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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경기 침체, 물가 '너마저…'
[초점] 경기 침체, 물가 '너마저…'
  • 정남기/ <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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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물가상승률 지표 앞질러… 농수축산물·부동산 등 상승요인 곳곳에 대기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가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상반기의 급등세는 어느 정도 진정됐지만 8월에도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어 국민들의 물가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은 형편이다.
물가당국인 한국은행은 9월 이후 상승요인이 많지 않아 물가상승률이 둔화되고 전체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원화 환율과 원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국내 소비도 줄고 있기 때문이다.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수요 부진과 환율, 임금과 원자재 가격 안정으로 물가상승 압력은 미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수축산물 가격이 불안정한데다 전월세 가격이 계속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어 상승요인은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국민의 체감 물가상승률은 정부가 발표하는 지표보다 훨씬 높은 실정이다.
구체적으로 의류와 주류, 지방 택시요금, 광역상수도 요금 등 서민들의 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주요 품목들은 언제라도 가격상승이 가능한 상황이어서 9월 이후 물가 전망을 낙관할 수 없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8월중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물가 상황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지난 3~4월 연달아 0.6% 상승했던 전월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월 0.0~0.3%의 안정세를 유지하다가 8월 들어 다시 0.5% 상승했다.
경기부진으로 공산품이 0.2% 하락했음에도 집중호우의 영향으로 농수축산물이 3.3% 오르는 바람에 예상밖으로 물가가 크게 상승한 것이다.
그러나 농산물(곡물 제외)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을 보더라도 6월 0.1%, 7월 0.0%에서 8월 0.3%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는 8월의 물가상승이 단순히 비 피해로 인한 일시적인 농산물 가격 상승 때문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통계청 신상우 물가통계과장은 “가구용품과 피복, 신발, 집세 등 생활 주변의 물가가 많이 오르면서 근원인플레이션이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물가를 산정하는 509개 품목 가운데 국민의 체감물가를 나타내는 154개 품목을 따로 분류해 산정하는 생활물가의 전월대비 상승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6월 0.4%, 7월 0.1%에서 8월에는 0.6%까지 치솟았다.
국민들의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가격이 많이 오른 품목은 생활과 밀접한 것들이 많다.
전월세 가격이 0.4% 올랐으며, 상수도료(1.7%)·하수도료(1.0%) 등 공공요금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책상(10.7%)·양복장(5.3%)·침대(2.9%)·한우쇠고기(9.2%)·국내항공료(8.8%)·국제항공료(4.5%)·소화제(5.0%)·목욕료(1.1%) 등 생활용품이 거의 전 분야에 걸쳐 크게 상승했다.
생활용품 전분야 큰 폭 상승 9월 이후의 물가 전망은 물론 8월에 비해서는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경기부진에 따른 수요감소가 물가상승을 억제하는 요인이다.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수출이 막히고 재고가 쌓이면서 공산품 가격이 본격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그나마 살아 있던 국내소비마저 크게 위축되고 있다.
이는 소비자물가의 선행지표 성격을 갖는 생산자물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5일 발표한 8월중 공산품의 생산자물가는 7월에 비해 0.4% 하락했다.
6월과 7월의 상승률이 각각 -0.1%와 0.0%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큰 폭의 하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적어도 연말까지는 공산품 가격 상승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과 함께 상반기 물가를 끌어올린 주역이었던 공공요금 역시 인상요인이 많지 않다.
다만 이달초 서울의 택시요금 인상이 지방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여 서민들의 가계에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10월에는 광역상수도료가 오를 예정이다.
그러나 이밖에는 특별한 인상요인이 없어 공공요금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려되는 것은 역시 농수축산물과 부동산이다.
농수축산물 가격은 10월1일 추석을 앞두고 꾸준한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우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은 최근 몇달 동안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해왔다.
추석 이후에는 김장철이 이어져 다시 한번 채소 값이 크게 변동할 여지가 있다.
여기에 예상치 않았던 기상악화가 발생한다면 농수축산물 가격은 언제라도 큰 폭으로 오를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물가불안 요소는 역시 전월세 가격이다.
집세는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다 한번 오르면 여간해서 하락하지 않는 특성이 있어 한번 움직이면 서민들의 가계에 깊은 주름살을 남긴다.
8월중 전월세 가격은 전월대비 0.4% 상승했다.
지난 6월의 0.7%에 비해 큰 폭은 아니지만 5월 0.3%, 6월 0.7%, 7월 0.4, 8월 0.4%로 계속 상승하고 있어 매월 상승분을 누적해보면 국내 물가상승 요인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클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전월세 가격은 지금도 꺾이지 않고 계속 상승하고 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본격적인 가을 이사철을 맞아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야기된 전체 부동산 시장의 가격 급등세가 아직 진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안정조처 이후 눈치를 살피고 있지만 언제라도 핑계만 생기면 다시 치고 올라갈 분위기다.
더구나 부동산 매매가격은 물가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에는 전월세 가격만,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생산자물가에는 이것이 아예 포함돼 있지 않다.
따라서 부동산에 관한한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와 지표물가의 차이는 크지 않을 수 없다.
이밖에 의류와 주류 등 몇가지 부문은 9월 이후에도 물가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8월 생산자물가가 많이 오른 품목은 섬유·의복과 주정이다.
모피(6.9%)를 비롯해 양복(6.5%)·와이셔츠(6.0%)·스커트(5.4%) 등 거의 모든 의류가 가격이 올랐다.
제조업체들이 상반기 원재료 가격 상승분을 가을 신제품 출시에 맞춰 반영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의류의 생산자물가 상승분은 추석을 앞둔 9월부터 바로 소비자물가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음식료품 생산자물가도 8월에 만만치 않게 올랐다.
술의 원료인 주정이 상반기 수입가격 상승분을 반영해 15% 오른 것을 비롯해 김치(6.4%)·혼합조미료(4.2%)·간장(3.3%) 등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제품들이 주로 올랐다.
이 역시 조만간 소비자물가에 반영돼 전체 물가를 끌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 9월 이후 둔화 전망 술·의류·택시요금·집세 등 주로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품목들이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예측이 어려운 농수축산물 가격의 변동 역시 주로 서민들에게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중산층 이상보다는 엥겔계수가 높은 서민층에게 상대적으로 더 압박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전월세 가격 상승도 집 없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부담해야 할 몫이다.
집을 두채 이상 가진 사람에게는 오히려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물가안정 전망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체감 물가는 생각만큼 부담이 줄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정부 당국은 경기침체를 막는 데만 역점을 두고 있어 이러한 문제들은 주요 정책 수행과정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
주택경기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간접적으로 부추기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물가안정 전망에도 불구하고 서민층은 경기침체 심화와 체감물가 상승이라는 이중의 압박 속에서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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