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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인사이드] 투기 부르다 제 무덤 판 'OEM펀드'
[펀드인사이드] 투기 부르다 제 무덤 판 'OEM펀드'
  • 최상길(제로인펀드닥터부장)
  • 승인 2000.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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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제작 및 납품 방식 가운데 OEM이라는 것이 있다.
주문자 상표를 부착해 물품을 제작·납품하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투신업계에서도 OEM이라는 단어를 흔히 들을 수 있다.
외견상 일반적인 펀드지만 돈을 댄 투자자가 직접 운용도 담당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외관상 투신사가 제작(운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제작자는 따로 있다는 뜻에서 OEM펀드라고 이름붙인 듯하다.


OEM펀드 원조는 ‘외수펀드’다.
외국인 투자전용 수익증권의 준말로 80년대 초 자본시장 개방정책의 하나로 도입된 펀드다.
당시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투신사의 운용능력을 믿을 수 없다며 자금은 한국의 투신사에게 주지만 운용권은 자신들이 갖겠다고 주장했다.
투신사들은 외국 유수기관의 자금을 대신 운용해준다는 것을 홍보해 대외 신인도를 높이고 한푼의 수수료라도 챙길 목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한마디로 자릿세를 받고 자존심을 내다판 꼴이다.

이런 관행이 최근 들어 외국인이 아닌 국내 기관투자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펀드를 통해 보유한 주식을 매도할 때 거래세(0.3%)가 면제되고 수익자 입장에서 자산관리가 편리하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건전한 자본시장 육성을 책임지고 있는 감독당국은 OEM펀드를 가려내고 이와 관련한 불법적 거래가 없는지를 적발하려고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실제 종목 매매권한을 누가 갖고 있는지는 당사자들이 자백하지 않는 한 겉모습만으로는 가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OEM펀드는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을 수 있다.
자기 돈 자기가 운용하겠다는데 말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OEM펀드가 있다고 해서 일반 펀드 고객들이 피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최근의 OEM펀드들은 외수펀드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단순히 운용사의 자존심을 내다 판다는 차원이 아니라 증권시장의 거래질서는 물론 투신시장의 건전성을 해칠 가능성 때문이다.
데이트레이더처럼 초단타 매매를 일삼기도 하고 몇개 종목에 집중 투자해 주가왜곡을 주도하기도 한다.
일부 OEM펀드는 몇개 종목에 대한 집중투자로 지난해 200%에 가까운 수익률을 달성하면서 ‘펀드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투기심리를 부추기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위험한 투자를 일삼던 OEM펀드들이 약세 국면에서 엄청난 손실을 보면서 운용사의 실제투자 수익률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펀드매니저들의 반대에도 경영상의 이유로 OEM펀드를 받아들였던 투신사들이 스스로 제 무덤을 판 꼴이 되고 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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