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나 조직의 문화를 말할 때 흔히 비유되는 것으로 ‘냄비’와 ‘뚝배기’가 있다.
냄비문화는 쉽게 끓고 쉽게 식는, 일반적으로 세상의 시류에잘 맞추는 문화를 얘기한다.
반면 뚝배기문화는 쉽게 끓지 않지만 한번 끓으면 쉽게 식지 않는, 세상의 시류보다는 자신의 의지나 신념을 중시하는 경우를 말한다.
기업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과연 ‘냄비’나 ‘뚝배기’ 중 어느 쪽이 바람직할까. 섣불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렵다.
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잘못된 전략만을 고집하는 기업이 오래 갈 리 없고, 시장에 매몰돼 정확한 분석없이 손쉽게 전략을 수정하는 기업 또한 오래 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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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가격이 오르면서 수익도 상승했다고 한다.
반도체가 삼성의 효자라는 세간의 지적이 그럴듯하다.
삼성이 처음 반도체산업에 뛰어들던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이 대외적으로 반도체사업 진출을 공표한 시기는 7년 전인 1983년 3월. 당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은 국토가 좁은데다 천연자원이 없지만 교육수준과 근면성이 우수한 우리 민족에게 고부가가치산업인 반도체만큼 매력있는 사업은 없다며 진군나팔을 울렸다.
그러나 사업 발표 직후 청와대를 비롯해 다른 재벌 총수들까지 나서 삼성을 말리기 시작했다.
반도체가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데다 미국, 일본의 주요 선진기업들과 경쟁해야 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우려 속에서 시작한 삼성의 반도체사업은 80년대 중반에는 ‘가격폭락’, ‘특허 제소’ 등을 겪으며 무려 2천억원의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삼성은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려나갔다.
그 결과 지난 91년부터 지금까지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현재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공정 기술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우뚝 서 있다.
삼성전자의 성공사례는 닷컴기업의 것은 아니지만 최근 시장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조급하게 움직여 실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닷컴기업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물론 모든 인터넷 벤처들이 삼성전자처럼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삼성전자의 ‘반도체에 대한 확신’처럼 인터넷 벤처들도 ‘자신의 사업과 방향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전략의 급선회로 실패를 거듭하다 몰락한 영국의 쇼핑몰 부닷컴 www.boo.com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사업기간 동안 부닷컴은 근본적인 전략을 몇차례나 수정했다.
초기에는 가격과 상관없이 최고급 브랜드만을 판매하는 사이트로 자리매김을 시도했으나 얼마 가지 않아 40% 할인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또한 초기에는 가상 도우미 등을 활용하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표방했으나 금방 종이 카탈로그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콘텐츠의 일관성도 부족했다.
미국의 연구기관 포레스터 리서치(Forrester Research)는 이러한 냄비형 전략을 부닷컴 도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했다.
경영전략의 잦은 변경으로 부닷컴의 브랜드와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선호도가 흔들린 것이다.
마음을 읽는 ‘리더’가 돼라 요즘같이 급변하는 세상에 뚝배기같은 의지만 갖고도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닷컴 비즈니스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만큼이나 많은 변화 또한 필요하다.
단순한 변화가 아닌 진화가 요구된다.
시장상황에 맞춰 발빠르게 진화하지 않는 기업은 조만간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월트디즈니의 참여로 순식간에 신데렐라로 떠오른 토이즈마트 www.toysmart.com의 실패는 이러한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토이즈마트 회장은 자사의 실패원인으로 두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잘못된 파트너와의 만남이다.
의사결정에 초를 다투는 인터넷기업과 결정 하나 내리는 데 수개월씩 걸리는 전통 기업간의 파트너십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타이밍이다.
의사결정 속도의 둔화로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점에 전략을 수립하고 행동에 옮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토이즈마트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같은 대목을 놓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토이즈 www.etoys.com 같은 대형업체와의 경쟁은 토이즈마트를 부도로 몰아넣었다.
릴닷컴 www.reel.com, 비비큐닷컴 www.bbq.com 등 부도난 많은 닷컴기업들도 수익모델을 전자상거래에만 한정시키고 유통을 고려하지 않는 사업전략만을 고집하다 몰락을 자초했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 닷컴기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알짜마트닷컴의 서비스 중단으로 가시화된 닷컴 몰락론은 닷컴기업 진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메타랜드 www.metaland.com는 기존 쇼핑몰을 포함해 모두 4개의 사업부를 2개로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포장이사와 게임 그리고 커뮤니티 등 3개 사이트를 운영하던 클릭나우 www.clicknow.co.kr도 최근 확실한 수익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게임과 커뮤니티 사이트를 매각하고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이사몰 www.24mall.co.kr 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때는 닷컴기업의 신화로 불리다 이제는 닷컴 거품론의 대표적인 사례로 오르내리는 골드뱅크도 경영전략을 급선회하고 있다.
그 동안 투자한 여러 관계사들의 지분을 정리해 자본을 조달하고 적자상태로 운영하던 여러 서비스를 독립분사 형태로 방출하면서 금융과 순수 인터넷사업부로 핵심역량을 재편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외 할 것 없이 인터넷기업들의 전략개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시장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이에 맞춰 전략을 개편하고 수정하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일이다.
그것이 경영 전반에 걸친 전략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마케팅과 같은 경영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략개편에는 늘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뚝배기’와 ‘냄비’의 조화 그렇다면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닷컴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경영전략을 변화시켜야 할까. 냄비형 전략으로 시장흐름에 편승해 쫓아가는 방법이 최선일까. 아니면 뚝배기형 전략으로 최대한 자금을 아끼며 시간을 두고 전략을 고수하는 방법이 최선일까. 정답은 아마 ‘무변’(無變)이나 ‘급변’(急變)이 아닌 ‘생존을 위한 기업전략의 진화’일 것이다.
시장에 편승해 약삭빠르게 전략을 변화시키거나 시장을 무시한 채 전략을 고집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에 따라 기업전략을 개편하는 진정한 진화가 필요하다.
전략의 기본방향은 뚝배기처럼 설정하고 구체적인 전술은 냄비처럼 세우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뚝배기와 냄비가 조화된 ‘닷컴기업 전략의 진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인터넷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즉 e-CEO들은 어떤 요소들을 고려해야 할까. 우선 e-CEO는 ‘관리자’(Manager)가 아니라 ‘리더’(Leader)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리더와 관리자는 어떻게 다를까. 일반적으로 리더는 ‘회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인 비전을 만들고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관리자는 ‘정해진 비전에 따라 실제 사업을 추진해나가는 사람’을 뜻한다.
즉 ‘뚝배기같은 전략방향’을 설정하는 사람이 리더라고 한다면 ‘냄비같은 실제적인 전략’을 짜는 사람은 관리자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위해’ 그리고 ‘왜’ 전략을 변경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사전략을 카멜레온처럼 자주 바꾸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때문에 인터넷시대에서 ‘왜’에 해당하는 ‘전략방향’을 제대로 설정할 수 있는 리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CEO는 시장상황을 남보다 한발 앞서 읽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남들과 다른 차별화된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해 초 세계적으로 ‘포털’의 개념이 유행하자 국내의 많은 인터넷 사이트들이 너도나도 포털을 표방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어떤가? 진정한 포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트는 손으로 꼽아야 할 형편이고 대부분의 패자들은 뭔가 다른 특정 분야로 전문화하기 위해 바쁘다.
얼마 전 여성 포털 사이트 ‘마이클럽’ www.miclub.com이 ‘선영아 사랑해!’라는 독특한 현수막 광고로 성공하자 한동안 길거리에 인터넷 업체들의 현수막 광고가 쏟아졌다.
그러나 마이클럽을 흉내낸 많은 업체들 중에서 우리에게 업체 자체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쟁사가인 리델 하트(Liddel Hart)는 일찍이 ‘전쟁에서 유일한 기본원리는 자신의 강점을 적의 약점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의 약점을 보고 이를 공략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강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능력이 e-CEO에게 요구된다.
신속하게 또한 신중하게 끝으로 e-CEO는 기존의 ‘톱다운’(Top-down) 의사소통 방식이 아닌 ‘보텀업’(Bottom-up) 방식의 의사전달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IBM의 전 회장 루 거스너는 “우리는 새로운 비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거스너는 이 말의 의미에 대해 “우리 회사의 비전은 실무를 담당하는 하부조직에서 형성돼 올라오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비전을 선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리더가 독자적으로 결정했던 비전설정을 IBM은 조직 전체가 참여해 결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거스너의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모하고 있는 현대 디지털 사회에서, 몸소 시장과 부딪치며 사업을 전개해나가는 실무직원은 그 누구보다 시장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인터넷기업의 경우 회사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실무직원의 생각이나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다.
그들의 의견을 귀기울여 듣고 그에 따라 회사의 전략방향을 수립해나가는 것은 경쟁력 확보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전략이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신중한 전략 수립 역시 중요하다.
자본이나 인프라가 기존 대형 오프라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할 수 있는 인터넷 벤처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뚝배기와 냄비 양쪽이 조화된 전략 수립, 인터넷 벤처가 안고 있는 과제이자 생존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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