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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권혜경 음악치료사
[나는프로] 권혜경 음악치료사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1.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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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 대신 음악 든 히포크라테스
권혜경(30)씨는 ‘음악치료사’(Music Therapist)란 직함이 새겨진 명함을 내민다.
대체 음악으로 뭘 치료한다는 걸까? 음악이 인간을 약물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는 것인가?

음악치료사란 신체·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음악이란 보조수단을 이용해 병세가 호전되도록 돕는 진료사를 말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음악을 틀어주거나 연주를 주관해 환자의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보조사 정도로 생각해선 안 된다.
환자의 증세와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음악을 선정한 뒤 치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적용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주도하는 사람이 음악치료사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권혜경씨가 음악치료사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다소 즉흥적이었다.
평소 음악을 좋아해 졸업 후 음대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친구로부터 음악치료사란 직업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이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서툰 영어로 미국 뉴욕대학에 전화를 걸어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음악치료사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영문 자료만 보고 일사천리로 유학 수속을 밟고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는 3년 뒤 그에게 ‘음악치료학 석사’라는 학위를 안겨주었고, 미국 공인 음악치료사 자격증도 함께 선사했다.
음악치료는 자기탐색 과정 음악치료사의 기원은 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음악가들은 전쟁의 후유증을 앓는 사람들을 위해 위문공연을 열곤 했는데, 이들의 음악이 환자의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것을 발견한 의사들이 정신의학 차원에서 연구를 시작한 게 시작이라고 한다.
외국 몇몇 나라에서는 음악치료사 전문 양성과정과 공인제도가 이미 자리잡은 데 비해, 국내의 경우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음악치료사는 대략 50여명에 이른다.
권혜경씨도 외국에서 정식 학위와 자격증을 따고 귀국했지만 국내에는 이렇다 할 인증제도가 없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재 그가 운영하고 있는 권혜경 음악치료센터www.mtherapist.com는 의외로 출판사로 등록돼 있다.
음악치료사 관련 법규가 없기 때문에 정식 등록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음악치료와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경력이 있는 권혜경씨는 편법으로 사업등록을 할 수 있었지만, 다른 음악치료센터들은 결혼상담소처럼 일반 서비스업으로 등록하거나 아예 미등록 상태로 운영하고 있다.
“등록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기관이 없고 법 규정조차 없으니, 사태가 이쯤되면 불법이 아닌 ‘무법’이 불가피하게 조장되는 셈이죠.” 권혜경씨의 하소연에서 음악치료에 대한 국내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아직 음악치료와 음악감상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권혜경씨는 말한다.
“머리가 나쁜데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음악치료센터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음악치료는 좀더 본질적인 치료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크게 둘로 나뉜다.
뇌졸중이나 뇌성마비, 중풍 등 신체 질환에 맞춰 그에 적합한 음악을 연주하면서 불편한 신체기관이나 근육을 치료하는 신체재활과, 우울증이나 강박증 환자들이 음악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이루도록 하고 환자의 적극적인 반응을 얻어내는 심리치료가 그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음악을 처방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탐색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구체적인 진료계획을 세운 뒤에야 본격 치료에 들어가는 음악치료의 특성상 그 효과는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참을성이 없는 성급한 보호자는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권혜경씨는 조급함을 버리고 장기적인 치료 효과를 믿을 것을 당부한다.
“환자들과 관계형성이 이루어지는 3개월까지는 어느 정도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퇴행과 진전을 반복하는 치료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면 결코 완치란 있을 수 없습니다.
특수교육 정부지원 아쉬워 권혜경씨의 연구센터에는 현재 9명의 아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감정조절에 결함이 있는 아이들인 탓에 치료 도중 갑작스런 행동을 보여 그를 괴롭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다른 치료에서 효과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아 치료의 한계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음악치료사들도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는다.
국내에는 아직 음악치료사들을 위한 상위 교육기관이 없는 탓에, 권혜경씨는 주1회 정기적으로 심리치료사를 찾아 상담과 함께 치료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고 한다.
권혜경씨는 이화여대 평생교육원과 시립아동병원, 국립정신병원 등을 거쳐 지금은 중앙대학교 음악대학과 원광대학교 예술치료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 대학에 제대로 된 치료시설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업은 그의 음악치료센터에서 한다.
음악치료뿐 아니라 특수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은 인색하기만 하다고 권혜경씨는 안타까워한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려면 한달에 최소 100만원 이상이 필요합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부담스러운 액수죠. 경제적 부담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가정도 허다합니다.
진정으로 장애인을 생각한다면 정부에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지원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 권혜경씨의 항변이 고달픈 장애인의 심신을 치료하는 선율로 메아리치는 듯하다.
음악치료사가 되려면
국내에서는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과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과 원광대 예술치료대학원 등 네 곳에서 음악치료사 전문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숙명여대는 매 학기 30~40명, 이화여대는 10여명 안팎의 학생을 선발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명지대와 원광대는 서너명 정도를 선발하고 있다.
이들 학과의 응시율은 17 대 1 정도로 높은 편이지만, 배출되는 음악치료사에 비해 환자 수가 적어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과정을 이수한 후에도 소정의 훈련과정을 거쳐야 음악치료사로 활동할 수 있다.
국내 음악치료사 관련 단체는 한국음악치료학회, 한국임상음악치료사협회, 대한음악치료학회, 한국음악치료협회 등이 있다.
아직까지는 각 단체별로 독립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통합 인증기관은 없다.
미국의 경우는 국가공인 음악치료사 자격증(BC-MT) 제도가 있고, 약 7천여명의 음악치료사들이 병원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지역 국가에서도 공인 자격증 제도를 두고 체계적으로 음악치료사를 양성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이 상대적으로 음악치료사 교육제도가 발달해 있지만, 일본 역시 아직 국가공인 자격증 제도는 없다.
음악치료사가 되려면 기본적인 의학 지식과 함께 음악적 소양과 악기 연주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심리학 지식도 축적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장애인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필수적이다.
환자들을 하루종일 대면하고 있는 업무 특성상 육체적, 정신적 노동강도가 센 편이다.
이에 비해 보수는 아직 적다.
몇몇 종합병원을 제외한 국내 병원에서는 별도의 음악치료사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시간제 근무에 투입되거나 사회복지원 등에서 근무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직까지는 태동 단계에 있는 직업이지만, 외국 사례에 비추어볼 때 제도적 정착이 이루어지고 일반인의 인식이 변화되면 전망이 밝은 직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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