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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심리’가 ‘경제’ 죽인다
[포커스] ‘심리’가 ‘경제’ 죽인다
  • 이원재 연구기자
  • 승인 2001.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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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소비심리 위축이 GDP 둔화로 이어져…기업·당국의 신뢰회복이 관건
‘허리띠 졸라매기’ 신드롬이 다시 한창이다.
임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이네 우리사주네 하며 분에 넘치는 대우를 해주는 듯하던 벤처기업들은 연봉계약철을 맞아 어떻게 하면 사람을 줄이고 임금을 깎아볼까 방법을 고민 중이고, 휴짓조각이 돼버린 스톡옵션에다 반토막난 연봉계약서를 쳐다보는 직원들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소비심리도 위축돼 시장 상인들은 언젠가부터 매상이 3분의 2로, 절반으로 줄었다고 아우성이다.
재벌 총수들은 잇따라 “올해는 위기에 대비해 현금 확보 위주의 경영을 하겠다”고 밝히고 나선다.

주변 상황을 보면 이런 절약정신이 당연한 것도 같다.
보기 드문 은행원 파업까지 불러왔던 은행합병이 끝나면 대규모 해고와 실업사태가 이어질 것이라는 흉흉한 전망이 나돈다.
길거리에 벌써 노숙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같다.
하늘을 찌를 듯하던 주가는 바닥을 뚫고 급전직하해 투자자들은 팔지도 못한 채 세토막·네토막난 주식을 부여안고 언제 던져버릴까 틈만 기다리는 모습이다.
장외 벤처기업 주식을 잔뜩 사둔 명동 사채업자들이 문을 닫을 지경이 됐다는 건 이미 오래 된 얘기다.
저명인사들은 너도나도 언론에 나타나서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IMF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얘기들을 쏟아놓는다.
정말 우리 경제에 또다시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심리악화 속도가 경기둔화 속도 앞질러 하지만 한편에서는 “지금 경제심리는 경제기초(펀더멘털)에 견주면 지나치게 악화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념 재경부장관은 최근 “최근 소비 및 투자 심리는 과도하게 위축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리악화가 경기둔화 속도를 앞질러가, 오히려 경기둔화를 재촉하는 모양새라는 얘기다.
IMF 구제금융 직전 대기업들이 줄줄이 넘어가면서 위기론이 창궐할 때 당국이 부르짖던 “펀더멘털은 튼튼하니 걱정말라”는 ‘펀더멘털 튼튼론’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IMF는 이미 극복됐고 최근 상황이 그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설명을 들으면 어쩐지 일리 있어 보이기도 한다.
실제 경제기초와 심리지표들을 비교 분석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년대비 9.2%였다고 추정했다.
애초 목표치인 6~7%보다 크게 높은 수치다.
하지만 4분기 GDP성장률은 6.1%로, 1분기의 12.7%, 2분기의 9.6%, 3분기의 9.2%에 비해 떨어진다.
여기에다 올해 상반기에는 성장률이 4.2%에 그칠 것이라고 KDI는 전망한다.
이런 성장둔화를 가져온 요인이 해외 부문은 아니다.
무역에서는 그런대로 호조세를 보여 경상수지가 지난 한햇동안 103억달러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됐다.
경상수지는 분기별로도 1분기 14억달러, 2분기 27억달러, 3분기 35억달러, 4분기 28억달러로 안정된 흑자행진을 펼쳤다.
올해도 상반기에 33억달러, 하반기에 59억달러 흑자를 달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문제는 내수 쪽이었다.
국내 민간 부문 소비의 전년대비 증가율은 지난 한햇동안 7.4%였는데, 1분기 11.1%에서 2분기 8.9%, 3분기 5.7%, 4분기 4.1%로 눈에 띄게 둔화했다.
결국 민간내수소비 부문이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끌어내린 꼴이 됐다.
사실 이런 펀더멘털 지표들보다 앞서 움직인 것이 심리지표들이었다.
기업인들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종합 기업경기실사지수(BSI·전경련 발표)를 보면, 2000년 3월 131을 정점으로 8월 91까지 떨어졌다.
그뒤 9월 105로 올라서기는 했지만,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올해 1월 62.7까지 곤두박질쳤다.
소비자들의 심리도 비슷하게 움직였다.
6개월 전과 비교해 현재의 가계소비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평가지수(통계청 발표)는 2000년 4월 101.2를 기록한 뒤 ‘소비심리 악화’를 나타내는 100 이하 수치를 보이기 시작해, 8월 96.4로 떨어지더니 11월에는 68.8까지 고꾸라졌다.
투자심리 불안이 소비자지수 하락 야기 그런데 이들보다 더 앞서 움직였던 심리지표가 있다.
바로 금융기관 및 일반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나타내주는 주가다.
종합주가지수는 지난해 1월4일 1059를 기록한 뒤 한번도 1000선을 다시 넘보지 못하고 연말 500선까지 미끄러졌다.
코스닥지수는 3월 초 280선에 올랐다가 연말 50선까지 폭락일로를 걸었다.
이들 지표의 지난해 변화추이를 정리해보면 이렇게 된다.
주가가 가장 먼저 불안해졌다.
그리고 기업심리와 소비자심리가 악화했고, 뒤이어 실제로 민간내수소비가 줄어들었고, 그뒤 경제성장이 둔화세를 보였다.
신영증권 장득수 조사부장은 분석을 한걸음 진전시킨다.
“실제로 IMF 뒤부터는 한국 경제가 주식시장이 먼저 움직인 뒤 펀더멘털에 영향을 주는 구조로 바뀌었다.
예전처럼 주가가 단순히 경제 펀더멘털을 반영하는 게 아니다.
주가가 오르면 소비와 기업투자가 늘고 사회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생긴다.
사실 구조조정도 대부분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높은 주가를 토대로 조달한 자금으로 이뤄졌고, 주가가 떨어지자 이 길이 막히면서 구조조정 계획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정말로 주가가 이 모든 현상의 첫 단추를 꿰었을까? 지난해 기업·소비자 심리는 종합주가지수에 미묘하게 연동하면서 이런 주장을 뒷받침했다.
종합주가지수는 5월부터 7월까지 반등 가능성을 비쳤다.
650이던 주가가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급등세를 등에 업고 850선까지 회복된 것이다.
이 시기 소비자심리의 변화를 살펴보면, 소비자평가지수는 5월 97.6에서 6~7월에는 98선으로 조금 오르는 듯했고, 앞으로 6개월 뒤의 소비동향을 나타내는 소비자기대지수도 5월 101.9에서 8월 102.2까지 보합 또는 소폭 오름세를 보였다.
기업심리도 그뒤를 따라, 하락세를 보이던 BSI는 7~8월 잠시 하락세를 멈췄다가 9월 오름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종합주가지수는 7월 중순 다시 급락세로 돌아서 8월 초 660선까지 떨어졌고, 소비자심리도 8월을 고비로 본격적인 급락세에 접어들었다.
기업심리도 10월부터는 급락세를 보였다.
기업·소비자 심리가 주가를 따라 미세하게 움직이는 현상을 보인 것이다.
네오위즈 최상온 경영관리실장은 주가에 따른 기업심리 변화를 이렇게 전했다.
“사실 개별사업의 영업상황은 예상과 다름이 없는데도, 올해 사업계획을 지난해보다 보수적으로 잡았다.
주가가 공모가의 4분의 1까지 토막나버린 상황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가폭락으로 인터넷 경제 전반이 의심받고 있는 주변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었다.
” “주가와 영업과는 관련이 없다”고 입을 모으는 기업들이나 주식자산이 그리 많지도 않은 소비자들의 심리가 왜 이렇게 주가에 따라 춤을 출까? 한겨레IT 기업평가센터 박규호 연구팀장은 이렇게 분석한다.
“대우와 현대의 위기가 표면화하면서 재벌체제 자체의 안정성이 의심받게 됐다.
재벌에게서 마음이 떠난 대중들의 기대는 정부와 주식시장이 양분을 공급한 IT 벤처기업으로 쏠렸다.
그런데 나스닥 불안이라는 외부요인으로 코스닥이 불안해지면서 벤처기업들의 자금조달 길이 막혔고, 희망을 던져주던 벤처기업 열풍은 거품논란에 휘말리면서 냉기로 바뀌어갔다.
” 벤처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그나마 희망을 걸 곳이 없어진 사람들의 심리는 당연히 불안해졌고, 이게 투자와 소비 위축을 불러오고, 이는 다시 주가의 추가하락으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신뢰회복이 경제회복 관건” 삼성경제연구소 한창수 수석연구원은 이런 악순환은 사람들이 경제체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말한다.
“한국 경제를 끌어가는 대표기업 가운데 하나이던 현대그룹의 집안싸움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금융시스템을 관리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의 비리가 불거지면서 신뢰의 중추가 흔들렸다.
공적자금 및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의 일관되지 못한 태도는 불신과 불안을 부추겼다.
” 결국 악순환 고리를 끊는 길도 기업과 정책당국의 투명성을 강화해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미국 경제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신뢰(트러스트)>에서 산업자본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시대로 넘어가는 필수요건으로 ‘신뢰’를 꼽았다.
어쩌면 심리 불안이 경제흐름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최근 한국 경제의 경험은, 후쿠야마가 지적한 과도기를 넘어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기야 옛 경제학자 케인스처럼 삐딱한 시선도 있을 수 있다.
“심리가 주식시장을 움직이고 주가가 펀더멘털을 움직이는 현상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경제에서는 ‘똑똑한 기업가’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매한 군중’의 심리에 따라 경제가 좌우된다.
” 하지만 이미 ‘우매한 군중’의 심리가 이만큼 강력해졌다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이 제대로 된 기업과 정책당국자가 아닐까? 진념 재경부장관이 “올해 경제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전법”이라고 강조한 데서 ‘우매한 군중’들은 한줄기 기대를 가져본다.
“지금은 현금을 챙길 때”
올해 신년사나 시무식에서 나타난 재벌 총수들의 신년 메시지 핵심은 ‘현금위주 경영’과 ‘중단없는 구조조정’으로 요약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올해는 위기의 재연이냐 극복이냐를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제2의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어떤 한계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자”며 사뭇 비장한 태도를 보였다.
삼성은 이미 지난해 각 계열사에 이익의 80%만 투자하고 20%는 비상시기에 대비해 현금으로 확보해두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LG 구본무 회장은 “무엇보다 현금창출에 주력하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에 과감히 투자하되 창출된 현금의 범위 내에서 투자해야”한다고 말했다.
역시 공격적 투자보다는 위기상황에 대비한 현금확보에 무게가 실린 발언이다.
지난해 가장 성공한 그룹으로 꼽히는 SK 손길승 회장의 인사말은 조금 달랐다.
손 회장은 먼저 “지난해 신세기통신 인수, IMT-2000 사업 성공적 진입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그도 “우리 경제는 또 한번의 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으니,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유연한 사업구조를 갖도록 과감한 구조조정을 할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내수위축으로 경영환경은 어려워지겠지만 수출증대로 극복하겠다”고 말했고, 한화 김승연 회장은 “‘변혁’과 ‘내실경영’을 올해 경영의 두축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혀 역시 구조조정과 현금 위주 경영으로 방향을 잡고 있음을 드러냈다.
재벌 총수들의 이런 신년 인사말은 지난해 초 이들이 공격적 어휘를 써가며 정보통신·인터넷·생명공학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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