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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레이거노믹스’ 부활 예고
[포커스] ‘레이거노믹스’ 부활 예고
  • 박종생
  • 승인 2000.1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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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경제팀, 대규모 감세·정부지출 억제·규제완화책 펼칠 듯…월가 경험없어 우려 시각도 앞으로 4년간 사실상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경제대통령들’이 속속 임명되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12월20일 폴 오닐 재무장관, 돈 에번스 상무장관 등 자신의 주요 경제팀을 발표했다.
새 경제팀은 미국 경제가 10년간의 장기호황을 마치고 경기침체 가능성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어서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미국 경제의 연착륙을 성공시킬 만한 조타수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관심을 끈 것은 누가 재무장관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미국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포스트이다.
미국에서는 금융에 정통한 월가 출신이냐, 아니면 부시 당선자가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 기업가 출신이냐로 설왕설래했다.
부시 당선자가 고심 끝에 낙점한 인물은 기업가 출신 폴 오닐(65)이었다.
세계 최대 알루미늄 제조업체인 알코아 회장인 폴 오닐은 월가 경험이 거의 전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외라는 시각도 나왔다.
그러나 부시 당선자는 “우리 경제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신호를 보이고 있는 만큼 경험이 풍부하고 견실하며 권위와 신념,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며 “폴 오닐은 절대적으로 적합한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부시 당선자가 추켜세운 폴 오닐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경력으로만 보면 그는 민간과 공직에서 모두 성공적으로 일해온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는 지난 67~77년 백악관 예산실에서 일했으며, 포드 행정부 시절인 74년부터 3년 동안은 예산실 부책임자로 일했다.
이 후 인터내셔널페이퍼라는 회사의 부사장으로, 미국 최고 공공정책연구소인 랜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87년에는 알코아의 CEO 겸 회장으로 채용돼 13년 동안 일했다.
알코아는 직원 10만7700명에 99년 매출액이 163억달러에 이른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전략적이고 글로벌한 시각을 가진 인물’로 평가한다.
그는 내부에만 집착하는 전형적 굴뚝기업이었던 알코아를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글로벌 메이커로 변신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알루미늄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다른 회사들이 수입품을 막기 위해 워싱턴으로 달려갈 때 기술개발에 매달렸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미국의 주요 제조업체 CEO들이 옷을 벗어야 했던 시기에도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의 경제철학은 신경제 지지론에 가깝다.
그는 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미국 경제를 성장시켰다고 믿는다.
미국제조업협회 제리 제시노스키 회장은 “그는 기술혁명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부시 당선자는 이번 조각에서 경제팀을 포함한 주요 보직에 친기업 성향을 가진 인물들을 앉혔다.
상무장관으로 지명된 돈 에번스(54)가 대표적이다.
그는 대선에서 공화당 선거본부장으로 일했으며, 석유가스회사인 톰 브라운의 사장이기도 하다.
부시 선거자금 1억달러 모금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백악관 비서실장이라는 요직에도 전미자동차제조업체연합 회장을 지낸 앤드루 카드(52)가 지명됐다.
그는 93년부터 6년 동안 미국 자동차업계의 대변자 역할을 하면서 로비활동을 해왔다.
아직 지명이 안된 주요 경제팀 자리로는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과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이 있다.
여기에는 부시 당선자의 핵심 경제참모인 로렌스 린지 하버드대 교수와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가 임명될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한다.
로렌스 린지는 연준 이사를 지냈으며, 선거운동 기간 중 부시의 주요 경제정책을 짜낸 인물이다.
미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대규모 감세안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는 대표적인 공급경제학 옹호론자다.
과감한 세율 인하로 기업의 투자와 개인의 소비를 이끌어내는 것이 경제안정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몇년간 미국 경제에 대해 어느 정도 비관적 관점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다.
존 테일러 교수는 금융정책에 권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이 되기 전에 그런스펀의 컨설팅 회사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부시 경제팀의 주요 면면들을 뜯어보면 이들이 친기업형, 대규모 감세, 정부지출 억제, 규제완화 등의 경제정책을 펼 것임을 암시한다.
이는 80년대 초반 레이건이 취한 일련의 정책들이다.
21세기판 레이거노믹스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 않다.
부시 당선자가 내세우고 있는 대규모 감세안은 가장 대표적 정책이다.
그는 앞으로 10년 동안 1조3천억달러의 감세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시 당선자는 “감세안은 사회적 공정성을 제고하고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조처”라며 “이 문제에 관한 캠페인을 시작했던 1년 전보다 그 필요성을 더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세금 삭감으로 경기를 활성화해 최근 현실화하고 있는 경기둔화를 막아보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규모 감세안은 의석이 양분된 의회에서 통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다 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월가는 새 경제팀에 다소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이 대부분 월가에 경험이 없는 ‘아웃사이더’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들이 강한 달러정책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강한 달러정책은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이나 로렌스 서머스 현 재무장관의 핵심 정책이다.
월가는 이 정책이 미국 시장에 대한 외국인들의 신뢰 유지, 인플레 억제, 금리인상 억제 등의 효과를 가져왔다며 지지를 표명해왔다.
그러나 친기업형 정책을 취할 것으로 보이는 새 경제팀은 강한 달러정책이 미국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는 만큼 이를 완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하나 우려하는 것은 이들이 급변하는 금융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미국 금융시장이 불안 조짐을 보이고,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등 국제금융 시장에서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새 경제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부시와 그린스펀의 관계
부시 대통령 당선자와 앨런 그린스펀 연준(FRB) 의장. 두사람은 아직 악연이 없다.
그러나 부시 당선자의 아버지와 그린스펀 의장은 질긴 악연을 갖고 있다.
부시 행정부 시절인 91년 부시 대통령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그린스펀 의장에게 금리인하를 요청했다.
그러나 보기좋게 퇴짜를 맞았다.
그린스펀 의장은 공개적으로 부시의 요청을 비난했다.
그는 조용하지만 연준의 독립성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92년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부시 대통령은 연준이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며 그린스펀을 비난하기도 했다.
부시 당선자는 과연 이런 가문의 악연을 피해갈 수 있을까. 두사람들의 경제관만 놓고 보면 현재로선 부정적이다.
이들은 명백한 차이점이 있다.
부시 당선자는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흑자를 대규모 감세를 하는 데 이용하려고 한다.
반면 그린스펀 의장은 재정흑자를 감세나 신규지출로 돌리기보다는 국가부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파이낸셜타임스>도 12월21일 새 경제팀이 클린턴 행정부 때처럼 연준과 긴밀한 정책협력 관계를 맺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렇지만 요즘 두사람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조심스런 행보를 하고 있다.
부시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가장 먼저 그린스펀 의장을 만났다.
그는 “그린스펀 의장의 능력에 대해 깊이 신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스펀 의장과 막역한 관계를 갖고 있는 폴 오닐 알코아 회장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한 것도 그런 맥락과 닿는다.
오닐 재무장관 내정자와 그린스펀 의장은 포드 행정부 시절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
또 78년부터 87년까지 알코아 이사회 멤버였던 그린스펀은 오닐을 이 회사의 회장으로 영입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대통령 당선자가 오닐이라는 특출하면서도 재능있는 사람을 선택했다”며 “오랜 친구와 다시 한번 긴밀한 관계로 일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단 출발은 좋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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