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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아시아 신경제 ‘적신호’
[머니] 아시아 신경제 ‘적신호’
  • 최욱(와이즈인포넷)
  • 승인 2001.05.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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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전자업계, 설비투자 급감… 인원 감축·사업 정리 등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아시아의 대표적 IT·전자기기 업체들이 올해 설비투자를 대폭 축소함에 따라 이 지역의 경기회복 전망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반도체에 대한 설비투자가 급속한 감소세를 보였으며 일본과 한국의 대형 업체들이 이러한 설비투자 축소를 주도하고 있다.



주요업체 투자 축소… 산업 전반에 타격
일본의 경우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전기, 후지쓰, NEC 등 5대 전기기기 업체들의 2001 회계연도 설비투자 규모가 전년 대비 10.4% 줄어든 1조7750억엔에 그칠 전망이다.
특히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가 대폭 줄어들어 이들 5개사의 반도체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27.9%나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반도체 메모리 제조업체인 삼성전자 역시 올해 초 7조3천억원으로 계획했던 설비투자 규모를 전년과 동일한 수준인 6조1천억원으로 줄이고, 반도체와 관련한 모든 부문의 투자 규모를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만의 대형 파운드리 업체인 타이완세미컨덕터(TSMC)와 유나이티드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UMC) 역시 설비투자를 억제키로 했다.
전자부품 업계도 이러한 추세에서 예외는 아니다.
무라다(村田)제작소, 롬(Rhom), TDK 등 일본의 5대 전자부품 업체들의 올해 투자규모는 전년 대비 30%나 줄어든 3400억엔에 그칠 전망이다.
일본 최대 휴대전화용 세라믹 컨덴서 제작업체인 무라다제작소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지난해 1천억엔에서 700억엔 정도로 줄일 계획이며, 집적회로(IC)와 반도체 소자 제조업체인 롬 역시 지난해 1300억엔에서 올해엔 600억엔 규모로 줄일 방침이다.
HDD용 자기헤드 제조업체인 TDK 역시 900억엔에서 600억엔대로 설비투자를 줄일 계획이다.
오디오, 비디오, 게임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소니와 마쓰시타도 올해 설비투자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소니는 지난해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2’용 반도체 생산 확대로 사상 최대 규모의 설비투자를 기록했으나, 올해엔 전년 대비 40%나 줄일 방침이다.
마쓰시타 역시 가정용 반도체 등의 설비투자를 억제하기로 했다.
대형 IT·전자기기 업체들의 이와 같은 대폭적 설비투자 축소는 관련 부품 제조업체들을 비롯해 산업 전반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설비투자 축소로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장비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공작기계와 산업기계에 대한 수요 역시 급감하고 있다.
일본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들은 한국과 대만 반도체 업체들의 설비투자 축소로 수출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PC 주변기기를 제어하는 마이콤, 로직 등의 가격도 수요 감소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PC 외형자재에 사용되는 ABS 수지의 매출 역시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경기침체와 내수부진이 주요 원인 이처럼 아시아의 대형 IT·전자기기 업계가 동시다발적으로 급속히 설비투자를 줄이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경제의 급속한 후퇴와 이에 따른 내수 부진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큰 한국의 경우 과잉생산과 이에 따른 재고증가로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으며, 일본과 대만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한국은 전체 IT 수출액의 30%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의 경기둔화에 따라 올해 GDP 성장률이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진 4.5%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경기침체로 허덕이고 있는 일본의 경우 아시아 IT기업들에게 생산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대미 수출부진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일례로 한국은 지난 1~3월 수출이 감소하면서 일본에서 들여오는 생산재를 전년동기 대비 8.1% 줄였으며, 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일본으로부터 수입이 19.1%나 줄어들었다.
지난 2월 동아시아로부터 공작기계 수주액 역시 전년동월 대비 42% 줄었으며, 산업기계 수주액도 20.9% 감소했다.
일본의 전체 수출액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일본이 아시아 설비투자 축소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아시아 IT기업들의 대미 수출 부진은 곧바로 재고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일본의 대형 가전업계뿐만 아니라 한국과 대만 업체들까지 급격한 재고 증가에 시달리고 있으며, 계약 및 하청 업체들까지 타격을 입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컴퓨터 재고가 전년동기 대비 17.9% 증가했으며, 반도체, 휴대전화, 브라운관, 디스플레이 패널 등의 재고 역시 지난해보다 50% 이상 증가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IT 부문 재고가 전년동기 대비 30%나 증가했으며, TDK와 NEC의 경우 재고처리 비용 때문에 이번 회계연도 수익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중국과 대만은 위탁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반도체 업체들이 많기 때문에 재고 부문에서 더 큰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위탁생산의 경우 수요가 많을 때는 생산을 급격히 늘리기 위해 설비투자도 따라서 대폭 늘리지만, 수요가 급속히 줄어들 때에는 남아도는 생산설비와 재고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대형 수요처들이 아시아 공급업체들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고관리에 나서기 때문에, 아시아 업체들의 타격은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부품업체들, 구조조정 도미노 한편, 이와 같은 설비투자 축소는 곧바로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각 기업들이 생산과 투자를 축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정리하면서 인원감축에 나선 것이다.
세계 최대 전화기 제조업체인 홍콩의 브이텍은 부품가격이 급등하면서 비용이 증가하고 수요가 감소해 전체 인원의 16%에 달하는 450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브이텍은 또한 멕시코 공장 두곳을 폐쇄해, 약 3천명을 해고하고 생산성이 높은 중국 광둥성 공장에서도 1천명을 더 줄인다는 방침이다.
한국의 삼보컴퓨터는 지난 99년부터 지속해 24시간 풀 가동 체제를 하루 8시간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임시직 숫자를 절반으로 줄였다.
삼보컴퓨터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월 생산 대수가 30만~40만대를 유지했으나, 올 들어 월 20만대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전자 역시 전사원의 20%에 해당하는 5천명의 인원을 감축하고 LCD 사업부 및 정보통신기기 사업부를 매각할 방침이다.
관련 부품회사들 역시 구조조정의 물결에 합류하고 있다.
대만 부품회사인 둥위엔(東元)전자는 지난 3월 전사원의 20%에 해당하는 207명을 감원했다.
둥위엔전자는 적자를 기록한 모니터 사업부에서 철수하면서 공장직원들뿐만 아니라 고위 사무직까지 해고함으로써 과감한 구조조정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 대형 전자부품 업체인 삼성전기는 4월 초 ‘긴축경제체제’를 선언하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기는 올해 초 일부 소형 모터 사업부 등을 완전히 정리했으나, 앞으로도 경영축소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아시아의 IT 산업은 지난 98년의 경제위기 이후 경제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맡아왔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대만은 미국식 신경제 성장모델을 채택, IT 부문의 육성을 통해 기술 주도 성장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 신경제의 긍정적 효과뿐만 아니라 ‘IT 혁명의 양면성’이라는 부정적 효과도 같이 가져왔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IT 혁명은 생산성을 향상시켜 경기확대에 기여하지만 경기가 후퇴할 경우에는 한계점에 다다르는 시기를 앞당긴다”며 ‘IT 혁명의 양면성’을 언급한 바 있다.
이제 아시아 IT 업계는 그 양면성을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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