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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기상청
[현장탐방] 기상청
  • 김윤지
  • 승인 2001.01.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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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뉴스가 아니라 정보”
2000년 12월24일 밤. 소리없이 흰눈이 소복소복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사람들이 낭만에 흠뻑 젖어들던 그 순간, 소담스런 흰눈을 하늘의 축복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마케팅에 활용한 업체들이었다.
적설량에 따라 이벤트 적용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들은 눈이 얼마나 내릴지 숨죽이며 기다려야 했다.
24일 서울지역 적설량 0.9㎝, 25일 1.8㎝. 1㎝를 화이트 크리스마스라고 정의한 까닭에 이벤트 참가자들과 업체들은 기준일에 따라 울고 웃었다.

아무리 나노 수준의 테크놀로지가 발달한다 해도 갑자기 들이닥치는 기상변화에 우리 삶은 꼼짝없이 휘둘리곤 한다.
하루 아침에 살던 곳이 날아가버리기도 하고, 한해 농사가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평화로운 계곡이 갑작스런 폭우로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변하기도 한다.
기상청은 누구보다 먼저 그런 변화와 싸운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슈퍼컴퓨터 가운데 가장 많은 데이터를 매일매일 다루는 곳이 바로 기상청이다.
하루에 다섯번 출고되는 기상예보는 이런 수많은 데이터와 벌이는 싸움을 통해 나오게 되는 작품들이다.
1천여명의 직원들이 슈퍼컴퓨터를 중심으로 데이터의 오케스트라를 펼치는 것이다.
99년 6월부터 슈퍼컴퓨터 가동 기상예보는 관측, 자료처리, 자료분석, 예보통보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다다른다.
지상, 해양, 고층, 위성, 레이더, 항공 관측을 위해 83개 관측소와 22개 위성수신기가 바삐 움직인다.
서울의 기상위성수신분석시스템은 정지기상위성(일본 GMS-5, 유럽 Meteosat-5, 중국 FY-2B)과 극궤도기상위성(미국 NOAA)에서 관측한 자료를 수신해 예보업무에 활용한다.
이렇게 모은 관측자료들은 종합유선통신망을 통해 종합기상정보시스템으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수치예보용 슈퍼컴퓨터, DB용 전산기, 위성용 전산기, 연구용 전산기들이 다양한 관측데이터를 활용해 기상예보 자료를 만든다.
기상예보는 수치예보에 그 뿌리를 둔다.
수치예보는 20세기초 영국의 기상학자 리처드슨이 별의 운행이나 바닷물의 높낮이를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날씨도 예측할 수 있다고 믿고 시도한 기상예보 방법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대기상태는 3차원 공간에서 바람, 온도, 습도로 정의되는데, 대기는 이 요소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즉 단순한 덧셈, 뺄셈으로 대기운동을 예측할 수 있다.
” 컴퓨터가 등장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6시간 동안의 날씨를 예보하기 위해 무려 6만4천명이 동원돼 덧셈, 뺄셈에 매달렸다.
대기운동을 재현하거나 예측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수치모델이라고 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대기는 양파껍질처럼 여러 층으로 나뉠 수 있고, 각 층은 다시 바둑판처럼 여러개의 작은 면적으로 분할될 수 있다.
즉 수많은 작은 대기 상자들로 재구성된다.
이 상자들이 컴퓨터가 분석할 수 있는 최소단위이자 하나의 계산점이다.
세계적으로 같은 시각에 관측된 기상자료들을 토대로 상자 안의 기온, 바람, 습도, 기압이 결정되면 이 상자 안의 값들을 연산해 대기의 복잡한 운동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값이 수치예보이다.
이때 컴퓨터가 분해할 수 있는 단위상자의 체적을 더 줄일수록 계산량은 늘어나지만 대기의 움직임은 더 정확히 재현할 수 있다.
슈퍼컴퓨터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상용 슈퍼컴퓨터를 99년 6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했다.
일본 NEC에서 도입한 SX-5기종으로 초당 2240억번의 기본연산을 할 수 있다.
처리속도 기준으로 세계 70위 정도이며 국내 최고 성능을 자랑한다.
슈퍼컴퓨터의 도입으로 분석정밀도가 향상되고 관측자료도 보강되었다.
컴퓨터가 분해할 수 있는 대기의 단위상자 체적이 작아져 더 상세히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미선 기상사무관은 “현재 슈퍼컴퓨터로 수치모델을 한번 돌리는데 20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이 속도이기 때문에 정시에 관측된 자료를 가지고 예보시간 전에 자료를 뽑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슈퍼컴퓨터 도입 전에는 계산속도가 이보다 20배 가량 느려 예보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정시 관측 자료가 아니라 12시간 전의 예보 자료로 모델을 돌려야 했다고 한다.
지형 특성에 맞는 독자 모델 개발이 중요 슈퍼컴퓨터라고 해도 만능인 것은 아니다.
수치예보를 가지고 만든 기상예보 초안은 하루에 두번 있는 예보토의를 거쳐 정식 예보문으로 다듬는다.
매일 오전 7시50분, 오후 3시에 있는 예보토의 분위기는 매우 진지하다.
총괄예보관을 비롯해 25명의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관측자료, 일기도, 위성사진들을 멀티큐브로 함께 보면서 예보문안을 결정한다.
같은 자료라 하더라도 해석이 다를 수 있어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담당 과장들의 숙련된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토의 결과 결정된 예보문에 바탕해 하루 다섯번의 기상예보가 나오게 된다.
기상예보에서 슈퍼컴퓨터의 수치예보 능력이 향상된다 하더라도 사람의 몫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자료는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그 자료를 가지고 정보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일본, 미국에서 각기 컴퓨터가 예측한 결과들이 다를 때 어느 것을 취하고 어느 것에 비중을 둘지를 결정하는 것도 사람이고, 컴퓨터의 수치모델이 자연을 더 가깝게 모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 김병선 총괄예보관은 사람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지형 특성에 알맞은 독자적 예보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은 지속적 투자를 통해 전문인력을 양성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좁은 지형에 많은 사람들이 살다 보니 미국과 같이 넓은 지형에서 쓰이는 모델은 한계가 많다고 한다.
최고의 슈퍼컴퓨터는 결국 사람이다.
날씨를 하나의 정보로 만드는 것도, 그 정보를 가지고 다양한 변주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다.
“날씨는 뉴스가 아니라 정보다.
정보는 그것을 과학적으로 잘 이용하는 사람에게 더 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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