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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인사이드] 펀드매니저는 '매미 인생'
[펀드인사이드] 펀드매니저는 '매미 인생'
  • 최상길(제로인펀트닥터부장)
  • 승인 2000.09.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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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를 본 고객들에게서 걸려오는 항의성 전화, 이른바 ‘작전’에 참여했다가 검찰에 구속된 일부 매니저 때문에 받는 따가운 시선, 외국인 투자가들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세간의 질타….

한때 잘 나가던 펀드매니저들 스타일은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지난해만 해도 펀드매니저 하면 일등 신랑감이요, 억대 연봉에 억대 보너스를 받는 화려한 직업에 속했다.
펀드매니저의 꿈을 안고 자산운용전문가 과정에 등록하는 대학생들이 줄을 이을 정도였다.
주식형 펀드매니저 시세는 주가와 맥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
올 들어 주가가 곤두박질치자 이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인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싸늘하게 식었다.
요즈음 투신사 운용부에 가보면 빈자리를 흔히 볼 수 있다.
어디 갔냐고 물으면 기업을 탐방하기 위해 외근중이라고 한다.
펀드 설정 당시보다 보통 30~40% 정도 주가가 하락한 상태니 사고팔 주식도 없는데다 자리에 있어봤자 고객들의 성난 전화나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일부 펀드매니저는 성적 장애를 호소하기도 한다.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펀드매니저 인기사이클은 지난 88년 이후 5~6년 주기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 88년, 94년, 99년 펀드매니저 인기는 정상을 달렸다.
그러나 89년부터 92년까지, 95년부터 97년까지, 올 들어 지금까지는 바닥을 긁고 있다.
그러고 보면 펀드매니저는 보기처럼 화려한 직업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땅속에서 수년간 침울한 생활을 보내고, 땅위에서의 화려한 생은 수일 만에 마감해야 하는 매미처럼 슬픈 운명을 가진 직업이다.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다.
주식시장 불안정성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 80년 1월4일 100포인트를 기점으로 출발한 종합주가지수는 20년하고도 8개월여 만인 2000년 9월8일 현재 653포인트에 불과하다.
연복리 8.5%에 해당하는 수익률이다.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간중간 등락을 무시하면 650선을 처음 돌파한 지난 88년 이후 12년 동안 주식시장은 전혀 수익을 내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주로 증시체력을 감안하지 않은 재무구조 개선 및 기업공개 정책에 있다.
주가정점이 100이라면 80선까지 상승해야 펀드에 돈이 몰려드는 현상도 펀드매니저들을 궁지로 몰고가는 원인이 되고 있다.
펀드라는 게 시장과 동일한 수익률만 올려도 훌륭한 법이다.
주가지수가 가입시점 대비 30~40% 하락한 상황에서 원금을 보전할 수 있는 용빼는 재주는 누구에게도 없다.
펀드매니저들을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척박한 증시 토양 위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들을 무작정 비난만 해서는 곤란하다.
펀드매니저는 종목을 잘 모르는 투자자를 위해 대신 투자해주는 사람일 뿐, 주식시장과 무관하게 언제나 수익을 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신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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