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스테이션 모니터 안에서 회로설계 계산과정이 연속으로 펼쳐친다.
서두인칩 www.seodu.co.kr 주문형 반도체(ASIC)센터 이화이(34) 팀장의 홍채가 한껏 열린다.
모니터 속의 그래프들을 다 빨아들일 듯.
6월초 미국 LA에서 열린 디자인 오토메이션 컨퍼런스(DAC)에 참석한 이 팀장은 천만 게이트(Gate, 논리소자)짜리 칩을 보고는 홀딱 빠져버렸다.
시스코에서 내놓은 이 네트워크 칩은 초집적회로 설계의 최첨단 기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텔 펜티엄Ⅲ 칩 하나에 보통 수백만 게이트가 들어갑니다.
그 정도면 게이트 하나의 길이가 5마이크로미터(㎛)정도입니다.
게이트를 연결하는 선의 두께는 0.2마이크로미터고요. 거기에 천만 게이트를 넣은 겁니다.
마이크로미터요? 10의 마이너스6승미터죠. 천만 게이트짜리 칩이면 당연히 훨씬 더 게이트가 작아집니다.
” 반도체는 뒤웅박 팔자, 시장에 따라 죽고살고 이 연구원은 차분한 어조로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주문형 반도체의 구조와크기를 설명했다.
반도체의 크기는 보통 1에서 1.5센티미터의 길이로정해져 있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가는 게이트들은 수가 많아질수록 즉집적도가 높아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반도체의 설계도는 2백배 이상 확대해야 비로소 볼펜심에 박힌 구슬보다도 작은 게이트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다.
확대된 설계도는 언뜻 보면 직각으로 꺾인 수많은 선과 점들로 이루어진 추상화처럼 보인다.
그 조그만 통신용 모뎀칩을 통해 지구 저편의 세계를 여는 문이 들어있다니 신기하기조차 했다.
“수십만, 수백만 게이트짜리 칩이 이 정도니 천만 게이트짜리 칩은 얼마나 복잡하겠어요. 설계를 하는 것부터 제조하고 그것을 검사하는 것도훨씬 어렵지요. 게이트가 많은 만큼 기능이 많아지는 것이니까요.보통 네트워크나 스위칭 칩들이 천만 게이트 이상입니다.
” 우리가 보통 보는 까만 케이스의 반도체는 보통 세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시스템업체가 회로설계를 해오면 서두인칩 같은 ASIC설계회사가 반도체로 ASIC 설계를 하고 현대반도체 등 제조업체가 제작을 한다.
이팀장이 하는 일은 ASIC 설계다.
통신용 모뎀칩과 영상수신칩 등을만든다.
올해 서두인칩 ASIC설계센터의 최대 과제는 IMT2000의 모뎀칩 개발이다.
올해말에 시험서비스를 개시한다.
그러나 8월인 지금까지도 계속 사양을 바꾸며 시제품을 만드는 중이다.
세계 어디서나 통해야 하는 통신기술이기에 나라마다 다른 상황을 반영해 표준규격을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통신환경과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가느라 끊임없이 공부하고 세미나를 쫓아다니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그래도 힘들여 만든 반도체가 제품 속에 들어가 멀쩡하게 기기를 작동하는 것을 보면 ‘거기 내가 만든 놈이 들었소’ 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반면 어렵게 설계한 칩이 시장상황 때문에 사장되는 것을 지켜볼 때는 서운하기 그지없다.
초고속망 확산 여파로 무선가입자망(WLL) 사업이사그라든 97, 98년에는 애써 개발한 칩이 무용지물로 되어버리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회로설계할 때가 가장 재밌어 “그래도 기술과 사람은 쌓이는 거니까요. 덕분에 IMT2000 모뎀칩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겁니다.
” 이렇게 말하는 이 팀장의 눈이 차가우면서도 맑아 보였다.
마치 반도체 위에서 보일듯 말듯 반짝이는 금빛 배선 같이 단단하고 심플한 느낌이다.
그는 어떻게 반도체와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그 이유 역시 심플하다.
“취업이 잘 된다고 해서 서울산업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갔어요.전자공학 공부는 아주 어려워요. 순수물리학과 응용물리학, 순수수학과 공업수학,전자회로도 알아야 하거든요.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갔어요. 거기서 고집적회로를 전공했죠.” 가장 재밌는 일이 뭐냐고 물으니 ‘회로를 독창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늘 그는 1센티미터짜리 통신용 모뎀칩 위에 저 너머 세계로 가는 문(게이트)을 세우며 어떤 ‘재밌는’ 일을 찾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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