이라며 여전히 상승쪽에 힘을 실었다.
반면 “내린다”는 전략가는 ‘토종파’인 이종우(39)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이다.
이 팀장은 알프레드 박 팀장과는 대조적으로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애널리스트 생활을 시작해 대우투자자문을 거쳐 현재의 대우증권 리서치센터까지 사실상 한 직장에서만 12년을 일했다.
분석에서도 대우증권의 전통에 맞춰 ‘기본에 충실한’ 모범생 스타일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시험받았지만 꿋꿋이 지지받았던 500선의 방어력이 8월 이후에 급격히 약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면서 알프레드 박 팀장과 정면충돌했다.
두 사람 사이의 입씨름은 현재 한국경기 회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전망을 놓고 우선 벌어진다.
이종우 팀장은 ‘주가는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한다’는 원론을 내세워 “8월을 기점으로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한국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키는 어차피 미국이 쥐고 있다.
미국 IT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한국 경기도 살아나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대미 IT 수출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을 위시한 세계 IT 경기가 올해 연말까지는 도저히 회생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중병환자라는 데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시장조사 회사인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2분기 전세계 PC 출하량은 3040만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9% 감소했다.
이는 86년 이후 전년동기 대비로는 첫 감소 기록이며, PC의 신규수요가 줄어드는 단계가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휴대전화도 수요둔화에 시달리고 있다.
핀란드 노키아와 스웨덴 에릭슨은 매출 전망치를 이미 세차례나 하향조정했다.
그러나 알프레드 박 팀장은 감연히 말한다.
“IT 업종의 장기전망은 불투명하지 않다.
다만 IT 관련 소비와 투자의 단기적 조정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확실치 않은 것뿐이다.
미국 가구의 PC 보급률은 아직 50% 수준이다.
그런데 앞으로 PC는 텔레비전처럼 모든 가정에 보급될 것이다.
절반의 PC 수요가 충족되지 않은 채 수요로 남아 있는 IT 분야는 여전히 기회의 시장이다.
기업들 역시 IT투 자를 잠시 유보하고 있을 뿐 포기한 게 아니다.
분석틀·성격 판이하게 달라 두 투자전략가는 시장분석틀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근본적으로 알프레드 박 팀장이 보기에 다른 국내 투자전략가들은 시장을 분석하면서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
주가상승 동력은 세가지다.
첫번째로 기업이익의 증가, 두번째로 이익증가 기대가 커지면서 나타난 주가수익비율(PER) 등 프리미엄의 상승, 세번째로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시장심리 때문에 과매수·과매도가 일어나면서 왜곡됐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힘이 그것이다.
다른 투자전략가들이 미국 IT 경기를 걱정하며 내놓는 보수적 전망은 대부분 첫번째 원인에서 주가상승 동력을 찾는 분석틀에서 나오는 것이며, 잘 봐줘야 두번째 동력까지 고려된 결과다.
여기서 촛점이 맞지 않는다는 게 박 팀장의 얘기다.
그가 한국증시의 상승세를 믿는 이유는 세번째 동력에 있다.
금융권 기관투자가나 증권사 투자전략가들이 주가의 단기적 움직임에는 관심이 많으면서도 장기적 분석틀인 기업이익 관련 동력에만 주목하는 것을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펀더멘털보다 주가가 더 싸지거나 비싸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고, 현재 한국 증시는 주가가 상당히 싸진 상태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단기, 즉 1년 내로 시야를 좁힐 때 한국 증시를 움직이는 것은 어차피 외국인투자자들의 동향입니다.
여전히 외국인들의 눈에는 한국이 펀더멘털과 규모와 성장성을 동시에 갖춘 흔치 않은 투자처이고요. 적정주가는 종합지수 640~680선이죠.” 반도체시장 바닥론이 퍼지면서 IT 경기의 반등조짐이 일어나는 것은 훌륭한 주가상승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로 이어진다.
그러나 거품을 싫어하고 근본을 숭상하는 이종우 팀장은 생각이 다르다.
자꾸만 IT 경기의 회복을 얘기하는 것은 99년 급등을 경험한 이들이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부르짖는 꿈일 뿐이다.
“물론 IT 업종이 장기적으로 지금 분위기보다는 훨씬 좋아질 수 있다.
투자도 물론 계속 이어질 수 있다.
” 그러나 앞으로의 IT 산업 발전이 IT기업 주가에 끼치는 영향은 지금까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팀장은 증권업종의 사례를 든다.
87년부터 89년까지 한국 주식시장에는 증권주 열풍이 불었다.
그것은 99년의 IT 열풍에 견줄 만하다.
3년만에 주가가 100배까지 뛴 종목들이 속출했다.
89년을 정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든 증권 주가는, 94년과 99년에 증권사들이 사상최대 이익을 잇따라 경신했는 데도 끝까지 89년의 고점에 미치지 못했다.
사실 IT 주가의 회복을 외치는 이들은 월스트리트의 주류 논리를 따르고 있는 것인데,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은 지난해 이래 끊임없이 오류를 범하면서 허황된 시장 기대의 주범이 됐다는 게 이 팀장의 생각이다.
그들은 처음에 “신경제에 경기둔화는 없다”고 하더니, 경기둔화가 정작 시작되자 “연착륙이 온다”고 외쳤다.
그러다 연착륙마저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자 “V자형 회복이 가능하다”며 기대를 부풀리다가, 결국 지금은 4분기가 되면 회복된다는 미망에 젖어 있다.
성장성을 최대한 반영하면서 부풀어오른 주가 거품은, 한번 터지고 나면 나중에 내실이 채워지더라도 영원히 이전의 영광을 되찾기 어렵다는 게 그의 논리다.
IT 업종은 이미 성장성을 최대한 반영시킨 주가를 경험해 버렸으므로, 재부상은 힘들다는 얘기다.
경험상 거품을 극도로 혐오하는 ‘모범생 투자전략가’의 모습이다.
알프레드 박 팀장은 저돌적이고 직관적이다.
이종우 팀장은 보수적이고 이성적이다.
성격조차 분석결과와 꼭 닮은 두 사람 가운데 당장은 누가 옳은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뜨거운 싸움도 주가 움직임에 따라 얼마 가지 않아 차갑게 끝나버릴 운명인 것만은 분명하다.
시장전망이나 철학에서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의 논쟁은, 시장을 겁내지 않고 스스로를 드러낸 정직한 싸움이라는 데서, 어쨌거나 많은 투자자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증권가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애널리스트 역할론도 정면충돌
“인기와 예측은 양립하기 힘든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저는 예측을 택합니다.
” 대우증권 이종우 팀장은 최근 다른 투자전략가들의 공격적 분석에 대해 우회적인 비판의 일침을 놓았다.
사실상 최근 “7월23일부터 8월10일 사이에 반등시점이 온다”, “이번 반등때는 640~680선까지 오른다”는 등 구체적인 숫자를 적시한 예측으로 시장의 주목을 끈 동양증권 알프레드 박 팀장을 겨냥한 얘기다.
사실 예측을 정교하게 하려면 수많은 경제지표들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최대한의 지표들을 넣어 분석틀을 갖추더라도, 내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일은 사실상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기에 분석결과 발표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게 이 팀장의 얘기다.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고 딱 떨어지게 결론을 얘기해주는 것은 새롭고 매력적인 일이긴 하지만, 주관적 전망을 객관적 수치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기 쉽다는 얘기다.
알프레드 박 팀장은 전혀 다른 생각이다.
“남들도 모두 할 수 있는 얘기를 왜 합니까? 누구도 할 수 없는 창의적인 분석을 정확하게 내놓는 것이 투자전략가의 역할입니다.
” 투자전략가가 내놓는 상품은 보고서다.
이 상품의 주요 수요자는 투자자들이다.
투자자들은 수많은 정보에 노출돼 있고, 전략가의 보고서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일 뿐 절대적인 게 아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분석을 최대한 창의적으로 가공해 아주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게 보고서를 최선의 상품으로 만드는 길이다.
“애널리스트는 이성과 논리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고도의 직관과 창의력을 요구받는 직업이죠.” 알프레드 박 팀장의 애널리스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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