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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바벤] ⑤ 바이오인포메틱스
[닥터 바벤] ⑤ 바이오인포메틱스
  • 허원(강원대환경생물공학부)
  • 승인 2000.1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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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정보를 해독하라
영화 <쥐라기 공원>은 공룡을 되살리는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한다.
호박 속에 갇힌 모기, 그 모기의 위장에 남은 공룡의 피로 유전자 정보를 재구성해 공룡을 되살린 것이다.
도대체 이게 사실일까, 거짓말일까.
<쥐라기 공원>에서는 유전자 정보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슈퍼컴퓨터가 등장하고, 무작위로 배열된 ATGC라는 4개의 영문자가 끊임없이 화면을 채운다.
이것이 바로 유전자 정보다.
유전자는 ATGC라고 표시하는 4가지 물질이 번갈아 연결돼 있는 기다란 사슬이다.
생명체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유전자 정보는 마치 난수표처럼 끊임없이 문자로 이어진다.
이걸 보고 어떻게 생명체를 만들 수 있을까.
유전자 자료 모두 전자문서화…5년 안에 25억달러 시장 형성될 듯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생명체가 탄생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생명체의 설계도를 작성하는 대규모 연구사업이 바로 ‘게놈 프로젝트’다.
설계도를 작성하기 위해선 세포 속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 정보를 ATGC라는 문자로 옮겨야 한다.
사람이나 쥐의 유전자는 30억개, 파리는 1억7천개, 효모는 1400만개의 문자로 표현될 수 있다.
사람의 경우 30억개로 표현된 유전자 정보 가운데 10만개 정도의 짧은 문자열만을 해독해 단백질을 만든다.
이 단백질이 생명체를 구성하는 요소로 사용된다.
유전자 기능, 빠른 속도로 비교·검색 가능 게놈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정보를 분석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엄청난 규모의 유전자 데이터가 밝혀졌다.
게다가 인간의 유전자 지도 초안이 완성돼 이제는 각각의 유전자에 해당하는 짧은 문자열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를 웬만큼 파악하게 됐다.
하지만 유전자가 어떤 기능을 갖는지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짧은 문자열이 확실하지 않은 것도 많다.
결국 <쥐라기 공원>은 상상력의 산물인 셈이다.
생명체의 설계도를 만들어가는 관점에서 현재의 게놈 프로젝트를 보면 아직은 중학생이 영한사전도 없이 <타임>을 읽으려는 것과 비슷하다.
아는 단어도 일부 있지만 전체 문맥을 파악하기에는 모르는 단어가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중학생은 <타임>을 읽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예컨대 모르는 단어가 포함된 다른 문장을 <타임>에서 일일이 찾아보는 것이다.
<타임>이 많을수록 모르는 단어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도 많아진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타임>을 몇쪽 읽는 데 인생을 모두 소비할 수 있다.
<타임>을 전자문서화하고, 키워드로 문장을 검색할 수 있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유전자 정보를 해석하는 데는 ‘바이오인포메틱스’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과거 몇십년 동안 밝혀진 유전자 지식과 사실 및 자료들이 모두 전자문서화돼 있다.
정보의 양 또한 상당한 규모로 저장돼 있다.
따라서 새로운 유전자 기능을 일일이 분석하기에 앞서 미리 그 유전자 기능이나 특성을 기존 정보와 비교해 추정할 수 있다.
처음에는 유전자 데이터를 비교·검색하고 저장·관리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는 것을 바이오인포메틱스라고 불렀다.
이런 정보 시스템을 사용할수록 더욱 새로운 정보가 창출되고 데이터베이스의 크기도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현재 바이오인포메틱스는 새로운 생물학적 발견을 가능하게 해주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방대한 생물학 정보가 결합된 시스템을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넓어지고 있다.
국내에는 관련 기업 거의 없어 바이오인포메틱스는 아직까지는 미지의 유전자 분석이나 탐색, 유전자칩의 해석 및 신약 개발 따위에 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바이오인포메틱스를 구현한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주로 대규모 제약회사에 수십만달러에 팔려나간다.
캘리포니아의 시장조사 회사인 프로스트설리반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 바이오인포메틱스 관련 상품의 매출규모는 1억6천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엔 중소 규모의 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인터넷을 통해 아주 싼 가격으로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바이오인포메틱스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방대한 유전자 정보를 자기 회사 컴퓨터에 보관해두고 다양한 유전자 분석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더 정교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유전자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고 응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바이오인포메틱스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중소 규모의 바이오 기업들도 유전자 연구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대학교육 목적으로도 바이오인포메틱스가 사용된다.
이 때문에 일부 컨설턴트들은 바이오인포메틱스 분야가 5년 안으로 20억~25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에는 바이오인포메틱스 관련 기업이 그리 많지 않다.
새로운 유전자 발굴 및 분석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몰소프트와 바이오인포메틱스 전문 연구벤처인 아이디알 정도가 있을 뿐이다.
신약 개발 속도 '고속화'
한 제약회사의 신약개발 프로젝트 담당 연구원인 진 박사는 최근 구입한 바이오인포메틱스 시스템을 이용해 새로 발견한 유전자를 조사하고 있다.
간경화에 좋다고 알려진 <동의보감> 처방대로 조제한 약을 투약하자 실험쥐의 간세포에서 활동하지 않던 유전자 40여개가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이오인포메틱스 시스템을 활용해 이 가운데 25개는 이미 기능이 알려진 유전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나머지 15개 유전자에서 간경화를 완화시키는 기능을 가진 유전자나 간세포를 재생시키는 기능을 가진 유전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진 박사는 15개 유전자를 미국의 한 회사에 보내 각각의 유전자가 결핍된 실험쥐를 주문했다.
이 회사는 특정 유전자가 결핍된 실험쥐를 만드는 회사이다.
고객의 정보를 철저하게 보호하고 빠른 시간 안에 유전자 결핍 실험쥐를 만드는 회사로 유명하다.
이 회사에서 납품받은 실험쥐 중 간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쥐가 발견됐다.
진 박사는 바로 이 쥐의 결핍 유전자가 간의 발달과 관련 있을 거라고 추정했다.
실험쥐의 간에 바이러스벡터를 이용해 이 유전자를 도입한 뒤 간경변을 유도했다.
유전자가 도입되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월등히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
진 박사는 현재 바이오인포메틱스 시스템을 이용해 인간의 유전자 지도에서 이 유전자와 가장 유사한 유전자를 골라내 간경변 유전자 치료제를 만들고 있다.
바이오인포메틱스 시스템이 없었더라면 몇년이 더 걸렸을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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