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4일은 거래소·코스닥 기업들이 상반기 실적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날을 며칠 앞두고서야 반기보고서 제출에 나섰다.
실제 실적집계 작업이 늦어졌는지, 아니면 일부러 마감기한까지 늦춰서 보고서를 제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 상장·등록 기업들은 대부분 실적보고서 제출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그러나 옥션은 상반기 실적보고서를 거의 한달 전인 7월19일에 제출했다.
코스닥 등록기업은 물론 거래소 기업까지 통틀어 가장 일찍 보고서를 낸 것이다.
옥션은 분기가 끝날 때마다 애널리스트들을 불러 투자홍보활동(IR)을 한다.
벤처기업 입장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옥션은 언제부턴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베이, 투명성·합법성 강조
올해 인터넷 업계의 핫뉴스를 꼽으라면 ‘이베이의 옥션 인수’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현금 1500억원이 오간 이베이의 옥션 인수합병 소식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인터넷 업계에서도 눈길을 끈 사건이었다.
인수합병의 득실을 따져보고 향후 시장 변화를 점쳐보는 얘기들이 한동안 업계에서 거듭됐다.
인수합병이 이루어진 지 6개월이 지나갔다.
옥션에서는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우선 모든 직원이 두가지를 새로 배우고 익혀야 했다.
하나는 영어, 다른 하나는 회계다.
옥션 직원들은 가장 큰 변화는 재무회계 시스템이 바뀐 것이라고 말한다.
"재무회계 분야가 가장 먼저 이베이화했다.
이베이의 연결 재무제표에 옥션의 실적이 들어가야 하니까,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월별 결산체제로 바뀐 것이 큰 변화다.
이베이가 기본적으로 월별 결산체제인데, 전세계 자회사들의 결산이 나와야 본사 결산이 나올 수 있으니 이베이의 시스템에 맞추지 않을 수 없다.
” 옥션 재무본부 최숙아 부장은 상반기 실적 발표도 결산 후 3주 이내에 한다는 원칙에 따라 발표시점을 앞당기게 됐다고 설명한다.
최 부장은 현재 옥션은 이베이의 시스템에 따라 월 결산체제는 물론 일일 결산도 가능하게 됐다고 말한다.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가 모두 그날그날 집계돼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재무회계 시스템의 변화는 단순히 결산속도가 빨라졌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영업실적이 그때그때 파악된다는 것은 발빠른 전략 수립과 수정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수익성 우선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동안 매출이나 회원 수 증대 등 외형성장만 중시해왔다.
하지만 이베이는 철저하게 수익성 위주의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비즈니스 모델만 좋았던 것이 아니고 파이낸스가 강하다는 점이 이베이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이젠 옥션의 직원들도 항상 머릿속에 숫자를 새겨놓고 일해야 한다.
” 최 부장은 이러한 이베이의 장점을 이해하고 배워가는 첫단계로 재무회계 시스템의 변화를 설명한다.
현재 옥션은 이베이의 시장예측 모델을 들여와 주간단위로 내부 보고서를 발간해 임원회의에서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수익성 중심 경영으로 변화하는 과정의 한단면이다.
그런데 시장이나 영업실적을 예측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재무기획 분야가 중요한 이유다.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분기나 반기 보고서 등 공식 보고서 외에 내부 결산보고서는 공고하지 않는다.
투자기관의 애널리스트들에게도 추정순익이라도 밝히는 것은 형평성에서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 상황에서 어려운 점이 있지만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 때문에 지난번
” 최 부장은 이베이의 원칙이 투명성과 신뢰성이라는 측면에서 앞서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베이가 제일 강조하는 것이 투명성과 합법성이다.
옥션은 지금 분기별로 애널리스트를 불러다 IR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기업은 몇 안 될 것이다.
이베이는 또 불법거래를 방지하기 위해 250여명의 모니터링 요원을 두고 철저히 감시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는 솔직히 이런 점들이 몸에 배어 있지 않지만 배워나가고 있는 과정이다.
” 옥션 이금룡 사장도 이베이의 경영마인드가 옥션 전체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말한다.
개인 창의력 중시로 직원들 활력 재무회계 시스템의 변화는 인수합병 이후 가장 먼저 치러야 하는 작업으로서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이 변화는 조직 내부에 적지 않은 변화를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직원들은 중요한 회계상의 숫자를 간과하고는 버틸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회계 수치에 대해 전 조직원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직으로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매출액이나 회원 수 등 외형성장의 지표가 아니라 수익성 지표에 더 관심을 둔다.
재무회계를 중시하는 수익경영 전략을 좀더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옥션의 과제다.
“이베이는 핵심사업에 역량을 집중한다.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토대로 수많은 카테고리를 개발하는 것을 보면 놀랍다.
” 이금룡 사장은 경매회사로서의 성패는 구매자와 판매자가 얼마나 많아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고, 이베이의 카테고리 개발 노하우를 옥션에 접목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베이 유니버시티를 통해 판매자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나 불법 모니터링 운영 등 선진 노하우도 배워가고 있다고 덧붙이다.
또하나 옥션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조직운영이다.
이베이는 철저한 상향식 업무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하부의 실무담당자에서 업무가 시작되며, 위에서는 단지 결정을 하고 위기관리를 해주는 정도에 그친다.
위에서 업무지시를 하고 아래에서 그 지시를 따르는 방식의 하향식 업무시스템과 큰 차이가 있다.
하부 담당자에게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각 개인의 창의력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한때 옥션 직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다.
회사에서 대출까지 받아 매입한 자사주가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급락해 적지 않은 빚더미에 올라앉았기 때문이었다.
이베이는 직원들이 회사 대출금으로 산 주식에 대해 원금 보장을 한다는 약속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줄 것은 주고 할 것은 하게 한다는 방식이다.
겉으로는 아직 변화의 모습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옥션은 이베이 문화를 수용하면서 내면으로부터 거대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