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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 주류 유통시장 새틀짜기 진통
[비지니스] 주류 유통시장 새틀짜기 진통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1.08.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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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카드 도입으로 무자료거래 감소… 소매업자는 재고부담 늘어 속앓이

정부가 세금 누수를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동안 무자료거래나 외상거래 등을 통해 막대한 세금을 빼돌리던 주류시장에 대해 “더이상 봐주지 않겠다”며 칼을 빼든 것이다.
여기서 칼이란 바로 주류전용 구매카드(이하 주류카드)다.

주류카드는 국세청이 지난 2월27일 신용카드 사용 활성화와 고질적인 부정 유통관행 차단을 위해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뒤, 7월1일부터 일단 권장사항으로 도입했다.
주류카드는 주류 구매시 사용되는 일종의 직불카드다.
주류업자와 도매업자가 이 카드의 가맹점이 되고, 소매업자는 카드 이용자가 된다.
이용자가 주류를 구매할 때 주류카드 전용 단말기로 결제하면 이용자의 계좌에서 판매자의 계좌로 대금이 곧바로 이체된다.
결제계좌는 가맹점과 계약을 체결한 은행에 개설하면 된다.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주류 제조업체와 도·소매업자는 주류거래 때 현찰이나 외상거래 대신 주류카드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국세청은 주류카드 사용자에겐 소득세의 10%를 공제해주고 주류 유통과정 추적조사도 면제해주겠지만, 이 카드를 이용하지 않는 사업자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할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간 무자료거래나 외상거래 중심으로 흐르던 주류 유통시장을 이젠 더이상 방치하지 않고 손을 보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주류 소매업자들의 반발, 법규 미비와 제도 시행시점에 대한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7월부터 주류카드제의 도입을 강행했다.
다만 의무사용을 강제하진 못하고, 우선 권장사항으로 도입한 것이다.
그뒤 두달 가까운 시일이 흐른 지금 주류사업 현장에선 이 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겉으로 보기엔 사업장들이 국세청의 권고에 순순히 따르고 있는 듯하다.
제조업체와 도·소매업자 모두 “주류카드 도입으로 크게 변할 것은 없다.
거래의 투명성 확보라는 대의에 공감하기 때문에 정부 방침에 따르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업자별로 입장이 다르다.
주류카드 거래 은행 턱없이 부족 국세청이 주류카드제 도입을 처음 발표했을 때 사업자들의 반응은 제조업체의 경우 환영, 도매업자는 관망, 소매업자는 반발로 압축됐다.
제조업체로서는 주류카드제가 시행되면 현금 확보가 더욱 쉬워지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도매업자는 시스템 구축비용 부담과 현금확보 부담을 들어 다소 불만을 보였지만, 소매업자로부터 재원을 확보할 수 있기에 그런대로 수용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소매업자는 유통 시스템의 최하위에 있기 때문에 당장 현금이 없으면 물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들어 불만을 표시했다.
문제는 정부 방침을 수용하면서도 미온적이었던 소매업자들의 걱정거리들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주류카드 거래 은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국세청 발표 초기부터 소매업자들이 제기한 불만사항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8월 초 현재 주류카드 가맹점 가입현황은 약 93% 정도다.
이에 비해 주류카드 거래 은행은 조흥·광주·대구·경남·부산·제주은행과 농협 등 7개 금융회사뿐이며, 그나마 지역별로 거래은행이 다르다.
경북지역의 한 민속주 제조업체는 “수도권과 지방에서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금융회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수도권 지역과 거래를 할 땐 통장을 새로 개설해야 한다”며 제도 시행 이후에도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현실을 꼬집었다.
특히 체인점 형태로 사업을 하고 있는 주류 유통업체는 지방 체인점 수만큼 통장을 개설해야 하는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시중은행의 입장에선 주류카드 결제업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결제업무를 맡은 한빛은행과 농협은 지난 7월 한달간 수시입출식 예금이 각각 3093억원과 5134억원 증가했다.
초기 입찰에 참여했던 다른 은행들도 금융기관 CD 공동망을 구성해 주류카드 결제 서비스에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세청도 “주류카드 결제 금융사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다른 금융사로 서비스를 확대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현금결제나 마찬가지인 결제방식도 소매업자들에겐 여전히 부담거리다.
기존의 외상거래에선 정확한 수요를 예측하지 않아도 일단 물품을 확보한 뒤 판매 결과에 따라 재고를 반납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새 제도 시행 이후에는 확보한 자금 범위 안에서 물품을 구매하다 보니 정확한 수요예측에 골머리를 앓게 됐고, 결국 재고부담을 우려해 위축구매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게 소매업자들의 말이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소매업자 입장에선 기존 상품이 있는데 굳이 재고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 새로운 상품을 들이려 하지 않는다.
매장 안에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갖다놓지 않게 돼, 자칫 유명 메이커 제품만 선호하는 ‘안전운행’식 영업이 확산돼 업계의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결제제도 보완이 지연되고 있는 점을 걱정했다.
국세청은 7월부터 주류카드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 제도의 법적 구속력을 유보하는 대신, 기존 무자료거래와 같은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선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래저래 소매업자 입장에선 정부 방침에 순응해야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주류카드 적용대상 사업자는 모두 54만9929명이며, 이 가운데 제조업자는 1281명, 도매업자는 2958명, 소매업자는 54만5690명이다.
사업자 수를 기준으로 하면 대상자의 99%가 넘는 소매업자들이 지금 울상을 지은채 제도의 보완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제조업체 매출 아직 변화없어
주류카드제 도입을 발표할 당시 가장 호의적이었던 쪽은 제조업계다.
이들은 외상거래에서 발생하는 어음부도의 위험을 줄이고 현금유통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국세청의 발표에 지지를 보냈다.
게다가 제조업체는 도매업자와 거래할 때 주류카드 대신 전자결제 시스템을 이용하므로 기존 현금결제 방식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전국 소주시장의 51%, 수도권에선 9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진로의 한 관계자는 “주류카드 도입 이전부터 대부분의 거래가 이미 현찰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제조업체쪽에서는 큰 변화를 느낄 수 없다.
다만 위스키와 같이 부피가 작고 고가인 제품은 제도 도입을 앞둔 6월께 일부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 7월 한달간 일시적인 매출감소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하이트맥주도 1천만상자 가량 팔렸던 6월에 비해 7월에는 780만상자로 매출량이 감소했지만, 이것이 주류카드 제도 도입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굿모닝증권의 박희정 연구원은 “주류시장은 특성상 매출변화를 단기간에 파악하기 힘들다.
지금의 일시적인 매출변화가 주류카드 도입에 따른 파장인지 여부도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라며 아직은 제도 도입에 따른 매출액 변화를 진단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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