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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루슨트테크놀로지스 ‘수술중’
[포커스] 루슨트테크놀로지스 ‘수술중’
  • 최욱/ 와이즈인포넷 연구원
  • 승인 2001.0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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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실적악화에 투자등급 하락…공장매각·대규모 감원 추진

세계 최대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미국 루슨트테크놀로지스(Lucent Technologies). 루슨트는 지난 96년 미국 최대 장거리 통신사업자인 AT&T의 통신장비 제조부문에서 분사한 이후 3년간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러나 루슨트는 최근 “6주 안으로 2개의 공장 매각을 포함해 전체 직원의 약 15%인 1만6천명의 직원을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안으로 곪고 있던 환부에 드디어 칼을 들이대기로 한 것이다.


최근 루슨트가 처한 상황은 한마디로 ‘참담함’ 그 자체다.
루슨트는 지난해 1월과 7월, 10월, 그리고 12월에 잇따라 실적악화 전망을 발표했다.
루슨트 같은 거대기업이 한해에 4번이나 실적악화 경고를 발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루슨트가 1월24일 발표한 2001년 회계연도 1분기(10~12월) 실적은 루슨트의 현재 상황을 잘 알 수 있게 해준다.
루슨트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79억1천만달러보다 26%나 줄어든 58억4천만달러로, 애초 전망치인 63억달러를 훨씬 밑돌았다.
또한 루슨트는 같은 기간에 10억2천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동기에 10억800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던 것과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루슨트의 주가는 1년새 70% 가까이 떨어졌으며, 신용평가기관들은 루슨트의 투자등급을 하향조정하고 있다.


수요예측 실패가 최대 패착

루슨트가 어쩌다 이런 궁지에 몰렸을까? 분석가들이 꼽는 루슨트의 최대 실수는 앞날을 내다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루슨트는 데이터 네트워크의 급속한 수요증가를 예측하지 못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조그마한 중소업체에 불과했던 캐나다 통신장비 제조업체 노텔네트웍스(Nortel Networks)는 이 점에서 루슨트와 대조된다.


지난 95년 노텔은 말 그대로 도박을 시도했다.
초당 100억비트의 속도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광통신 네트워크 기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당시 초고속 대용량 네트워크에 대한 수요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노텔의 시도는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반해 루슨트는 수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노텔보다 느린 속도의 네트워크 기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이 부분의 시장점유율은 노텔이 45%에 이르는 반면, 루슨트는 15%에 불과하다.



무리한 매출성장 정책이 화 불러
루슨트의 실패원인 중 두번째로 꼽히는 것은 무리한 매출성장 정책이다.
전 CEO 리처드 맥긴은 97년 취임 직후 분석가 및 투자자들을 상대로 가진 사업평가회에서 “매출성장률을 연평균 20% 이상 유지할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때부터 루슨트의 과도한 ‘매출 부풀리기 작전’이 시작됐다.
루슨트는 이듬해인 99년 회계연도에 20.4%의 매출증가율을 달성했다.
그 이후 매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격인하 정책을 구사했다.
결국 순이익이 급전직하하면서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리한 매출목표를 맞추기 위해 생산을 무차별적으로 늘린 것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생산라인 증축에 막대한 자금이 투자됐으나 재고만 늘었다.
결국 재고를 줄이기 위해 가격을 인하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게다가 루슨트가 대거 투자한 부문은 수익성이 점차 떨어지는 음성통신 관련 제품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데이터 네트워크처럼 수익성이 높은 부문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뒤졌다.


루슨트 실패원인 가운데 세번째로 거론되는 것은 방만한 조직운영 및 비효율적 의사전달 구조다.
루슨트의 직원은 수십건의 인수합병을 통해 11만명에서 16만명으로 늘어났다.
조직이 방대해지면서 조직관리가 느슨해지고, 의사전달 구조가 다층화됐다.
부서들은 매출달성에만 열중했고, 루슨트의 고객들은 수많은 부서를 따로따로 상대해야 했다.
게다가 지난해 1월 실적악화 경고를 발표했으면서도 의사결정 구조의 혼선 때문에 11월에 가서야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도 CEO가 주주들에게 전격적으로 경질된 뒤 가능했다.


루슨트가 이번에 발표한 공장매각 및 인력감축 조치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10월 리처드 맥긴이 경질된 이후, 새로 CEO를 맡은 헨리 샤흐트는 대대적 구조조정 계획을 예고한 바 있다.
지난 95~97년 루슨트의 CEO를 맡은 적이 있는 샤흐트는 정밀전자(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사업부를 분사시키고, 전원을 생산하는 파워시스템스 사업부는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분석가들은 루슨트의 미래에 여전히 회의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리먼브러더스의 스티브 레비는 루슨트의 구조조정 소식을 접하고도 “루슨트가 아직 바닥을 완전히 벗어났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며 투자등급을 ‘중립’으로 유지했다.
샤흐트가 복귀했을 때도 커뮤니케이션 인더스트리 리서처스(CIR)의 마크 루트코비츠는 “루슨트가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 해도 곧바로 시장에 내놓을 상품이 없다”면서 샤흐트의 성공가능성을 50 대 50으로 점쳤다.



최대 관건은 ‘신뢰회복’
루슨트가 넘어야 할 산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은 노텔이나 시스코에 뒤지고 있는 광통신 네트워크 및 라우터 부문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루슨트의 덜미를 잡아온 벤더파이낸싱도 교통정리해야 한다.
벤더파이낸싱은 통신장비 제조업체들이 매출증대를 위해 사업자들에게 구입자금을 빌려주는 것으로, 루슨트는 이 때문에 약 77억달러의 자금이 묶여 있는 상태다.
루슨트가 지원해준 상당수 업체가 재정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자금이 부실채권으로 둔갑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재 루슨트가 가장 먼저 취해야 하는 조처는 고객과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영화 속 ‘돌아온 장고’는 적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리는 호쾌한 장면을 연출했다.
샤흐트가 과연 영화에서처럼 돌아온 장고가 될지 지켜보는 눈들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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