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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니스] 양극화로 치닫는 출판시장
[비지니스] 양극화로 치닫는 출판시장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 승인 2001.08.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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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서점에 밀려 동네책방 40% 폐업… 상위 5개 출판사에 매출 25% 몰려
오프라인 서점 40% 폐업, 급신장해 왔지만 여전히 미래가 불안한 온라인 서점, 출판물 반품률 50% 이상 급증, 출판물 판매 양극화, 수많은 출판사들의 실질적 도산, e북(전자책)의 수익모델 부재로 e북 업체 위기. 이상은 1997년 말 IMF 사태 이후 지금까지 출판시장에서 벌어진 참담한 상황이다.


돈이나 정보를 다루는 업계는 정보기술(IT) 혁명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특히 정보를 다루는 출판업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앞서 IT 혁명의 매서운 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책은 전자상거래에 가장 알맞은 상품이며, 문자 정보와 화상 등의 콘텐츠는 물류를 동반하지 않고 인터넷을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다.
게다가 IMF 이후 내수시장 침체라는 한국적 특수상황이 맞물리면서 한국 출판은 붕괴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편집·인쇄 기술을 디지털화하고, 온라인 서점을 등장시켰으며, 콘텐츠 자체의 디지털화를 통해 새 콘텐츠(e북)를 만들어내는 등 갖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관련 기업은 격심한 도태와 생존의 재편과정에 놓여 있다.
97년 말 국내 오프라인 서점은 5170개였다.
그 가운데 98년 273개, 99년 302개, 2000년 1136개, 올해 상반기 360개 등 전체의 40%인 2071개가 문을 닫아 이제 서점은 3099개밖에 남지 않았다.
최근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서점들마저 문을 닫고 있어 출판산업의 앞날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역 중소서점은 매출액이 46%, 종업원 수는 40%가 줄어들어, 이른바 ‘동네책방’은 전멸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비하면 온라인 서점의 표면적인 성장세는 눈부시다.
온라인 서점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예스24의 경우, 매출액이 처음 문 연 99년엔 12억원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160억원으로 13.3배나 증가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9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온라인 서점 전체로 보면 올해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242% 증가했다.
출판물 매출 전체에서 차지하는 온라인 서점의 비중은 지난해 2%에서 올해 5% 이상으로 확대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국내 온라인 서점의 이런 급신장은 대부분 오프라인 서점의 도서정가제를 피해 간 데 따른 반사이익일 뿐이다.
오프라인 서점이 정가판매를 하는 데 비해 온라인 서점은 보통 20~30%, 크게는 50~60%에 이르는 파격적인 가격할인을 한다.
그러나 중·대형 서점 연합체인 중대형서점협의회가 오는 10월부터 전면적인 할인판매에 돌입할 것을 선언하고 나섰다.
오프라인쪽에서 도서정가제가 붕괴할 경우에는 독자들이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실제 구매는 오프라인 서점에서 하는 쪽으로 상황이 뒤바뀔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온라인 서점의 앞날은 장담하기는 아직 이르다.
게다가 온라인 서점의 원조인 아마존닷컴처럼 국내 온라인 서점들도 매출 신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윤을 내지 못하고 있어 대부분 도산의 나락으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책 생산과정도 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생산시스템의 디지털화, 컴퓨터나 단말기를 통해 읽는 e북의 등장, 콘텐츠를 디지털 데이터로 보관하고 있다가 독자가 주문하면 종이책으로 만들어 공급하는 주문형 출판(POD) 등이 새로운 변화의 모습들이다.
e북 열풍마저 사그라들어 2000년 한국 출판계에서 ‘e북 열풍’은 대단했다.
규모가 있는 출판사치고,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e북 업체에 줄을 대지 않는 출판사가 없을 정도였다.
e북이 3년 이내에 전체 매출액의 50%에 이를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마저 나왔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유통되는 정보·화상·영상 콘텐츠의 양이 급속하게 늘어나고는 있지만, e북 업계는 여전히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몇몇 업체만이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e북이 활성화하려면 인터넷 보급, 휴대용 단말기 도입, 액정화면의 해상도 개선, 읽기 편한 솔루션 개발, 대량의 디지털 콘텐츠나 리소스(resource)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국내 업계는 인터넷 보급이 늘어난 것 외에는 e북이 성장할 다른 기초 인프라가 전혀 조성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e북의 수익성 부재가 전세계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이제 세계 출판계는 디지털 기술과 종이책의 장점을 결합한 POD에서 가능성을 찾으려 하고 있다.
POD는 인류가 창안한 마지막 인쇄방식이라는 주문형 인쇄 기술과 인터넷을 결합한 것으로, 이 시스템이 완비되면 독자는 세계 어디서든 POD 단말기를 통해 자기가 원하는 책을 60초 이내에 종이책으로 사볼 수 있다.
POD는 재고 없는 출판이 가능하고, 물류비용과 창고비용이 들지 않으며, 인류가 생산한 모든 책을 판매할 수 있어 절판본이 사라지고, 종이책의 장점을 그대로 살릴 수 있기 때문에 미래에 책의 유일한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 일본, 스웨덴 등 앞선 나라에서는 이미 POD에 대한 여러 실험을 하고 있으나 국내 출판계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시피 한 형편이다.
독자들은 리더(reader)에서 유저(user)로 바뀌고 있다.
그 결과 피라미드형 독자층이 붕괴되고 있다.
상층부에 속하는 학술서, 전문서 등은 갈수록 영역이 축소되고 중간층인 교양서적의 생산과 판매마저 줄어들고 있다.
단지 하층부인 만화책, 일회성 오락용 대중서, 영어책과 컴퓨터책 같은 실용서 등만이 시장규모를 키우며 출판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온·오프라인 서점들 모두 팔리는 책 위주의 영업정책을 펴 베스트 상위 300종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태에 이르자, 출판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중을 겨냥한 책들만 펴내기 시작했다.
많은 출판사가 책을 껌이나 과자처럼 대량생산·대량소비가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고 과다한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나선 것이다.
최근에 드러난 자사 책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바로 그런 일면을 부정적으로 극대화시켜 보여준 사례다.
기획은 더욱 획일화되었고, 이는 결국 획일화된 독자를 양산하고 있다.
따라서 출판물의 양극화는 극심해졌다.
지난해에 <해리포터> 시리즈(조앤 K. 롤링),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외), <가시고기>(조창인),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정찬용) 등 네권이 밀리언셀러 반열에 오른 데 이어 올해는 <상도>(최인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국화꽃 향기>(김하인) 등이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이들처럼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기대 이상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 책은 서점 서가의 냄새도 맡지 못하고 곧바로 반품되는 사태가 속출했다.
서점의 폐업과 맞물리면서 최근 서적의 반품률은 50%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2000년 말 현재, 1만6059개 출판사들 사이의 매출실적 양극화 현상도 극심해지고 있다.
한 단행본 도매상의 경우 상위 5개 출판사가 매출의 25%, 33개 출판사가 50%, 200개 출판사가 84.7%를 점하고 있다.
이 통계를 놓고 미뤄 짐작해보면 현재 출판사의 90%는 준도산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지난 4년간 출판시장은 ‘지식 전파’라는 출판 본연의 임무와 컴퓨터를 통한 ‘정보 분배’의 구별이 이루어지지 않아 큰 혼란만 겪은 셈이다.
IT 혁명으로 저자와 독자 말고는 다른 모든 게 필요 없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변화는 여전히 저자, 출판사, 편집자, 디자이너, 서점 판매원, 도서관 직원, 독자 등 소위 ‘구텐베르크의 논리’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감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출판시장은 변하지 않는 출판의 본질을 염두에 두고 그 본연의 임무를 다할 때에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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