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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혼의 바캉스를 떠나자
[문화] 영혼의 바캉스를 떠나자
  • 조연현 <한겨레> 문화부 기
  • 승인 2001.08.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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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휴가철마다 ‘어디로 갈 것인지’가 고민이다.
많은 사람들은 ‘고민해봐야 뾰족한 수도 없더라’며 으레 바다와 산의 인파 속으로 ‘덩달이 피서’를 떠나곤 한다.
그리고 휴가를 다녀오고 나서는 몸만 피곤해졌다고 투덜거린다.
휴가가 몸과 마음에 휴식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몸의 피로감만 증폭시키거나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면, 그 휴가는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바쁜 직장인들에게 휴가는 그냥 그렇게 보내버리기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다.
하루하루 정해진 스케줄에 휩쓸려 살아가다 보면 정작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기란 쉽지 않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 요즘엔 휴가 때 자기 삶을 성찰하면서 스트레스와 고민을 해소해보기 위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나서는 이들이 적지 않다.
휴가와 방학 기간에 수행·수도나 심성개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천주교인들의 묵상을 돕는 피정집은 물론, 불자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유명 사찰들이 실시하는 3박4일 또는 4박5일의 단기 출가도 몇개월 전에 예약이 마감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서구에서 먼저 시작됐다.
유럽에선 이미 5~6년 전부터 여름철에 바다나 산으로 가는 피서에서 벗어나 수도원으로 가는 ‘영혼의 바캉스’가 유행이다.
프랑스의 경우 수백곳의 수도원들이 여름철이면 ‘영혼의 바캉스객’들을 맞고 있는데, 겨울이나 봄에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경쟁률이 높다.
대부분의 수도원이 절경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 가는 것만으로도 피서가 될 뿐 아니라 수행·수도에 참여하면 마음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깨끗이 씻고 삶을 재충전하는 데 도움도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과거 휴가철과 주말에 골프 등의 레저만 즐겼던 데서 탈피해, 요즘은 명상을 통해 내면여행을 떠나는 흐름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이런 휴가 프로그램들은 참여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고 평안을 되찾도록 돕는다.
부부간이나 부모·자식간 불화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직장 상사나 동료와의 갈등 때문에 고통을 겪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성격 때문에 고민이 많지만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내면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해 성실히 자신을 프로그램 속에 몰입시킬 경우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고,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주입식 교육과는 다르다.
자신에게 깊은 의문을 품게 하고 그 의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든가, 아니면 어떤 행동을 통해 자신의 성격이나 습관의 사슬을 끊도록 한다.
가령 문경 정토수련원의 ‘깨달음의 장’이나 경기도 화성 야마기시 마을에서 하는 연찬회에서는 프로그램 안내자가 빙 둘러앉은 참여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다.
다른 사람들만을 시비하던 이들이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마음을 내면으로 돌려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다.
깨달음의 장을 한번 들여다보자. “당신은 누구입니까?” “박은영입니다.
” “박은영이라는 글씨가 당신입니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몸입니다.
” “어렸을 때의 몸과 지금의 몸과 수십년 후의 몸이 모두 다른데, 어느 것이 진짜 당신입니까?” “….” “당신은 누구입니까?”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 “만약 두 아이만 있었다면, 당신이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마음입니다.
” “어제의 마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모르겠습니다.
” “그럼, 당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 이처럼 숨막힐 듯한 문답이 계속되고, 답변자들의 말문이 완전히 막히면서 드디어 ‘정말 나는 누구일까’라며 내면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이름도, 직위도, 종교도, 이데올로기도, 학력도, 성도, 지역도, 국가도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지금까지 외부세계와 완전히 벽을 쌓아놓았던 나만의 ‘아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좀더 자유롭고 평안한 본성을 되찾을 수 있다.
잃을 것은 사슬, 얻을 것은 영혼의 자유 요즘엔 원불교의 ‘마음공부 일기’도 크게 유행이다.
이 마음공부는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고 종교색도 없어, 다양한 종교인들이 이 교육에 참여해 자기 마음을 살피고 있다.
이 마음공부 일기는 우리가 어릴 때 쓰곤 했던 반성문 투의 일기와는 달리 자기 마음의 감정이 일어나서 사라질까지 전 과정을 찬찬히 지켜보며 거울을 들여다보듯 투명하게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마음공부를 해온 천원택씨의 일기를 보자. “돌아가실 뻔한 어머니가 병에서 회복돼 돌아오시는데 기뻐하기는커녕 다시 모실 일을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아내가 미워 귀싸대기를 한대 올려붙이고 싶은 마음이 울컥한다.
그런데 아내가 ‘왜 친정엄마 대하는 마음과 시어머니 대하는 마음이 이렇게 다를까. 한치 건너 두치라더니’라고 독백하며 괴로워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깨어난다.
아, 맞아! 그런 줄 몰랐네. 한치 건너 두치인 이치를!” 마음을 요란하게 하는 경계를 대할 때마다 가식없이 이런 일기를 씀으로써 상대를 시비하거나 모든 화살을 상대에게 돌리기보다는 자기의 마음을 먼저 살피게 된다.
또 상대를 어떤 하나의 편견을 들이대면서 규정짓지 않게 돼 마음이 자유스럽고 평안해지는 것이다.
천주교인들은 영신수련을 통해 완전한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 직접적인 대면을 하는 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본다.
‘예수살이공동체’의 배동교육에선 참여자들이 죽음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개신교 이종헌 목사가 진행하는 <아리랑풀이>는 자신의 가슴 속 깊숙이 감춰져 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마음껏 발산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몸이 가는 대로 마음껏 흔드는 ‘춤 명상’을 통해 자신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게 한다.
방송에선 사용할 수 없는 용어인 ‘욕’을 하고, 베개 빼앗기 싸움을 하는 장면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참여자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을 괴롭혀온 온갖 망상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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