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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타임머신] 음성정보시스템
[IT타임머신] 음성정보시스템
  • 유춘희
  • 승인 2000.1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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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비서, 전화 한명 쓰시죠”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무리 말을 붙여도 여자는 할 말만 한다.
“안녕하세요. 저희 ○○전자는 지난 83년 설립돼 각종 전자·정보통신 제품을 수출하는 기술 전문업체입니다.
원하시는 내선번호를 눌러주십시오. 번호를 모르시면 기획실 1번, 마케팅실 2번…. 교환원과 통화를 원하시면 0번을 눌러주십시오.” 번호를 누르면 몇번 벨이 울리더니 예의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저는 지금 외출중이오니 삐 소리가 난 후 전하실 말씀을 남겨주십시오.” 결국 진짜 사람 목소리는 들어보지도 못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허! 참, 기계가 전화를 받다니….” 80년대 후반 ARS(자동응답시스템)가 처음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라 전화를 끊는 경우가 흔했다.
기계의 명령(?)을 따른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말을 남기는 것도 마뜩찮았던 것이다.
ARS는 애초 ‘전화 숨바꼭질’(telephone tag)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으나, 역설적으로 숨바꼭질은 더 심해졌다.
대신 받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전화받을 사람이 어디 숨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ARS는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관공서나 기업의 업무 중에서 많은 이들의 똑같은 질문에 답해야 하는 경우라면 ARS가 제격이다.
일기예보, 합격자 발표, 관공서 민원, 은행 고객문의, 철도이용 안내 등을 녹음된 성우 목소리로 서비스했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에서는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경비를 절감할 수 있었지만, 서비스를 받는 쪽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메뉴를 다 듣고 차례로 번호를 눌러가야 했으니 성가신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똑 부러진 대답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동통신 버금간 700번 서비스의 이권 우리나라에 음성정보시스템이 선보인 것은 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때였다.
한국통신이 64회선 시스템을 설치해 선수와 임원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서로 연락할 수 있도록 사서함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리고 88년에 디지콤 정보통신연구소가 개발한 VIS-1이라는 제품을 삼보컴퓨터를 통해 제작해 올림픽 정보를 자동응답으로 들려줬다.
전화보급률이 높고 전화기 대부분이 다이얼식이 아닌 MFC 터치식이라는 호조건을 타고 음성정보시스템은 빠르게 확산됐다.
음성정보시스템이 크게 활성화한 계기는 누가 뭐라 해도 92년부터 민간에 개방된 ‘700번 전화정보 서비스’다.
이때까지는 한국통신이 공익적 차원에서 현재시각이나 일기예보, 바이오리듬 등을 서비스했다.
700 민간사업자를 선정할 때 상황은 상상을 초월했다.
선정된 사업자가 다음날 5배까지 프리미엄을 받고 사업권을 되팔 정도였다.
정부 배경을 동원한 사람이 사업자로 선정됐다느니, 한국통신 직원이 부인 이름으로 사업권을 땄다느니, 온갖 잡음이 일었다.
700 서비스는 ‘정보통신 사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인기 비즈니스가 됐다.
정보사회 진입기에 일반의 정보욕구가 커진 탓도 있었지만, 이 사업을 통한 수입(분당 50~100원)이 막대했기 때문이다.
정보이용료를 한국통신이 전화요금과 함께 대신 걷어줬기 때문에 시스템 들여놓고 제대로 관리만 하면 ‘앉아서 돈 버는’ 사업으로 인식됐다.
시스템 구입비용도 리스회사를 이용하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당시 700 서비스는 정보의 보고였다.
이용자의 80% 정도가 학생인 탓에 콘텐츠는 주로 연예계 소식이나 오늘의 운세, 개그 퍼레이드, 노래방, 성 문제 상담 등으로 꾸며졌다.
몇십만원이 청구된 요금고지서 때문에 집안이 뒤집어지고, 시민단체가 정부의 규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이 서비스의 비교육적 면을 강조하는 가정통신문을 돌렸다.
기업들 역시 이 서비스를 차단하는 장치를 다는 등 이용금지령을 내렸다.
음성정보시스템을 공급하는 업체들은 덩달아 거품을 키웠다.
사업자들이 대부분 정보통신에 문외한이어서 시스템 업체에 모든 걸 맡겼다.
시스템 업체들은 프로그램 개발과 운용, 유지보수까지 맡아 부가수익을 올렸다.
금성정보통신, 삼성전자, 삼보정보통신, 디지콤 등이 시스템을 공급하는 대기업군에 속했고, 매릭슨이나 나트, 국제엠테크, 오에이코리아, 한도하이테크 등이 중견기업으로 있었다.
그 중 눈에 띄는 회사가 지금 벤처지주회사로 변신한 CTI(컴퓨터전화통합) 전문업체 ‘로커스’다.
로커스는 천리안에 해외 산업기술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면서 다이얼로직 음성보드를 넣은 V-33 시스템을 공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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