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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필름없는 병원 실현 먹구름
[포커스] 필름없는 병원 실현 먹구름
  • 안수민 <전자신문> 기자
  • 승인 200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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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PACS 보험수가 인하 검토… 업계 “의료정보화 역행정책” 반발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을 가리지 않고 의료계에서 디지털 의료 서비스를 위한 망치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계층 가운데 특권층에 속하면서 가장 보수적인 의료계가 뒤늦게나마 21세기 생존전략은 병원정보화밖에 없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병원에서 필름과 종이를 몰아내고 디지털 병원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병원정보화 수단으로는 처방전달시스템(OCS), 의무기록시스템(EMR),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임상병리정보시스템(LIS) 등 다양한 시스템이 있는데, 그 가운데 PACS 도입 열기가 가히 폭발적이다.
병원들은 PACS를 우선 들여놓은 후 OCS, EMR, LIS 등을 하나씩 도입해 모든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묶음으로써 진정한 무필름·무종이 병원을 구현할 것을 꿈꾸고 있다.
PACS란 X선 진단기, 자기공명영상진단기(MRI), 전산화단층촬영장치(CT), 초음파영상진단기, 내시경 등과 같은 방사선 진단 영상들을 디지털 형태로 획득한 후 저장·전송·디스플레이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과거 X선 필름으로 보관하던 의료영상을 디지털 영상정보로 저장하게 되면, 방사선과 전문의와 임상의는 기존 필름 뷰박스(film viewbox)가 아닌 영상조회 단말기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다.
PACS는 필름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할 때보다 필름 보관용 창고관리와 필름 구매에 드는 비용과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 필름을 현상하는 과정이 생략되고, 수년 전에 찍어둔 환자가 병원에 진료받기 위해 찾아오더라도 의료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등 영상관리 업무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된다.
이는 결국 의료 서비스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PACS를 도입한 한 대학병원 교수는 “수련의 시절 X선 필름을 찾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
필름보관실에서 오래 전에 찍은 필름을 찾는 데 시간이 지체되거나 정리 소홀로 필름이 분실되면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게 돼 병원정보화의 이점을 새삼 느낀다”고 말한다.
X선 필름 수입량 크게 줄어 이는 PACS가 병원 환경에 미치는 영향 중 하나의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어쨌든 병원은 PACS의 이점을 확인하고 이를 도입하는 데 앞다퉈 나서고 있다.
‘풀(Full) PACS’를 가동하는 병원은 2년 전에는 두곳뿐이었으나 지금은 50여곳으로 늘어났다.
풀 PACS란 병원 모든 진료과에서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현재 구축을 검토하고 있는 병원까지 합치면 100개를 넘을 것 같다.
디지털 병원이 짧은 기간에 급격히 증가한 데는 정부의 지원정책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대한PACS학회가 의료계 정보화를 촉진하기 위해선 PACS에 대해 보험수가를 인정해줘야 한다고 수차례 정부에 건의했고, 보건복지부가 99년 11월에 이 건의를 받아들이면서 PACS 도입 병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PACS를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을 최장 5년 안에 회수할 수 있게 PACS 건강보험수가를 인정해줘 PACS 구축이 크게 늘었다.
PACS 영상 1장당 3천원, 1장 추가시 1500원의 수가를 인정하는 건강보험수가가 PACS 산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
한국의료용구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지난 99년 3100만달러에 달했던 방사선 필름 수입이 PACS 보험수가 인정 이후 점차 줄어, 지난해에는 3.9% 성장에 그치면서 3222만달러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99년 필름 수입증가율이 14.1%였던 것을 감안하면 필름 수입 증가세는 크게 꺾인 셈이다.
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 임재훈 교수는 “PACS를 설치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0병상당 2억원 이상의 이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나 중소병원의 경우 투자비용을 2~3년 안에 회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300병상 규모의 S종합병원은 PACS를 사용한 후 진료수입이 연 5억8천만원이 늘었다.
병원정보화 열기에 힘입어 PACS 장비업계도 활기를 띠기 시작해, 대기업들이 속속 뛰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메디페이스, 비트컴퓨터, 마로테크 등 기존 업체 외에 메디컬스탠더드, 피플커뮤니케이션즈, 시투테크놀로지, 중외정보기술 등 신생업체가 PACS 시장에 진출했고, 해외시장 개척에만 힘쓰던 삼성SDS도 국내 시장에 눈을 돌리고 참여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일부 업체는 국내 시장에서 갈고 닦은 기술과 구축 경험을 기반으로 유럽, 미국, 일본 등지에 진출하는 등 해외 시장에 PACS 기술력을 발휘하고 있다.
의료계 “지원 더 늘려야” 주장 그런데 국내 의료계에 디지털 바람을 몰고온 PACS 산업에 최근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PACS에 대한 보험수가 인정은 그동안 의료계에서 PACS를 도입하는 데 활력소 역할을 해왔는데, 정부가 이를 인하할 것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부의 이같은 검토 배경에는 제품 수입단체인 대한방사선재료업조합이 “환율 인상으로 원화 가치가 떨어졌으니 방사선필름 수입에 따른 환차손을 보험수가에 반영해야 한다”며 “PACS 보험수가가 지나치게 높아 보험재정 악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하는 등 압력을 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병원계와 업계는 현재 장당 3천원 수준인 일반 촬영 PACS 보험수가를 방사선필름 수준인 1500원대로 내리면 그만큼 투자회수 기한이 길어져 한창 달아오른 병원의 정보화 투자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는 정부가 적은 비용을 들여 의료선진화와 의료정보 산업의 발전, 방사선필름의 수입 대체 효과, 의료 서비스 질 개선 등 커다란 경제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또 병원이 경영개선의 일환으로 정보화에 투자하는 비용을 굳이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 비용으로 지불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업체도 다수 있다.
특히 필름 수입업체들은 불만이 높다.
소비감소로 매출에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PACS 업계와 병원계는 효율성이 없는 부분에 대한 건강보험 재정지원은 줄여 나가고, 당장은 좀더 많은 돈이 들어도 올바른 방법과 방향을 찾는다면 우선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정보화를 통한 효율화와 의료 서비스 질 확보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필름 없는 병원’에 정부가 수가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의료기관 디지털화에 대한 지원은 계속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일본 후생성은 병원정보화를 촉진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의 보험정책을 꼽고, 1~2년 안에 PACS에 대한 보험급여를 실시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우리나라에 전문가를 파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가 선진국보다 앞서 시행한 PACS 보험수가를 놓고 벌이는 업계간의 논쟁은 의료계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겪는 한차례 홍역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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