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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굴뚝아 굴뚝아, 헌집다오, IT로 채워줄게
[기획] 굴뚝아 굴뚝아, 헌집다오, IT로 채워줄게
  • 이원재
  • 승인 2000.08.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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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공개 지름길 A&D 그뒤…10여개 상장기업 ‘셸 컴퍼니’ 매물로
12년 동안 보일러용 송풍기를 만들어왔던 회사가 어느날 갑자기 인터넷 지주회사로 탈바꿈한다.
유능한 경영진을 여기저기서 끌어모으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회사를 완전히 뜯어고친다.
최종적으로 이름까지 갈아치우고 나면 12년 동안 보일러용 송풍기를 만들어왔던 회사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


올해 예상매출액은 지난해의 100배. 번듯해진 사무실에는 온통 낯선 사람들이 들어찼다.
그들이 노린 것은 ‘20860’이라는 코스닥의 다섯자리 코드뿐이다.
결국 그렇게 송풍기 회사 파워텍의 껍데기를 쓰고 홍콩 리타워그룹의 인터넷비즈니스 지주회사 ‘리타워텍’이 태어났다.


변신한 리타워텍 매출액 100배 증가 예상 상장기업을 인수해 그 기업의 원래 사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사업을 그 기업의 틀 안에 밀어넣어 결국 신규상장의 효과가 나게 하는 역상장(reverse listing 또는 backdoor listing, 인수해 발전시킨다는 뜻에서 A&D로 불리기도 함). 올해 초 국내에 처음 등장한 이들 기업은 한동안 주식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주식시장이 침체기인 동안에 홀로 사상 최장기간 상한가 행진을 벌이기도 하고, ‘작전주’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한 이들 기업들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그리고 선발기업들을 뒤따라 A&D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의 꿈은 무엇일까? 지난 2월 인수된 리타워텍은 불과 반년 남짓 만에 28개 자회사를 거느린 다국적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파워텍 시절 43억5천만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이 올해는 4300억원으로 100배 가까이 급증할 것이라고 한다.
연초 2천원대에 머물렀던 주가는 한때 315만원(액면가 5천원 기준)까지 뛰어올랐고 시가총액 5위의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하반기중에 나스닥에 직상장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리타워텍의 화려한 변신은 역상장을 통한 A&D(인수·개발)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지난 1월 리타워 쪽이 경영권을 확보하면서 ‘기업변신’을 선언했던 이 기업은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떤 길을 걸었을까? 당시 인수주체는 리타워스트레티직스. 당시 파워텍의 대주주였던 이동채씨의 보유지분 16만2천주(지분율 45.85%)를 포함해 모두 18만주(50%)를 사들이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유동물량이 전체발행주식의 20%에 불과한 리타워텍은 외국계 회사가 인수했다는 소식에 힘입어 34일 연속 상한가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벤처캐피털이 아니라 경영지주회사 리타워텍은 주가 폭등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3자배정 유상증자라는 방법으로 세불리기에 들어갔다.
리타워텍은 인수대상회사의 지분을 확보하고 그 회사 대주주들에게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리타워텍의 지분을 인수하게 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어 첫번째 인수업체인 비즈투비즈의 경우, 비즈투비즈의 대주주들에게서 40억원어치(51%)의 지분을 사들이고 이튿날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한 리타워텍의 주식 35억원어치를 사들이도록 했다.
리타워텍은 단돈 5억원을 들여 80억원 가치의 회사 경영권을 확보한 셈이다.
이같은 방식으로 리타워텍은 리눅스인터내셔널과 인터피아, 유니컴네트 등 7개 회사의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어 리타워텍은 지난 6월19일 마찬가지 방법으로 리타워그룹의 계열사인 아시아넷의 지분 51%(1조5천억원 규모)를 확보했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아시아넷은 홍콩과 중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지주회사로 22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회사다.
리타워텍은 이번에도 1조4930억원어치의 아시아넷 지분 6076만주를 사들이고 이튿날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1조4792억원의 리타워텍 지분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사상 최대의 M&A를 성사시켰다.
시가 3조원의 회사를 138억원에 인수한 셈이다.
이번 인수합병을 통해 리타워텍은 한국과 중국, 홍콩에 이르는 30개의 인터넷 자회사 경영권을 확보하게 됐다.
리타워텍은 여기에 중국 허치슨텔레콤의 CEO인 데니스 루이를 CEO로 전격 영입해 또 한차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정교한 방식의 지분맞교환 인수합병의 함정은 주가상승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주가가 지금처럼 부진을 면치 못한다면 리타워텍은 더이상 적극적인 M&A에 나설 수 없게 된다.
유태숭 부사장은 “1억달러 규모의 외자유치가 진행되고 있고 국내기관과 투신사들과도 펀드조성을 협의중이다.
조만간 외국계 증권사의 기업분석 보고서가 발표되고 나면 주가 또한 충분히 반등의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리타워텍은 스스로가 벤처캐피털도 아니고 인큐베이팅 회사도 아니라고 한다.
이 회사는 굳이 경영지주회사로 불리기 원한다.
이들은 인수대상기업을 선정할 때 그룹의 네트워크 시너지를 최우선 요건으로 하고 지분의 51% 이상을 확보해 경영전반을 직접 관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인터넷그룹’이라는 꿈은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다각화와는 어떻게 다를까? 리타워 쪽은 이 질문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보였다.
사업분야가 이비즈니스 솔루션과 인프라, 인터넷 기반기술, 광고미디어 및 전자상거래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돈이 된다’고 여기저기 투자하는 재벌이나 일반 창업투자회사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면 리타워텍이 요즘 주시하는 인수대상 업체들에는 ERP(전사적 자원관리) 솔루션이나 또는 MRO(기업소모성자재 ) 솔루션이 많다.
철저하게 ERP와 MRO 네트워크의 빈 공간이나 결점을 채울 수 있는 업체들을 선별 인수하겠다는 뜻이다.
파트너십 계약을 통해 완전한 ERP와 MRO 패키지를 서비스하겠다는 계획이다.
‘파워텍’에서 ‘리타워텍’으로 명패를 바꾼 껍데기 아래에 부문별로 알맹이 기업들을 채워넣어 인터넷그룹의 중심으로 자리잡겠다는 계산이다.
로커스, 한국인판 리타워텍을 노린다 최근에는 로커스가 세라믹필터 제조업체인 코아텍을 인수한 뒤 리타워텍과 비슷한 모델의 A&D를 발표해 한동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로커스는 주사업인 기술부문을 제외한 인터넷, 미디어, 콘텐츠 사업부문을 코아텍에 이관할 계획이다.
로커스는 기술집약적 전문회사로 특화·성장시키고 코아텍은 인수, 합병, 투자, 경영자문 등의 전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지주회사로 육성한다는 것이다.
코아텍의 기존 사업은 별도의 사업부문으로 남는다.
로커스의 A&D전략은 여러가지 면에서 리타워텍과 닮은꼴이다.
굴뚝기업을 인터넷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출발점이 우선 같고, 그 인터넷기업은 그야말로 ‘껍데기’로 활용하고 그 밑에 인터넷기업들을 모아놓은 지주회사 노릇을 하게 만들 계획이라는 점도 그렇다.
특히 ‘돈 되는 곳에 닥치는 대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놓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관련 기업들을 인수하겠다는 사업전략이 리타워텍의 그것을 꼭 닮았다.
다만 리타워텍이 ERP나 MRO를 연계한 B2B(기업간) 전자상거래 솔루션 부문에 사업역량을 집중하는 것처럼, 코아텍은 인터넷과 미디어, 콘텐츠 부문에 특화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코아텍은 조만간 로커스로부터 사이더스와 웹시네마, 보다텔, 포스닥, 이앤텔 등의 보유지분을 전량 넘겨받게 된다.
시장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주가가 상승세를 타게 되면 코아텍도 리타워텍처럼 주식 맞교환을 통한 인수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홍콩계 투자은행인 H&Q가 인수한 동특도 비슷한 유형의 인터넷 비즈니스 지주회사로 나아갈 계획이지만, 아직은 기존의 석유 관련 사업을 살리는 데 치중하고 있어 인터넷 쪽에서 구체적인 사업진행은 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엔피아와 모헨즈 ‘지주회사는 싫어요’ 여기에 견주면 엔피아나 모헨즈의 전략은 소박해 보인다.
이들 역시 주식시장 진입에는 리타워텍 등과 마찬가지 전략을 썼다.
엔피아는 지난 3월 데이콤에서 분사해 나오면서 코스닥에 등록된 개나리벽지를 인수한 뒤, 회사명을 바꾸고 네트워크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엔피아 김상국 총괄사장은 “머니게임을 노리고 셸 컴퍼니를 인수해 역상장한 다른 기업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잉여자금을 조달해 외부에 투자하기 위해 상장을 서두른 것이 아니라 영업상 투자필요가 생겨 불가피하게 약간의 편법을 써서 상장을 서둘렀다는 얘기다.
첨단기술 기업이 신경써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핵심역량의 강화’라는 점에서 보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지난 5월 레미콘회사인 한일흥업을 사들여 그 안에 들어앉은 뒤 ‘모헨즈’로 사명을 바꾼 한국미디어산업기술도 비슷한 경우다.
이 회사 정병철 사장은 “올해까지 연구개발이 완료돼 본격적으로 해외진출을 모색할 텐데, 100억원 정도의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 단기간에 시장에 들어설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인터넷 사업을 벌이려고 계획하던 한일흥업과 자금조달이 필요하던 한국미디어산업기술이 만나 매우 자연스럽게 일이 진행됐다는 것이다.
정 사장은 “영업상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이라면 투자할 수도 있지만, 주력사업인 미디어 솔루션 분야가 항상 최우선 투자분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최근 미래랩이 인수한 바른손의 경우도 일종의 역상장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들은 이질적인 조직을 어떻게 한몸 안에 담아 관리하고 있을까? 엔피아는 인수 뒤 벽지 사업부문(GNI)과 엔피아 사업부문이라는 두개의 이질적인 조직으로 나누었다.
벽지 사업부문에서는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모두 교체됐다.
모헨즈는 조금 다르다.
기존 한일흥업 대표이사가 공동대표이사 겸 레미콘 부문 경영을 맡아 완전히 두개의 회사가 공존하는 모양새다.
리타워텍도 현재는 기존 파워텍 부문을 사업부로 두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이들 모두 결국은 재분사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회사 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껍데기 안에 흑진주 채워질까 A&D는 성장 한계를 맞고 있는 굴뚝산업에게는 그럴듯한 대안인 것처럼 보인다.
자금조달이 급한 벤처기업에게도 쉽고 빠른 길이 된다.
그래서인지, M&A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A&D에 관련한 문의가 수요 공급 양쪽 모두에서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현재 10여개 업체가 매물로 나와 있는 상태인데, 수요가 점점 늘고 있어 인수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하다.
기술력이 없는 기업이 단기간에 자금을 마련해 지주회사화함으로써 매출을 늘리고 주가를 띄워보려는 머니게임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KGI증권 유제우 애널리스트는 “주가상승은 실적호전이 전제돼야 하는데 A&D만으로 수십배로 뛰어오르는 요즘 상황은 문제가 있다”며 “일시적으로 지나갈 유행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이 주가상승 뒤 매물을 쏟아내 차익을 실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조달한 자금은 첨단사업에 재투자할 계획이며, 머니게임은 말도 안된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빈 조개껍데기 안에 흑진주가 들어앉게 될지, 모래만 가득 차게 될지는 지금 껴안고 있는 덩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갈고 닦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로커스의 셸게임 “글쎄요?”
로커스가 코아텍을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무분별한 사업다각화가 극에 달한 느낌이었고 김형순 사장의 자금동원능력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김형순 사장이 보유지분을 매각할 계획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로커스는 한때 투매양상으로 치닫기도 했다.
헐값에 팔린 코아텍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다.
로커스는 코아텍의 주식 164만4570주(지분율 40.77%)를 주당 8850원에 사들였는데 이는 당시 시장가(2만500원)의 43.2%에 불과한 가격이었다.
인수발표 직후 로커스의 주가는 9.9% 가까이 떨어졌고 코아텍은 상한가 끝에 하한가로 반전했다.
로커스는 코아텍의 인수가 무분별한 사업다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로커스는 기술전문회사로 남고, 코아텍은 로커스의 자회사들을 인수해 인터넷과 미디어, 콘텐츠 부문을 전담하는 지주회사로 육성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코아텍의 변신은 최근 리타워텍과 바른손에 수십배 시세차익을 안겨주었던 A&D(인수·개발)의 일종인 셈인데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로커스 주가는 지난 16일 4만원선이 무너지면서 연중 최저치로 치닫고 있고 코아텍은 5일 연속 급등세를 연출하다 17일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증권전문가들은 인터넷 지주회사로 명확한 비전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재원 조달에 대한 우려감이 주가하락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메리츠증권의 허도행 연구원은 로커스가 “경영기능이 배제된 단순한 기술업체로 전락할 위험에 빠져 있다”고 지적하고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조정했다.
삼성증권의 강성빈 수석연구원은 “서로간의 시너지 효과는 크게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짓는다.
오히려 김형순 사장의 관심이 코아텍 쪽으로 옮겨가면서 경영에 소홀히 할 것이 우려된다고 말한다.
“실적기업이라고 무조건 신뢰하지 않는다” 한편 로커스는 시장의 이런 냉담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김형순 사장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보유지분은 단 한주도 매각할 계획이 없고 현금유동성도 풍부하다”고 강조하는 한편 코아텍 인수의 당위성과 사업전망을 설명하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정회진 마케팅팀 과장은 “그동안 광범위한 사업다각화로 다소 불분명했던 로커스의 색깔을 명확히 하고 핵심사업 부문인 CTI(컴퓨터·전화 통합)를 비롯한 통합기술 분야에 사업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장기계획의 일환”이라고 강조한다.
로커스의 경우는 A&D 관련종목이라고 무조건 대박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대표적인 실적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로커스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하고 있다.
예상에 못미친 상반기 실적(342억원, 올해 매출목표 1100억원)이나 사이더스 등의 비관련 사업다각화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코아텍의 합병과 대대적인 사업구조 개편이 투자자들의 불신을 씻고 로커스의 성장성에 날개를 달게 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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