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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리더] 마이크로 소프트 고현진 사장
[디지털리더] 마이크로 소프트 고현진 사장
  • 김상범
  • 승인 2000.09.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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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글로벌 경쟁력’으로 승부할 때
* 고현진 1953년 출생 1980년 서울대학교 상대 졸업 1981-83년 한국은행 1984-94년 한국IBM 1994-98년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상무 1998년 6월-1999년 11월 마이크로소프트 기업고객부 본부장 1999년 11월 9일 마이크로소프트 대표이사 사장 취임
  • 얼마 전에 데스크톱의 마지막 버전이라는 ‘윈도우미’(Windows Me)를 출시했죠. MS는 이미 ‘닷넷’(.NET)이라는 새로운 플랫폼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윈도우미는 결국 한시적인 제품이라는 얘기인가요.
    하드웨어도 그렇고 소프트웨어도 그렇고 급격한 기술발전에 따라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IT산업 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을 겁니다.
    윈도우3.1이 기술적으로 완벽해 엔지니어가 업그레이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만큼 풍부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면 MS나 인텔 다 망했겠죠.(웃음) IT산업에서는 어느 제품이나 한시적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점에서 윈도우미는 닷넷이 나오기 전에 마지막 떨이로 나온 제품은 아닙니다.
    전통적인 IT 비즈니스 흐름에서 이해해야 하는 측면이 있는 거죠.
  • MS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성공하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새롭게 등장한 기술이나 제품 가운데 될 만한 것을 찍어 거기에 투자하고, 그렇게 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평을 듣기도 하는데요. 남의 기술에 마케팅을 보태 성공했다는 거죠. 그런 얘기 많이 듣습니다.
    무엇인가 하나로 돈 벌어놓고 그 다음부터는 기술력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을 잘 활용해 돈 버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개발업체가 아니라 마케팅회사라는 부정적인 시각이죠. 그런데 IBM, 썬, 휴렛팩커드 같은 성공한 IT기업들도 모두 기막힌 마케팅회사라는 얘기를 듣습니다.
    IT 기술은 응용기술입니다.
    다른 회사가 진입할 수 없는 새롭고 획기적인 기술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는 거죠.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먼저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시기에 맞춰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마케팅이 더 중요한 겁니다.
    IBM이나 썬, MS의 창업자들이 노벨물리학상 후보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경영대상을 받을 사람들이죠. 기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마케팅에서 실패한 사례는 너무도 많습니다.
    이 시장에서는 기술적인 성공이 상업적인 성공까지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마케팅은 중요합니다.
    물론 MS가 기술에 소홀하다거나 능력이 뒤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 마케팅회사라고 해서 나쁠 것도 없고 IT산업에서 마케팅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어쩌면 지사는 완전히 마케팅회사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 MS 한국지사는 너무 조용합니다.
    조용히 있는 것이 마케팅 전략인가 할 정도로 말이죠.
    정확히 보셨습니다.
    현재 우리 전략이 그렇습니다.
    미국에서 소송에 휘말려 있는 상황에서 혹시나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은 가능한 한 자제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사건이 최근 연속적으로 일어났구요. 최근 네오위즈 사건은 MS가 비난의 대상이 돼야 할 게 아닙니다.
    한 대학교수와 특허분쟁도 우리가 다소 무심한 점은 있었지만 회피하거나 고압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 본사가 소송에 계류중인 상황이어서 우리가 도덕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조용히 대처하고 있는 겁니다.
  • 마이크로소프트 지사장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데 무엇보다 큰 걸림돌은 국민정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기업으로서 시장을 장악해야 하는 것은 사명일 테고.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 실제 토착화에 대한 주문도 적지 않을 텐데요.
    우선 이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빌 게이츠와 도원결의를 맺은 적도 없고 또 뭉칫돈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저 월급받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할 뿐입니다.
    토착화 얘기는 저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대답하기 제일 어려운 질문일 겁니다.
    사실 그런 질문과 요구에 너무 많이 시달리고 있죠. 어떤 분은 ‘같은 한국사람끼리 그냥 주면 안되냐’ 뭐 이런 얘기도 합니다.
    (웃음) 무엇보다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는 게 본연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다국적기업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문화적 배경을 갖고 오는데 그러면서 현지 문화와 갈등이 생기죠. 저는 그걸 풀 해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재량껏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죠. 기업 입장에서 보면 사실 토착화는 글로벌과는 배치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애가 되거든요. 그래서 토착화 얘기가 나오면 골치아프죠. 삼성도 마찬가지예요. 삼성 해외법인도 삼성의 기본 프레임워크에 맞춰가는 겁니다.
    게다가 토착화는 국내에서 다소 왜곡된 면도 없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미국에선 1000원 받는데 여기서는 500원에 줘라 하는 식인데 그런 것은 어렵거든요. 저는 외국 기업들이 나름대로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국적기업의 근무방법이 이런 거고, 지식근로자란 어떻게 일하는 건지, 관리자와 근로자 사이의 관계가 어떤 건지, 글로벌 경제에서 어떤 것이 더 경쟁력일 수 있는지, 그런 노하우를 전파하는 게 진짜 공헌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아전인수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실제 IT산업이 발전하면서 외국 기업들이 국내 기업들에 미친 영향을 꼼꼼히 살펴보면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외국계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아직도 높다고 합니다.
    월급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기업문화에 대한 선호라고 생각합니다.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같은 것 말이죠. 속으로는 외국계 기업을 선호하면서 겉으로는 비판하는 이율배반적 시각도 있다고 봅니다.
    벤처기업으로 사람들이 이동하는 것도 기존 기업들의 조직문화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한 면도 있다고 보거든요.
    그렇게 얘기하니 눈물이 다 나려고 합니다.
    (웃음) 우리 처지에서 근본적인 문화를 바꿀 수는 없지만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적으로 한국 위치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도록 파이팅하는 게 책무라면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 어려운 입장이 이해는 가지만 너무 조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신있게 이런 것은 잘못이다, 외국 기업에서 배울 것은 배우자 하고 당당하게 마케팅할 생각은 없습니까.
    여전히 일반 소비자 시장은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아까 워드프로세서 얘기도 나왔는데 우리라고 시장을 장악하고 싶은 생각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국내 워드프로세서 시장 현황이 이렇습니다.
    PC가 100만대 출하되면 워드프로세서는 150만개에서 200만개가 깔립니다.
    번들로 말이죠. 워드프로세서 팔아서 돈을 번다는 것은 어렵다는 거죠. 돈도 못버는 데 괜한 오해로 물의를 일으켜 좋을 것 없죠. 우리는 실제 사용률을 높이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더 팔 수 있는 여지는 없다고 봅니다.
    이미 갖고 있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거죠. 물론 기업시장은 공격적으로 갈 겁니다.
  • 리눅스의 공세는 어떻습니까. 특히나 국내에서는 리눅스에 대한 열기가 높은 편인데. 사실 우리는 리눅스에 대해 특별히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습니다.
    운영체제 시장에 대해서 MS는 만반의 경계태세로 늘 싸우고 있거든요. 리눅스는 그저 운영체제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고 리눅스만 특별히 상대해야겠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란 거죠. 다만 국내의 경우 리눅스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제가 정부에 뭐라 할 수도 없잖아요. 사실 운영체제 하나가 시장에 나와서 자리잡을 때까지 겪어야 하는 과정이 쉽지가 않습니다.
    리눅스도 이를테면 비즈니스 환경에서 성공해야 한다고 봅니다.
    단지 유행처럼 떠가지고 벤처기업들이 지원하는데 사실 그것하고 실제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것하고는 다른 거죠. 이미 타이콤의 경험도 있지만 억지로는 안됩니다.
    더군다나 글로벌 마켓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말이죠. 운영체제와 관련된 국내 IT 업계 종사자들의 열망, 정부나 연구기관들의 열망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좀 다른 시각으로 봐줬으면 합니다.
    지금 운영체제 만드는 나라가 몇개나 됩니까. 우리가 운영체제 못 만든다고 후진국은 아니잖아요? 제조업 마인드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나서서 얼마나 힘을 소모했습니까. 케이도스가 그랬고 타이콤 역시 그랬죠. 우리나라 시장은 한 업체가 독식해도 작은 시장이거든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말이죠. 저는 리눅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적으로 밀어서 성공할 비즈니스 모델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 기업들이 리눅스 가지고 중국에 간다 하는데 중국IBM의 비즈니스가 한국IBM보다 큰가요? 아마 절반도 안될 겁니다.
    단지 인구가 많아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저는 앞으로 5년 안에도 중국의 IT시장이 한국보다 커지리라고 안 봅니다.
    시장 원리에 따라 특화된 기술적 전문성을 배양해야 하고 정부도 그런 가이드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교육이나 인력양성 쪽에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요.
  •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투자도 많이 합니까. 소규모 투자는 웬만한 수준에서 가능하도록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그런 것 일절 못하게 했거든요. 부분적인 지분 참여나 기술지원 프로그램, 좋은 협력사가 있다면 인수한다든가 하는 것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 닷컴 위기설, 대란설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닷컴이 진정으로 성장하려면 대기업 위주의 시장구조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제조업으로 영원히 세계 10위 안에 들 수가 없어요. 그래도 가능성 있는 것은 사실 이 분야거든요. 그러니까 정책만 잘 지원하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도 10여년 전에 산업구조조정에 들어가 3차산업으로 대거 이양하면서 얼마나 혼났습니까. 엄청 고생해서 지금의 경쟁력을 갖추게 된 거고 그런 가운데 IT산업이 성장하면서 미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거죠. 정말 국내 산업 전체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닷컴, 아니 닷컴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중소기업들 많이 생겨 경쟁하면서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제조업으로는 늘 2류국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닷컴을 비롯한 벤처기업들이 정말 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닷컴 재벌’이 나오면 조금 배 아프더라도 대국적인 측면에서 기뻐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새로운 부자들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똑똑한 사람들이 자꾸 뛰어들 겁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삼성, 현대를 제치는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부가 영원히 상속되는 기업환경, 이런 분위기에서는 영원히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창의력을 발휘할 수도 없구요. 소유와 경영의 분리 그런 얘기 나오는 것도…. 오너체제 그거 정말 안되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과격합니다.
    하지만 살살 써주십시오.(웃음)
    [취재후기]
    천재도 없고 요행도 없다
    조심스러웠지만 할 말은 했다.
    높낮이 없는 차분한 목소리로 외국기업, 특히 세계 최강 마이크로소프트의 지사장이 느끼는 국내 기업환경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냈다.
    부정도 긍정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고현진 사장은 대학 졸업 이후 잠시 한국은행에서 근무한 것을 빼면 대부분 외국의 유명 IT기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한국IBM,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까지 세계적인 기업의 국내지사에서 일했다.
    그래서일까.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많이 얘기했다.
    아마도 그런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먼저 말을 꺼내곤 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외국기업에 근무한다는 것만으로 정서적 반감을 가지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 그래서 그의 비전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만들기’인지도 모른다.
    굳이 최고경영자를 구분지어 설명하라면 아마도 지사형 경영인쪽에 앉혀놔도 괜찮을 듯싶다.
    취미는 골프, 주량은 소주 반병, 기억에 남는 영화는 스타워즈. 아주 심심한(?) 질문 몇가지 던지고 나서 더 심심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경영철학은? “천재도 없고 요행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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