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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유럽 통신업계 살림 '빡빡'
[IT] 유럽 통신업계 살림 '빡빡'
  • 최욱(와이즈인포넷연구원)
  • 승인 2001.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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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들, 대출 자제 경고…주가·신용등급 하락 겹쳐 자금조달에 난항
세계 통신업계의 자금조달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규제당국, 특히 유럽 중앙은행들이 통신업계에 대한 대출에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통신업계에 대한 대출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경고를 내보내고 있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중앙은행들은 통신업계의 과도한 부채를 이유로 들어 대출을 자제해줄 것을 각 은행에 요청한 상태다.


중앙은행들의 이러한 움직임은 주식시장 침체와 채권수익률 상승으로 가뜩이나 궁지에 몰린 통신업계를 더욱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주가하락과 채권수익률 상승, 이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통신업계가 목매달고 있는 자금줄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만약 은행들마저 통신업계에 등을 돌린다면 통신업계는 향후 사업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은행들 중 가장 먼저 경고음을 울린 곳은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이다.
잉글랜드은행은 지난해 12월14일 “통신업계의 과도한 부채가 세계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며 더 이상의 대출을 자제해줄 것을 은행에 요청했다.
12월19일에는 프랑스 중앙은행인 프랑스은행과 유럽중앙은행이 은행에 “통신업계에 대한 대출에 각별히 주의할 것”을 경고하고 나섰다.
이에 앞서 지난해 9월에는 선진7개국(G7) 산하 금융안정성포럼(FSF)이 “통신업계의 과도한 부채가 세계 금융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 메시지를 보낸 바 있다.
그렇다면 정말 통신업계의 대출은 과다한 수준일까? 그동안 통신업계의 대출은 주로 은행들의 신디케이트론(syndicate loan) 형태로 이루어졌다.
유럽의 경우 2년 전만 해도 전체 신디케이트론에서 통신업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7.5%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엔 35%로 급증했다.
유럽의 통신업계가 지난해 1~9월 사이 은행권에서 끌어다 쓴 자금은 무려 2520억달러에 달했다.
유럽 통신업계는 이 자금을 주로 인수합병이나 차세대 이동통신 사업권(IMT-2000) 획득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채 원인은 차세대 이동통신 중앙은행들이 더욱 문제삼고 있는 것은 회사채 발행으로 생긴 통신업계의 막대한 부채다.
미국 AT&T의 경우 98년만 해도 100억달러가 채 못되던 부채가 지난해엔 620억달러로 늘어났다.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은 98년에 부채가 거의 없었으나 지난해 500억달러 가까이 증가했으며, 프랑스텔레콤(FT)은 600억달러를 넘어섰다.
독일 도이체텔레콤(DT)은 미국 이동통신 사업자인 보이스스트림 인수를 완료하면 부채가 7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세계 통신업계의 부채규모는 전세계 부채규모의 3분의 1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에 육박했다.
채권시장이 이를 곱게 볼 리가 없다.
채권수익률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지난해 11월 발행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9월까지 세계 통신업체들이 발행한 채권규모는 약 940억달러로, 같은 기간 발행된 전체 회사채의 4분의 1이 넘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차세대 이동통신 라이선스 획득 및 인수합병으로 자금이 필요했던 유럽 통신사업자들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BIS는 지난해 5월부터 통신업계의 채권수익률이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통신업계가 지고 있는 과도한 부채 때문이라고 밝혔다.
부채증가에 따른 파급효과는 주식시장에도 반영됐다.
AT&T의 시가총액은 지난 한해 동안 1천억달러 가까이 떨어져 750억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 2위의 장거리 통신사업자인 월드콤의 1년 전 시가총액은 1500억달러였으나, 지금은 500억달러대에 불과하다.
도이체텔레콤, 브리티시텔레콤의 시가총액 역시 반토막이 났다.
미국 스프린트나 프랑스텔레콤도 예외는 아니다.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채권수익률이 상승하면서 통신업계는 심각한 자금난에 처하게 됐다.
특히 채권의 경우, 한층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야 발행이 가능하게 됐다.
월드컴은 지난해 12월 20억달러어치의 채권을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고 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미국 최대 지역전화 사업자인 베리존 역시 높은 수익률을 조건으로 40억달러어치의 채권을 발행하기로 했다.
자금원이 마르는 상태에서 채권수익률은 상승하고 주가는 떨어지며, 이에 따라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신용등급 하락은 다시 채권수익률을 올리고 주가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업계가 목숨을 걸고 있는 차세대 이동통신마저 전망이 불투명하게 되자, 통신업계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다.
사실 통신업계가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된 것은 차세대 이동통신 때문이다.
차세대 이동통신을 둘러싼 인수합병과 사업권 획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부채를 늘린 것이다.
그러나 차세대 이동통신이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일반은행들도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독일 이동통신 사업자인 모빌콤에 40억달러를 빌려준 10개 은행들이 서로 위험부담을 적게 떠안겠다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잉글랜드은행은 “통신사업자들의 부채 중 약 2500억달러가 내년에 만기도래하며, 부채 연장에 따른 이자율 상승이 예고돼 통신사업자들의 부채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증시규제당국인 FSA는 “34개 금융기관이 통신업계 대출로 위험에 처해 있다”며 “이들 중 일부는 통신사업자들에 대한 대출이 자본금의 40%나 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신용평가기관들, 사태 진정 나서 은행들의 몸사리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자, 세계적 신용평가기관들이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섰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해 12월 초 “통신업계 대출에 대한 은행들의 우려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며 “아직까지는 통신업계가 은행들의 건전성을 해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무디스 역시 12월20일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은행들의 통신업계 대출에 대한 우려는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무디스는 “유럽의 일부 통신사업자들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낮추기는 했으나, 이들의 신용등급은 여전히 투자적격”이라며 현재 상황이 위험수위는 아님을 강조했다.
무디스는 “통신업계의 주가가 폭락하고 채권수익률이 급상승하고는 있으나, 이를 이유로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무디스는 또한 “대형 은행들이 대출을 해준 대형 통신업체들의 경우, 대출이자를 지급할 수 있는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평가기관들은 “규모가 영세한 신생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지급불능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신규사업자들에게 대규모로 대출을 해준 은행만 타격을 입을 뿐 전체 은행권에 충격이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들이 신용평가기관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통신업체들은 돈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중앙은행들의 경고를 받아들인다면 사태는 정반대가 된다.
통신업계가 은행권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부채를 줄여야만 하는 상황이다.
기업공개(IPO)와 자산매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부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해야만 은행권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실패한다면 향후 투자계획은 물론 전체 사업계획 역시 차질을 빚는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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