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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공적자금 허공으로 날아갔나
[초점] 공적자금 허공으로 날아갔나
  • 황순구/ <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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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율로만 보면 ‘낭비’, 리스크 분산 등 효과로 보면 ‘금융 비용’일수도 '3개월마다 공적자금에 관해 똑같은 기사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기사 제목과 내용, 그리고 그 다음날 나올 사설까지도 우리 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만큼 됐죠. 앞으로 10년은 그럴 겁니다.
' 지난 8월31일 상반기 공적자금 백서를 내놓으며 재정경제부 관료가 이런 푸념을 했다.
신문들의 공적자금 보도 시각과 내용이 붕어빵 찍어낸 것처럼 똑같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부는 지난해 만든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 따라 3개월에 한번씩 조성·사용·회수 내역을 발표해왔는데, 그때마다 신문 기사는 “회수율 ○○%에 불과”, 해설은 “밑빠진 독 공(空)자금”, 사설은 “회수대책 세워라”에서 오십보 백보였다.
언론이 공적자금 보도를 할 때마다 초점을 회수율에 고정시키다 보니 국민들도 “회수율이 20%대라며? 결국 나머지는 우리 세금으로 때울 텐데, 그럼 공적자금 투입은 실패한 거잖아”라는 결론을 이미 내려놓고 있다.
물론 언론도 할 말이 많다.
“낮은 회수율은 곧 국민부담(세금)으로 연결된다는 것인데, 어떻게 회수율을 따지지 않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언론 조사로 불거진 정부와 신문의 대립국면도 이런 보도 태도에 한몫 했겠지만 ‘회수율을 따지는 것’과 ‘회수율만으로 성패를 평가하는 것’의 차이에 대해 애써 눈감는 고약함은 여전하다.
정부는 여기에 ‘말려든’ 편이다.
진념 부총리 등 경제관료들은 언론과 야당이 공적자금 회수 부진을 추궁할 때마다 “회수율은 경제상황에 달려 있다.
경기가 회복돼 주가가 오르면 정부가 소유한 은행 주식을 팔아 모두 회수할 수도 있다”며 피해가곤 했다.
물론 이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거짓말’이며, “회수되지 못한 액수만큼 낭비였다”는 단순한 논리를 오히려 뒷받침해준다.
재경부 관리는 “정부는 처음부터 솔직하게 ‘그건 비용이었다.
회수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대부분 회수할 수 없고 결국 국민에게 세금으로 전가될 것이다.
비용을 얼마나 회수했는가로 공적자금 투입정책의 성패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
대신 정부는 공적자금이 금융시스템 붕괴 방지와 경제성장에 얼만큼 기여했는지 수치로 제시하고 낭비된 부분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답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한다.
이런 상황이니, 언론과 야당의 회수율 추궁과 정부의 궁색한 변명은 앞으로 10여년간 계속될 수밖에 없게 됐다.
모두 공적자금의 효과와 낭비를 평가할 수 있는 수치가 없어서 빚어진 일이다.
공적자금에 대한 평가를 수치로 계량화할 수는 없을까? 한 금융학자가 이런 물음에 고심하다 한가지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한국금융연구원 고성수 박사는 최근 금융학회에 발표한 ‘금융 구조조정의 성과와 향후 과제’라는 논문에서 “공적자금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600조원어치 이바지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금융위기를 당해 공적자금을 투입한 나라는 많지만, 효과를 계량화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얼핏 무모하게 비치는 이 작업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는 지난 10여년 사이에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일본·멕시코·스위스 등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은 곳을 찾았으나 없었다.
할수없이 미국의 1930년대 공황을 비교 대상으로 정했다.
미국은 1929년부터 32년까지 해마다 3.4~13%포인트씩 국민총생산(GDP)이 줄어들었다.
그는 공적자금 투입이 없었을 경우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은 1930년대 미국이 겪었던 뱅크런(예금인출에 따른 금융시스템 붕괴)을 겪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했다.
그리고는 당시 미국 국민총생산 감소율을 그대로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해, 97년 말을 100으로 해놓고 같은 비율만큼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이 떨어질 것으로 설정(그림의 C곡선)했다.
또 아무런 금융위기 없이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국민총생산이 증가하는 경우(A곡선)를 추계했다.
양쪽의 차이는 831조8천억원이었다.
이번에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최근 4년간의 실질 국민총생산(B곡선, 2001년은 추정치)을 구했다.
831조8천억원에서 이를 빼니 599조2천억원이 나왔다.
고 박사는 “뱅크런이 발생했으면 4년간 약 831조원의 경제손실을 입을 수 있었으나 실제는 232조원에 막았기 때문에, 양쪽의 차이인 599조원을 공적자금의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물론 매우 ‘거친’ 측정방법이다.
고 박사도 “미국의 공황은 소비위축→생산감소→금융기관 도산이라는 디플레이션 상황이었던 데 비해, 한국은 환율급등→물가·금리 급등→경기침체라는 인플레이션 상황이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는 데 문제가 있지만, 유사한 상황 전개를 가정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고 박사의 연구에 대해서는 ‘외국과의 자본통합도와 시장통합도가 갈수록 높아져, 국민총생산의 증감은 금융시스템의 회복보다 세계 경기에 더 영향을 받게 됐다’는 점에서 별다른 시사점을 주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 그의 연구는 정부의 ‘주문제작’일 것이라는 혐의도 씌웠다.
평가는 어떨까? 익명을 요구한 삼성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고 박사가 제시한 숫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외국에서 공적자금 효과에 관한 공인된 측정 모델을 개발하지 못했다고 해서 우리도 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도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압축 고도성장 과정에서 일어난 기업 부실이 은행으로 집중돼 금융위기가 일어났다면 기업 리스크 분산에 대한 공적자금의 기여도, 세수 유지에 대한 공적자금의 영향, 금융중개 기능 회복 정도, 공적자금과 실물경제 성장률의 관련성 등 수십가지 분야별로 효과를 정교하게 계량화하는 연구가 이어져야 하고, 그때서야 공적자금의 성패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박승 위원장은 “개발독재 시대에는 금융위기가 닥치려고 하면 그 직전에 통화증발, 사채동결 등의 ‘혁명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인플레이션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 전가되듯 당시의 금융위기 해결비용은 100% 국민에게 전가됐다고 보면 맞는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방법을 쓸 수 없어 공적자금을 조성해 투입하는 것이다.
즉 이것은 비용이다.
언론도 회수율로 성패를 따지는 보도 태도를 지양해야 하고, 정부도 ‘최대 얼마만큼 효과를 낼 수 있었는데,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 쓰여 이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은행주 팔면 이익 낸다?

공적자금 회수율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말이 있다.
“앞으로 주가가 많이 오를 경우 정부소유 은행주를 팔면 이익을 내는 것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맞는 걸까? 6월말 현재 공적자금 사용액은 137조5천억원(이자 제외), 이 가운데 33조8천억원이 은행출자분이다.
그러나 이미 제일·서울·한빛·평화은행 등의 감자 과정에서 출자액 가운데 11조6천억원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산업·수출입·기업·수협 등 국책은행 출자분 12조6천억원은 민영화 대상이 아니며, 한미·국민·하나은행 등 5개 은행의 우선주 1조5천억원은 매입가(주당 5천원)에 되팔고 있기 때문에 주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결국 매각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출자분은 우리금융 4개사와 서울·제일·조흥·제주 등 8개 은행 출자분 7조3290억원(액면가 기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다음달께 투입할 마지막 출자분 2조9천억원을 합쳐도 총출자액은 36조원, 팔 수 있는 출자액은 10조원 남짓이다.
회수불가능 추정분을 최대한 낮게 잡아 100조원(이자 40조원 포함)으로 계산하면 은행주가 액면가의 10배(주당 5만원)까지 뛰어야 공적자금 회수가 가능해진다.
또 서울은행·우리금융 매각시 51%는 액면가 안팎에서 먼저 팔기 때문에 사실 주가는 15배까지 뛰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주가는 어떤가? 유일하게 거래중이어서 주가를 알 수 있는 조흥은행은 2200원 안팎이다.
매각이익은커녕 팔면 팔수록 공적자금 손실이 커지는 셈이다.
거래정지중인 한빛·평화은행 등은 지난 7월 소액주주를 대상으로 신주인수권 청약을 받은 결과 청약률이 27%에 그쳤다.
배정물량이 작아 포기한 사람도 있겠지만 소액주주 중 27%만이 주가가 액면가 이상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측한 셈이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정부가 지금처럼 ‘출자주식을 팔아 큰 폭의 매각이익을 내고 공적자금 손실을 보전하겠다’고 홍보하면, 결국 나중에는 매각이익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때문에 은행을 팔기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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