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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바벤] ⑥유전자 지문
[닥터바벤] ⑥유전자 지문
  • 허원(강원대환경생물학부교수)
  • 승인 2001.0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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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개봉한 영화 <가타카>를 보면 유전자 지문을 이용해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전자 지문으로 열성 인간과 우성 인간을 나누는 미래 세계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아직까지는 영화처럼 유전자 검사를 통해 사람의 신원을 바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몇 사람을 서로 구분하거나, 동일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는 유전자 지문을 사용하고 있다.
일반인에게도 주로 유명인사의 친자확인 소송처럼 ‘불미스런’ 사건을 통해 유전자 지문이 꽤 알려져 있는 편이다.
바이오 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적은 양의 샘플로도 유전자 지문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응용분야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남북 이산가족 확인이나 입양아들의 혈육·혈족 찾기 등에 잠재수요가 많다.
때문에 유전자 지문은 떠오르고 있는 바이오 기술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형사사건에서 유전자 지문 많이 활용 세계적으로는 범인 추적단계에서 유전자 지문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때 범죄현장에 남겨진 피부나 머리카락, 체액 따위에서 유전자 지문을 채취해 용의자의 것과 비교하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이를 유전자 감식이라고 부른다.
유전자 감식은 80년대 중반 영국 경찰이 처음 도입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도 87년 유전자 감식을 도입해 현재 많은 유전자 감식을 대행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에서는 유전자 감식법으로 증거물을 재검사해, 강간사건으로 옥에 갇혀있던 죄수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심슨 사건이나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성추문 사건을 통해 유전자 감식은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형사사건에서 유전자 감식을 활용하고 있다.
유전자 지문은 최근 한 방송인의 친자확인 소송처럼 친자나 친부를 확인하는 데도 많이 사용한다.
화재 사고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이나 유골만으로 신원을 확인할 때도 유전자 지문을 동원한다.
이외에도 유전자 지문을 활용하는 곳은 다양하다.
고고학에서는 양피지에 적힌 고대 문서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양피지의 일부를 채취해 유전자 지문을 판독한다.
이를 통해 고대에 살았던 양의 가죽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18년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 당시 처형된 로마노프 니콜라이 2세의 주검에서 시료를 채취해 영국의 필립공에게도 로마노프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영화로도 유명한 로마노프 가문의 마지막 공주인 아나스타샤는 ‘가짜’인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유전자 지문은 사람뿐만 아니라 야생 생물을 확인하는 데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수입 철갑상어 알 가운데 멸종위기에 처한 특정한 철갑상어 알이 섞여 있는지를 가리기 위해 유전자 지문을 활용한다.
영국에서도 멸종위기의 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일부 수입 상품에 대해 호랑이 유전자 지문을 검사하기도 한다.
현재 관심 대상이 되고 있는 유전자 변형식품 검사에도 유전자 지문 검사와 똑같은 원리를 이용한다.
유전자 지문 채취는 손끝에 잉크를 바르고 종이 위에 손도장을 찍는 ‘손가락 지문’ 채취보다 훨씬 복잡하다.
지문을 채취할 수 있는 곳은 침, 혈액, 피부세포, 머리카락 등으로 다양하다.
면봉으로 입안의 침을 한방울 묻히거나 스카치 테이프를 피부에 붙였다 떼어내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유전자 지문을 검사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사람 세포를 얻을 수 있다.
다음으로 이 세포들에 들어 있는 100억분의 1g 수준의 유전물질을 분리하고, 이어 효소중합연쇄반응으로 극소량의 유전물질을 원하는 만큼 증가시켜 비교한다.
‘효소중합연쇄반응’은 시험관에서 유전물질을 1억배까지도 복제해낼 수 있는 기술이다.
특히 유전물질 가운데 우리가 원하는 부분만 복제해낼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특정 부분을 확대해 볼 수 있는 현미경의 역할에 비유하기도 한다.
유전자 지문은 바로 이런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유전자 중에 일정한 배열이 반복되는 횟수가 사람마다 다른 점에 착안해 다양한 종류의 유전자 지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유전자 지문 은행 찬반 논쟁 ‘팽팽’ 현재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유전자 지문 은행을 세워 범죄자들의 유전자 지문을 채취·보관하고 있다.
실제 유전자 지문 은행에 쌓아놓은 자료의 도움으로 목격자가 없는 강력사건의 범인이 잡힌 경우가 몇건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유전자 지문 은행에 부정적 견해도 만만치 않다.
유전자 지문 은행의 자료가 많아질수록 특정 패턴의 유전자 지문을 갖는 사람이 재범 가능성이 높다거나 특정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따위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게놈프로젝트의 발전으로 이런 우려는 더욱 늘어날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 사용하는 대부분의 유전자 지문은 여러 종류의 무늬가 반복되는 것을 이용한 것으로 유전형질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전자 구조가 더 알려지면 유전자 지문 자체도 어떤 정보를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유전자 지문 은행 설립을 찬성하는 쪽도 있다.
성형수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문서 위조나 변조가 쉬워질수록 개인 신원을 증명하기 위해선 유전자 지문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래에는 유전자 지문이 신원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유전자 지문을 읽는 데 적어도 몇시간이 걸리고 전문 시설을 갖춘 실험실이 필요하다.
경찰의 주민등록번호 조회처럼 그 자리에서 신원을 확인하기는 힘든 셈이다.
하지만 유전자칩을 이용한 개인식별 연구를 비롯해 다양한 기술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영화 <가타카>와 비슷한 미래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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