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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디지털판화작가 김주형
[나는프로] 디지털판화작가 김주형
  • 한정희
  • 승인 2001.0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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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의 무한복제를 꿈꾼다
“이게 무슨 판화야?"
디지털 판화작가 김주형(43)씨가 찍어낸 판화를 보면 사람들은 대개 이런 반응을 보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통 판화처럼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오히려 예쁜 애니메이션 카드나 그림카드 같다.
10대 여학생들은 팬시용품처럼 그의 작품을 맞이한다.
반면 30~40대 중산층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적잖이 당황스러워 한다.
그림이 너무 쉽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라면 어딘가 모호하면서도 심오한 뭔가(?)가 풍겨야 하는데….

하지만 그는 자신의 판화가 예쁜 팬시그림같이 느껴지는 것이 싫지 않다.
쉽게 사람들 마음을 파고들면 더욱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부담없이 사서 방에 걸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진정한 예술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대 예술품들은 돈 있는 사람들의 소장품이 됐죠. 웬만한 소시민들은 꿈도 꿀 수 없는 가격이 매겨져 있어요. 진정한 예술은 일반인들이 쉽게 소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는 판화도 그렇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디지털 판화다.
희소가치 없는 예술작품? 그는 77년 홍익대 미대에 입학해 서양화를 공부했다.
그리곤 4학년 때 광주사태를 접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그 당시 역사에 동참하는 방법으로 민중판화운동을 택했다.
민중판화서클인 ‘두렁’을 만들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과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투사의 모습을 목판화와 고무판화에 담았다.
그리고 85년부터 93년까지 한국문화운동연합이라는 운동단체에서 일했다.
하지만 당시 운동단체는 사회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상당히 경직돼 있었다.
“금욕적이라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부족한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었죠. 그러면서 혼자 때때로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때 한두장씩 스케치해둔 것들이 지금 작품들의 밑그림이 됐어요” 그가 컴퓨터에 입문하게 된 건 94년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다.
디자인 일을 하면서 전자편집을 배우게 됐다.
“그림책을 만드는 출판사였거든요. 편집을 컴퓨터로 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더 신경써서 배우게 됐죠.” 그는 그동안 스케치한 그림들을 디지털로 나타내보고 싶었다.
그는 포토샵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렇게도 출력해보고 저렇게도 출력해봤다.
보통 인쇄물과는 다른 산뜻함, 색다름이 다가왔다.
“디지털 판화라고 하기보다 보통은 디지털 프린팅스라고 하지요. 그림 그리는 방법이나 매체가 디지털 기술로 창조하고 표현하고 저장하는 것이 디지털 프린팅스라고 생각합니다.
” 김주형씨는 디지털 판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디지털 판화의 혁명적 요소는 일반 예술작품과는 달리 무한히 복제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보통 판화에 쓰는 ‘카운팅’이라고 하는 일련번호는 판화작품이 한정본임을 알리기 위한 표시다.
하지만 김주형씨는 자신의 판화에 카운팅을 하지 않는다.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데 희소가치를 두어 가격을 높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대중을 위한 예술 김주형씨의 그림도구는 매킨토시와 스캐너 그리고 잉크젯프린터다.
물론 스케치는 종이 위에 한다.
먼저, 가는 로드펜으로 스케치를 한다.
그가 주로 스케치하는 건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그중에서도 인간의 운명을 동화시키는 자연, 대개는 허물어진 고대 유적이나 자연을 파고든 인간의 문명들이다.
직장생활 때 출장갔던 이탈리아에서 기를 쓰고 토스카니 지방을 들른 것도, 지난해 2월 앙코르와트 유적을 일부러 찾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가 모아놓은 그림들은 6~7년 정도 여러 곳에서 한두장씩 스케치해놓은 자연의 조각들이다.
스케치는 짧으면 30분, 길면 몇시간에 걸쳐 한다.
선으로 그린 그의 그림들은 스캐너를 통해 컴퓨터로 들어가 검정색의 디지털 기호로 바뀐다.
그리고는 컴퓨터 캔버스에 그대로 재현된다.
그 기호들 위에 포토샵으로 여러가지 색을 입힌다.
색은 수채화기법으로 여러장의 레이어를 통해 겹쳐지고 또 겹쳐진다.
10개에서 많으면 20개 정도 옅은 색의 레이어들을 중복해 맘에 드는 색감을 낸다.
간단한 건 3~4시간 만에 완성하지만 어떤 건 몇시간씩 걸리기도 한다.
느낌이 강하게 오는 그림은 금방 그린다.
하지만 안되는데 억지로 그리지는 않는다.
잠깐 쉬었다 한들 어떤가. 종이에 그리는 그림처럼 망치는 일도 없다.
색깔이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그릴 수 있다.
“안 그리면 안 그렸지 망치는 그림은 없어요.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겠죠.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뿐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각각의 그림에 대한 애정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남에게 그림 한점 주기가 쉽지 않다.
또 주고도 다시 보고 싶은 때가 있다.
때로는 파기하고 싶은 그림도 있다.
“젊을 때 그림이 맘에 안 들면 파기한 것도 많아요. 하지만 남에게 준 건 그대로 남아 있죠. 디지털 판화는 원본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원본은 내가 가지고 있지만 같은 그림들을 무한히 많은 사람들이 나눠가질 수 있죠. 이런 게 미술의 민주화 아닌가요” 그는 지난해 11월에 그동안 그려놓은 디지털 판화작품 130여점을 모아 인사갤러리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그는 전시회라고 하는 한정된 공간은 폼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영양가는 없다고 투덜거린다.
아는 사람들만 오고 정말 다가가고 싶은 대중들은 거기 없다는 것이다.
현재 그의 그림은 인터넷 전시장인 닷갤러리 www.dotgallery.co.kr에서 전시중이다.
전시작품들을 다 볼 수 있고 그림을 직접 살 수도 있다.
저렴한 가격에 액자에 예쁘게 담아준다.
아니면 그에게 직접 살 수도 있다.
그는 즉석에서 그림을 프린팅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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