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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수출 비상시국 언제 풀리나
[초점] 수출 비상시국 언제 풀리나
  • 안재승/ <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1.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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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 “4분기 회복” “내년 하반기 가능” 의견 분분 수출 부진이 계속되면서 경기회복 가능성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올해 들어 수출은 1월과 2월 두달만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소폭 증가했을 뿐, 3월 이후 8월까지 6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다.
특히 7월과 8월엔 수출 변동률이 각각 -20.5%와 -19.4%를 기록하는 등 급감세를 나타냈다.
-20%라는 감소율은 현재 정부가 월별 수출통계를 보유하고 있는 1967년 1월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수출의 경제성장(GDP 증가율) 기여율은 무려 61.4%에 이르고, 외화가득률은 53.6%나 된다.
따라서 수출 부진은 생산과 투자 위축을 가져오고, 다시 고용사정 악화와 소비 침체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수출이 안 되면 경제가 총체적 불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요즘 수출 관련 대책회의를 매일 열다시피 하고,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부터 뛰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9월말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브라질과 칠레 등 중남미 국가들을 방문할 예정이다.
수출시장 개척을 위한 세일즈 외교가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다.
이한동 총리는 이미 5월과 6월 각각 중동과 몽골을 다녀왔고, 장재식 산업자원부 장관은 4월과 6월 두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모두 우리나라의 새로운 유망 수출대상 지역으로 떠오르는 국가들이다.
정부는 9월과 11월 브라질 상파울루와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상품 전시회를 여는 등 연말까지 해외전시회 참가와 시장개척단 파견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반도체 수출 11개월만에 첫 증가 정부는 이와 함께 최근 금융과 세제 지원 등 수출업계가 요구하는 것이라면 거의 대부분 들어주고 있다.
종합상사에 대한 부채비율 200% 적용 제외, 수출환어음(D/A) 매입 확대, 중소기업에 대한 수출 특례보증 부활, 수출보험 보상률 확대, 벽걸이텔레비전(PDP) 등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과 특별소비세 인하 등등…. 김칠두 산자부 무역투자실장은 9월4일 주한 중남미 대사들을 서울 시내 한 호텔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했다.
김 대통령의 순방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사전에 분위기를 조성해보려는 모임이었다.
김 실장은 “지금 심정으로는 1달러라도 수출할 수 있다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수출부진 현상은 주로 세계 경제의 둔화, 특히 미국 정보기술(IT) 분야의 침체라는 해외요인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산자부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정보기술 분야의 대표적 품목인 반도체와 컴퓨터 수출 격감은 전체 수출동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반도체와 컴퓨터 두가지 품목의 수출은 159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24억달러와 비교해 무려 65억달러나 감소했다.
이는 1~7월 전체 수출 감소액 71억달러의 91.5%에 해당된다.
반면 같은 기간 자동차 수출은 5.6% 늘었고, 선박과 일반기계도 각각 42.3%와 8.4% 증가하는 등 전통 품목들은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수출 부진의 주된 원인이 미국 정보기술 분야의 침체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처럼 정보기술 분야의 수출비중이 높은 다른 경쟁국들 역시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정보기술 분야의 수출 비중이 37.1%로 우리나라의 29.7%보다 높은 대만은 7월 수출이 무려 28.4%나 감소했다.
일본과 대만 또한 7월 수출 감소율이 각각 19.0%와 27.6%로 극심한 수출 부진 현상을 겪고 있다.
결국 미국 정보기술 분야의 회복 없이는 당분간 수출 부진 타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가운데 산자부는 최근 긍정적 변화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8월 반도체 수출이 전월 대비로 지난해 9월 이후 11개월 만에 처음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올해 8월 반도체 수출은 9억2천만달러로 지난해 8월의 26억400만달러보다 64.6%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 7월의 8억7800만달러와 견주어서는 4.8% 증가한 게 사실이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9월 26억3700만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계속 줄어들어 지난 7월에는 3분의 1 수준인 8억7800만달러까지 감소했다.
정부, 중장기 핵심과제 뒤늦게 추진 산자부는 최근 반도체 가격 폭락세가 주춤하고 있는데다 수요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수출 감소세가 진정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또 오는 10월25일로 예정된 윈도우XP 출시와 신학기 개학으로 PC와 반도체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면 수출이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기대한다.
여기에 더해 올해 들어 일곱차례 단행된 금리인하와 감세 조처 등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 효과가 4분기부터 가시화하면, 우리나라 수출도 힘이 붙게 될 것이라는 게 산자부의 분석이다.
이병호 산자부 무역정책심의관은 “올해 수출은 3분기까지는 어렵겠지만 4분기부터는 감소세가 둔화되면서 점차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간쪽은 정부의 이런 전망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반도체 가격 폭락세가 진정됐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바닥이 곧 회복’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한다.
LG경제연구원 이우성 책임연구원은 “반도체는 여전히 공급과잉이며, 컴퓨터 산업 또한 올해 안에 되살아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중론”이라며 “정보기술 분야의 본격 회복은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정보기술 분야 침체는 단순히 소비자들이 PC 등 정보기술 분야 제품의 소비를 줄인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90년대 후반 증시 활황과 외국자본 유입을 바탕으로 한 투자 과열이 주된 원인으로, 단기간 안에 조정이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다.
하지만 미국 정보기술 분야의 조기 회복 여부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개선하지 않는 한 우리 수출은 영원히 ‘천수답’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동훈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 수출은 반도체 등 일부 품목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을 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일류상품이 적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으로 반도체·컴퓨터·자동차·석유화학·선박 등 5대 주력 품목의 수출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1.5%에 이른다.
또 이들 품목은 경기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따라서 이들 품목의 경기가 세계적으로 나빠지면, 우리나라 수출은 바로 휘청거리게 된다.
정부도 이런 점을 뒤늦게나마 인식하고 민간과 함께 세계 일류상품 발굴과 육성을 중장기 수출 대책의 핵심과제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지난 8월8일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경제부처 장관들과 민간 대표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계 일류상품 발굴 촉진대회’를 열어 반도체를 이을 차세대 일류상품들을 범국가적 차원에서 발굴·육성하기 위한 추진전략을 마련했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민간과 합동으로 현재 55개에 불과한 일류상품(세계시장 점유율 1위 상품 32개, 점유율 2~5위 상품 23개)을 해마다 100개씩 발굴·육성해 일류상품 수를 2003년까지 300개, 2005년 말엔 500개로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또 이를 위해 정부부처와 민간 경제단체, 연구기관들이 공동 참여하는 ‘세계 일류상품 발굴 협의회’를 구성했다.
아울러 산업혁신기술개발자금 등을 활용해 일류상품 개발을 위한 전용 연구·개발(R&D) 자금을 조성하는 한편, 민간기업이 일류상품 개발에 성공할 경우 그 제품은 정부가 우선 구매해주기로 했다.
또 올해 하반기 중 인력수급 전망 조사를 실시해 신기술 분야의 이공계 대학 정원을 확대하고, 전통산업과 신산업 간의 융합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과정도 신설하기로 했다.
그동안의 수출정책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일류상품 발굴·육성 대책을 통해 우리 수출산업의 고질적 문제점들을 해소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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