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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오감] 6.촉감
[디지털&오감] 6.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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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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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촉감을 디지털로 만든다
가상현실 촉각 재현 박차…아직은 국내외 모두 걸음마 수준
“나는 몇번, 아니 수십번/ 수백번 진정 언제까지라도 입맞추고/ 당신의 온몸 구석구석에 입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시인들이 읊는 사랑의 시는 대개 ‘촉감’에 대한 찬미로 끝난다.
하기야 촉감이 없는 사랑은 얼마나 싸늘할까. 키스가 없는 사랑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때문에 촉감은 가장 사치스런 감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가상현실 분야의 촉각 연구도 시각이나 청각 등 다른 감각 연구와 똑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
인간의 감각을 ‘속여’ 가상현실을 실제처럼 재현해 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사랑의 촉감마저 기계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게 최종 목표인 셈이다.


지금까지 가상현실 연구는 시각과 청각에 집중됐다.
두 감각이 만들어내는 몰입감이 전체 비중의 9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촉각 분야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홀대’받아오면서 관련 장비 개발(햅틱 장비라고 부른다)이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게임이나 의료 분야의 활용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촉각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손가락이 내는 힘만큼 뒤로 당겨준다 촉각(haptic)은 크게 피부감각(tactile sensation)과 역감(force sensation) 등 두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다.
(박스 기사 참조) 이 가운데 연구자들이 현재 전력을 쏟고 있는 게 가상현실 속에서 역감을 재현하는 작업이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피부감각 재현보다 쉬운데다 시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10cm 앞에 가상의 벽이 있는 것처럼 역감을 만들어보자. 원리를 아주 단순화시키면 손가락으로 가상의 벽을 찌를 때, 그것과 똑같은 힘의 크기로 손가락을 뒤로 당겨주면 된다.
힘(F)은 물체의 질량(m)과 가속도(a)를 곱한 값이다.
따라서 손가락이 벽에 부딪히는 힘(F)은 손가락 무게(m)에 벽을 찌르는 속도의 미분값(가속도 a)을 곱한 값이 되는 셈이다.
센서가 감지한 힘의 크기만큼 반대 방향으로 손가락을 뒤로 당겨주면 사람은 가상의 벽을 느끼게 된다.
원리는 간단해 보이지만 햅틱 장비로 구현하는 건 결코 녹록치 않다.
특히 손가락을 당겨주는 장치에 해당하는 구동기는 역감 재현의 성공여부를 가를 만큼 핵심적인 장비다.
손가락을 천천히 가상의 벽에 갖다댈 때는 구동기의 힘이 작아도 벽을 느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손가락을 빠른 속도로 갖다 댈 때는 큰 힘이 필요하다.
이처럼 넓은 범위의 힘을 만들어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구동기 덩치를 무작정 키울 수도 없다.
인터넷을 통해 물체의 저항력을 느끼게 하는 마우스를 개발한다고 해보자. 역감을 느끼게 하려고 마우스에 책상만한 구동장치를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크기가 작으면서도 넓은 범위의 힘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역감 재현 장치의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구동기의 구동방식으론 모터, 유압, 공기압, 형상기억합금 방식 등을 이용한다.
이 가운데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모터 방식이다.
모터 방식은 값도 싼데다 성능이 좋은 모터가 많이 개발돼 정밀한 힘을 구사할 수 있다.
유압 방식은 힘의 대역폭이 넓지만 구동기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값이 비싼 단점이 있다.
공기압이나 형상기억합금 방식은 작은 힘을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큰 힘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낚시 게임은 모터를 구동장치로 사용 모터 방식을 이용한 대표적인 응용 햅틱 장비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권동수(43) 교수가 개발한 낚시 게임이다.
현재 시중에 보급중인 낚시 게임은 물고기가 낚시바늘을 물기 전에 톡톡 치는 힘, 큰 고기와 작은 고기가 걸렸을 때의 힘을 모터로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사이버 낚시꾼이 재빠르게 찌를 잡아채 대어를 낚았다면 모터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손맛을 크게 느끼게 한다.
반대로 피라미를 건졌을 때는 모터를 천천히 돌린다.
일본 게임기 제조업체인 세가가 만든 ‘푸르푸르 팩’도 안에 모터를 내장했다.
모터의 회전수에 따라 발자국 소리나, 심장 고동소리, 폭발이나 지진 같은 진동이 만들어져 손바닥에 전달된다.
세계적으로 의료분야 등에서 상품화에 가장 성공한, 미국 MIT와 센서블 회사가 만든 ‘팬텀’도 모터를 구동기로 사용한다.
형상기억합금 방식을 사용한 햅틱으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증강현실연구팀 장병태(37) 팀장이 최근 개발한 시각장애인용 휴대용정보단말기 ‘한소네’를 꼽을 수 있다.
이 단말기는 컴퓨터에 내장된 파일을 촉각과 음성으로 동시에 출력시켜준다.
이 가운데 촉각 장치는 구리판에 특수처리된 필름을 붙인 것으로, 전기자극에 대한 구리와 필름의 반응속도 차이를 이용해 점자자판이 위아래로 움직이도록 설계했다.
햅틱 장비의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의사들의 수술 경험이 중요한 의료분야에서는 수술 연습용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국과학기술원 의료영상공학연구센터의 나종범 교수팀이 올 7월 ‘척추 침 생검시술 모의실험기’를 선보였다.
원래 척추 침 생검술은 척추뼈에 생긴 암의 확진을 위한 시술로, 척추에 바늘을 넣어 이상조직을 추출해내는 것이다.
하지만 척추뼈는 주변에 신경과 대동맥 등이 밀집돼 있어 의사들도 상당한 수술 부담을 안고 있다.
모의실험기는 의사가 마네킹에 바늘을 찔러넣을 때 컴퓨터가 저항력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바늘이 서로 다른 조직을 통과할 때마다 각각의 다른 힘을 받도록 해 실제 몸에 바늘을 꽂는 것처럼 설계했다.
또한 햅틱 장비가 발달하면 의사가 먼 거리에 떨어진 환자도 로봇을 조정하며 수술할 수 있다.
물론 로봇이 환자의 몸에 닿을 때마다 촉감이 그대로 의사에게 전달돼 실제와 똑같은 수술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게임 분야에서도 시장은 따논 당상이다.
예를 들어 삼차원 게임에서 주인공이 장애물이나 상대방과 충돌할 때 촉각을 느낄 수 있으면 폭발적인 호응을 예상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를 할 때도 쇼핑몰에 전시된 옷감의 질감이 전달된다면 소비자들의 신뢰감을 확보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 이용되려면 10년은 더 있어야” 하지만 햅틱 장비가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되기에는 기술이나 가격면에서 아직 초보적인 수준인 게 사실이다.
웬만한 장비들은 1천만원을 넘고, 구동기를 작게 줄이는 기술 역시 시간이 더 필요하다.
중앙대학교 기계공학과 채영호(36) 교수는 “거친 역감만으로도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게임 쪽에서 상용화가 먼저 시작된 게 현재의 수준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전자상거래 쪽에 촉각 기술이 정착되려면 아직도 해결해야 문제가 많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장병태 팀장은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매끄럽다’ ‘부드럽다’ ‘울퉁불퉁하다’ 따위의 모든 상품에 대한 촉각 정보들을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 축적해야 한다.
게다가 네트워크를 통해 이런 데이터를 네티즌에게 전달하려면 현재의 시스템보다 속도가 몇배는 빨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피부감각과 역감이 효율적으로 결합돼 전달될 수 있다면 시각이나 청각과는 다른 차원의 가상현실 몰입감을 즐길 수 있다.
그때쯤이면 사랑의 촉감마저 가상현실 속에서 맛볼 수 있지 않을까.
피부자극보다 역감 재현이 쉽다
촉각(haptic)은 피부를 통해 미세한 힘을 전달받아 인식하는 피부감각(tactile sensation)과 근육이나 관절, 힘줄을 통해 비교적 큰 힘을 전달받아 인식하는 역감(force sensation)으로 구성돼 있다.
피부감각을 통해서는 ‘매끄럽다’ ‘울퉁불퉁하다’ ‘거칠거칠하다’ 따위의 물체의 질감, 그리고 ‘원통형’ ‘계란형’ 따위의 물체의 형상을 파악한다.
역감은 물체를 만지거나 이동시킬 때 느끼는 감각으로 질량을 가진 물체의 반발력이 역감을 일으킨다.
우리가 어떤 물체의 촉각을 느낀다고 말할 때는 실제로는 피부감각 및 역감이라는 두 촉각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스폰지 표면이 거칠고 폭신폭신하다고 치자. 이때 우리는 피부감각(표면이 거칠다는 질감)과 역감(스폰지의 저항력이 약해 폭신폭신하다)을 동시에 받아들여 인식한다.
또한 벽을 인식할 때도 ‘매끈하고’ ‘단단하다’라고 얘기한다.
마찬가지로 이때도 피부감각과 역감이 서로 작용하며 벽에 대한 촉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가상현실을 연구할 때는 두 촉각 요소를 분리시킨다.
아직은 각각의 촉각요소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두 요소를 결합시켜 인간의 촉감에 가깝게 구현하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두 촉각요소 가운데 비교적 앞선 쪽이 역감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피부감각 재현 기술은 피부 의학의 발전 속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세한 힘을 피부에 전달해 ‘가짜 촉각’을 느끼도록 하는 게 만만치 않다.
시각의 경우 1초당 16프레임, 그러니까 16번의 자극만 줘도 화면의 연속성이 있는 양 속아넘어간다.
하지만 피부자극이 ‘매끄럽다’ ‘거칠다’ 따위의 질감을 인식하도록 하려면 1초당 최고 500~1000번의 미세한 진동을 보내줘야 한다.
예민한 피부자극보다는 큰 힘을 인식하는 역감을 다루기가 기술적으로 다소 쉬운 셈이다.
‘필’이 전달되는 마우스
지난해 7월 컴퓨터 주변장치업계에서 화제가 됐던 ‘작은’ 사건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입할 때 미리 만져볼 수 있게 하는 마우스가 개발됐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들어온 것이다.
미국 ‘이머션’이라는 회사가 개발한 ‘필(Feel) 마우스’는 시연회 참석자들이 “테니스의 팽팽함과 청바지의 촉감까지 구별할 수 있었다”며 칭찬했다.
루이스 로젠버그 사장도 기세가 등등해져 “어떤 종류의 물체든 표면의 딱딱함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자랑했다.
포르노 사이트가 제일 득을 볼 것이라는 농담도 오갔다.
필 마우스의 원리는 사실 간단하다.
커서를 웹사이트의 해당 물건에 올려놓으면 물건에 내장된 디지털 정보가 네트워크를 통해 마우스로 전달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필 마우스의 실제 비밀은 마우스를 대고 움직일 때 사용하는 판에 숨어 있다.
마우스 판에는 전자석이 내장돼 있어 자기장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가 “오톨도톨”이라면 마우스와 서로 다른 자기장(엔극-에스극)을 자주 발생시켜 마우스를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마우스의 움직임이 빡빡해지기 때문에 물체의 느낌이 굴곡이 심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반대로 물체의 표면이 매끄러우면 자기장을 발생시키지 않아도 된다.
필 마우스는 어느 정도 질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획기적인 마우스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다양한 질감을 느끼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촉각을 구현한 마우스나 조이스틱은 상용화에 성공하면 현재 널리 사용하는 마우스처럼 모든 PC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먼저 개발해 시장을 선점하면 회사 이미지를 높이는 동시에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한국에서도 97년 ㅇ그룹이 촉각용 마우스를 개발하기 위해 시도한 적이 있었다.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의 전문가들까지 불러들인, 거액의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구제금융이 터지면서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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