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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퀵보드 하나면 일도 '씽씽'
[문화] 퀵보드 하나면 일도 '씽씽'
  • 이경숙
  • 승인 2000.10.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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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프리 www.telefree.co.kr 김태계(34) 미디어플랙스팀장과 이창훈(29) 서비스기획팀장이 ‘녀석들’을 둘러메고 나타난 것은 한달 전쯤. 광고영업이 주업무인 김 팀장은 테헤란밸리 곳곳에 숨은 거래처로 녀석을 몰고 나가기 시작했다.
서비스운영 책임자인 이 팀장은 회사 서버가 있는 KIDC에 갈 때마다 녀석과 동행한다.


직원들은 ‘녀석들’의 출현에 일단 흥분했다.
“이거 우리 어렸을 때 타던 ‘씽씽카’ 같은 거 아냐?” 임원들은 호기심 반, 우려 반의 눈빛으로 ‘녀석들’의 구매청구서에 서명했다.
‘업무에 방해나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근처 주차장 양씨와 당구장 김씨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보기엔 괜찮지만…. 저 나이에 멀쩡한 자가용 놔두고 그걸 얼마나 타겠어.” “그러게 말야, 언제까지 타고 다니나 내기할까?”퀵보드는 이제 테헤란밸리의 일상적 풍경 예상과 달리 녀석들은 회사에 잘 적응했다.
사원들은 서로 녀석을 데리고 바깥일을 보겠다고 나선다.
전에는 ‘죽음의 오르막’이라 불리던 텔레프리와 KIDC 사이 언덕은 요즘 ‘환상의 내리막’이라 불린다.
관리팀 한지혜(26)씨는 은행까지 가는 길이 짧아 아쉬울 지경이다.
녀석을 타면 5분밖에 안 걸리기 때문이다.
임동선(43) 부사장은 회사 앞 식당까지 가는 데 녀석을 이용한다.
이창훈 팀장은 투덜댄다.
“내가 가져왔는데 난 여태 두번밖에 못 타봤어!” 때때로 녀석을 두고 내기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종목은 올라타고 한발로 오래 버티기와 천천히 가기. 걸린 판돈은 밥값이다.
출전 선수는 뜻밖에도 40대 중반의 임원진들이다.
애초의 우려는 없어지고 흥겨움만 남았다.
김태계 팀장은 녀석을 칭찬하느라 침을 튀긴다.
사실 으리으리한 빌딩에도 자전거 주차장은 없다.
하지만 녀석은 금방 접어 가방에 넣을 수 있으니 보관하는 데 그만이다.
“사무실 바로 앞까지 갈 수 있고요, 인도에서도 탈 수 있어요. 자전거보다 안전하고요, 배도 더이상 안 나오고. 아주 좋아요.” 자가용처럼 교통체증에 묶여 늦어질 일이 없으니 약속시간까지 정확히 도착할 수 있다.
녀석 이야기로 처음 만난 거래처 사람들과 말문을 트기도 편해졌다.
녀석들은 점점 테헤란밸리의 거리를 장악해가고 있다.
소프트뱅크미디어 www.sbmedia.co.kr 경영지원팀 박미경(21)씨는 요즘엔 하도 흔해져 타고 다녀도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암사동에 사는 박씨는 8호선에서 2호선 전철로 갈아타는 환승길과 삼성역에서 회사까지 가는 길이 너무 길어 녀석을 타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녀석 없이는 지루해 그 길을 다니지 못한다.
아직 출퇴근 때 녀석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점심 때 식당까지 타고 가는 사람들은 심심찮게 눈에 띈다.
녀석의 생명은 과연 얼마나 갈까? 디디아르(DDR)나 펌프 같은 한때의 유행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어김없이 양복 차림에 노트북을 둘러멘 채 녀석을 타고 나타난 김태계 팀장에게 주차장 양씨와 당구장 김씨는 묻는다.
“어이, 김 팀장. 언제까지 퀵보드 탈 거야?”
비트밸리는 지금 ‘기쿠보오도’ 열풍
푸른 숲과 작은 시내로 둘러싸인 한적한 교외 전철역. 스키야마가 시내에 있는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비틀비틀 나타난다.
영화 <쉘위댄스>의 한장면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올해 찍었다면 주인공 스키야마는 다른 것을 타고 나타났을지 모른다.
일본 도쿄의 직장인들은 요즘 ‘출근 스포츠종목’을 자전거에서 퀵보드로 바꿨다.
교외 전철 역 앞에 가지런히 늘어서 있던 자전거 주차 행렬은 차츰 줄어들었다.
전철 안엔 작게 접은 퀵보드를 옆구리에 낀 양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시내 전철역 앞에선 유유히 퀵보드를 펼쳐들고 자동차들이 빽빽히 들어선 도로를 날렵하게 비집으며 사라지는 넥타이족들이 늘었다.
일본어 강사이자 자유기고가인 타바타 가야(33)는 비트밸리로 불리는 신주쿠나 젊음의 거리인 하라주쿠에서 퀵보드는 이미 일상적 풍경이라고 전한다.
집에서 전철역까지, 전철역에서 직장까지, 퀵보드는 도쿄 직장인들에게 날쌘 바퀴를 달아줬다.
덩치가 커 집 앞 전철역에 세워둘 수밖에 없는 자전거는 당연히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올해 들어 퀵보드는 통상성과 경시청이 퀵보드 안전운전강습회를 열 정도로 대중화됐다.
퀵보드 열풍은 인터넷에서 실감할 수 있다.
검색사이트 인포시크 www.infoseek.co.jp에 가서 “기쿠보오도”를 치면 50여개의 결과가 뜬다.
이 사이트들엔 안전하게 퀵보드 타는 법, 일상적 점검법, 부품판매처, 퀵보드용 스티커 만드는 법은 물론, 울퉁불퉁한 길이나 계단에서 멋지게 타는 법 따위의 상세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일부 퀵보드 이용자들은 경찰이 단속에 나서면 곤란하므로 통행자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주의하자며 매너 지키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최근엔 차도와 인도, 자전거 전용도로 중 어디에서 타야 하는가를 두고 인터넷 토론이 열리기도 했다.
반도씨의 홈페이지 members.tripod.co.jp/friaser/razortoha처럼 도보, 자전거, 퀵보드 통근을 비교하면서 퀵보드 장점을 설파하는 곳도 있다.
그는 퀵보드로 매일 출퇴근시간 17분을 절약했다.
물론 자전거만큼 빠르지는 않다.
하지만 전철을 많이 갈아타야 하거나, 역에서 직장까지 거리가 먼 사람들에겐 퀵보드가 훨씬 더 유용하다고 그는 말한다.
“게다가 폼 나잖아요?” 퀵보드는 일본 N세대 직장인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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