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45 (토)
[나는프로] 한미창투 투자심사부 이영민 부장
[나는프로] 한미창투 투자심사부 이영민 부장
  • 이경숙
  • 승인 2000.09.2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애하듯 ‘느낌’을 따릅니다
누구에게든 결정적 만남의 순간이 있다.
장대비가 마른 땅에 첫 물길을 내듯 한 인생을 결정짓는 만남이 있다.
한미창업투자 수석심사역 이영민(37) 부장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한미창투에 들어와 맨처음 한 일이 담보물건 경매였어요. 부도난 회사 사장의 숙부집이었죠. 크지 않은 단독주택이었습니다.
그 노인의 얼굴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사업에서 실패하는 건 죄악이구나, 하고요.”
“사업에 실패하는 건 죄악” 이 부장은 “투자하는 사람은 실패의 쓴맛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업이 망하면 관련된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자기판단이 틀렸을 때 그 영향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부장 자신은 아직 실패의 경험이 없다.
그가 느낀 ‘쓴맛’은 동료 심사역들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며 체화한 것이다.
그렇게 신중한 성향 때문일까? 그는 자신의 투자스타일을 ‘보수적’이라고 자평한다.
“사업은 기본적으로 망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성공을 목표로 하는 게 벤처죠.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가 기회를 맞아 훌쩍 큽니다.
리스크(위기)에 약한 회사는 기회가 오기 전에 죽을 수도 있거든요.” 이 부장은 세가지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판단한다.
첫째, 경영자가 충분한 능력과 자질을 갖췄는가. 둘째, 현재 뜨고 있는 분야의 사업인가. 셋째, 경쟁우위를 얻을 수 있는 기술이나 서비스 등이 있는가. 이 세가지 요인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아무리 친한 친구가 와서 투자를 사정해도 이렇게 잘라 말한다.
“일찍 사업을 접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될 거야.” 그런 그가 실전에서 가장 믿는 것은 뜻밖에도 자신의 ‘감’이다.
“감이 좋은 경영인이 있습니다.
반면 경력이 좋고 똑똑하지만 느낌이 안 좋은 사람이 있지요. 그럴 때 저는 ‘감’을 더 믿습니다.
연애할 때처럼요.”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기사엔 쓰지 말아달라며 싱긋 웃는다.
이유를 물으니 그 대답이 걸작이다.
“사실 사업이란 건 운칠기삼(運七技三)입니다.
성공 요인의 역할은 30%뿐이죠. 우리 투자심사역 역할은 그 30%를 충분히 충족시켰는가 판단하고 충족시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학적인 투자를 하는 게 일인 사람이 ‘실은 70%가 운입니다’ 하고 말하면 안되잖아요.” 그가 딱 한번 자신의 원칙을 깬 적이 있다.
도산 직전의 맥시스템에 재투자한 일이다.
“97년 초 맥시스템에 한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IMF 구제금융기를 거치면서 휘청했죠. 도산 위기를 맞은 겁니다.
원래 벤처캐피털은 불황 때엔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주식 투자와 마찬가지죠. 그런데 경영자인 문승열 사장에게 신뢰를 강하게 느꼈습니다.
성실하고 클리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재투자를 결정했죠.” 맥시스템은 지난해 말 코스닥 등록 후 한미창투에 투자대비 10배의 이익을 안겨줬다.
올 상반기 순이익증가율이 1800%에 이르렀다.
물론 흔한 경우는 아니다.
이름 걸고 책임지는 펀드 운용하고파 이 부장은 지난 5월 <닷21>이 60개 벤처캐피털 심사역 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무 벤처캐피털리스트 베스트 10’ 설문조사에서 2위에 오를 정도로 동료들 사이에 정평이 났다.
유망한 벤처기업을 선택하는 동물적 직관력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포항공대 산업공학 석사, 앤더슨컨설팅 컨설턴트, 포항제철 종합기획실 재무담당을 거친 이론적, 경험적 배경 덕분일까. 학부 시절부터 벤처캐피털리스트를 꿈꿨다는 그는 자신에게 벤처기업 경영 경험이 없는 점을 아쉬워한다.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거의 다 벤처기업을 직접 경영해보거나 경영하는 사람들입니다.
연구소나 기업체 출신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벤처캐피털리스트들과는 커리어가 다르죠. 이들은 실질적인 사업네트워크를 가지고 벤처기업에 정말 필요한 도움을 줍니다.
머지않아 코스닥시장이 균형감각을 갖게 되면 우리 벤처캐피털리스트들에게도 사업가들보다 뛰어난 자질과 감각이 요구될 겁니다.
” 이 부장의 소망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책임질 수 있는 펀드를 운용하는 것, 즉 자신의 철학과 정책을 맘껏 펼쳐보는 것이다.
*추천 사이트 머니투데이 www.moneytoday.co.kr 이데일리 www.edaily.co.kr 실리콘밸리뉴스 www.svnews.com
벤처캐피털 심사역이 되려면
벤처캐피털 심사역 채용 땐 신입을 뽑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벤처투자를 하기 위해선 기업의 가치를 읽어낼 만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지식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양한 경력의 심사역들이 많을수록 좋은 투자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사역들의 전직을 보면 연구원이나 증권회사 펀드매니저 혹은 애널리스트, 종합상사 해외영업 담당자, 공인회계사, 엔지니어 등 가지각색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경력은 직접 벤처기업을 경영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투자한 벤처기업의 성장에 무엇이 필요한지 판단하고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거든요.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대개 벤처기업가 출신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벤처캐피털 심사역 일을 시작하려 할 때는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가’를 신중하게 생각해보셔야 할 겁니다.
무엇보다 자질과 성향이 중요한 직업이거든요.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라 해도 투자부담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만 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선 공격적이고 리스크(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스크를 수용하든지 아니면 철저히 점검해 피해가든지 판단이 빨라야 하거든요. 또 기업평가나 기업인큐베이팅을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만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사회 전반의 흐름을 내다볼 줄 아는 거시적 안목은 필수요소지요. 스스로 ‘나 문자중독증 아니야’ 할 정도로 신문과 잡지를 많이 읽으세요. 어느 술자리에서 어떤 얘기가 나와도 끼여들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을 기본으로 자기만의 전문분야를 개발하는 게 좋습니다.
전망요? 투자심사역은 장기적으로 괜찮은 직업입니다.
우리 산업이 다양화되는 추세라 중소기업에 투자할 기회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투자심사역의 역할도 그만큼 커질 겁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