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금성이던 시절, 금성사 정보시스템연구소 김종욱 대리는 하루하루가 식은 죽 먹기처럼 텁텁하고 지루했다.
입사 8년차 대리에게 주어진 일은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하고 주재하기, 책상 위의 문서에 사인하기 정도였다.
김 대리는 몸이 근질근질했다.
뭔가 일상을 깨는, 자극적인 맛이 필요했다.
2001년, 한국능률협회컨설팅 6시그마그룹장 김종욱(38) 선임연구원의 모습엔 고무공처럼 탱글탱글한 긴장감이 넘친다.
6시그마에서는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과 손짓은 야전군 지휘관처럼 매섭고 절도 있다.
6시그마 컨설팅과 CRM(고객관리), ERP(전사적자원관리)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묻자 칠판에 판서까지 해가며 선생님처럼 친절하게 설명한다.
어떻게 그는 ‘엔지니어 김종욱’에서 ‘컨설턴트 김종욱’으로 변신했을까.
변신의 계기는 뜻하지 않는 곳에서 왔다.
92년 김 연구원은 경영개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맥킨지에서 파견된 일본인 컨설턴트와 한 팀에서 일하게 되었다.
맥킨지 컨설턴트는 금성의 경영 전반에 대해 구석구석 들여다보며 진단하고 평가했다.
그가 가진 추진력의 밑바탕에는 자신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긍지가 깔려 있었다.
그것은 김 연구원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마케팅의 중요성에 눈뜬 것도 변신을 결심하는 데 한몫했다.
‘나는 왜 제품을 만드는가’, ‘제품을 이렇게 만드는 것이 고객에겐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그는 8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뉴저지대학 경영공학 석사를 마친 2년 후, 그는 쿠퍼스앤라이브랜드(PwC 전신)의 컨설턴트로 새 삶을 시작한다.
“다른 컨설턴트들에 비해선 출발이 한참 늦었죠. 대학을 나와 곧바로 MBA 과정을 마치고 입사하면 보통 스물여덟살 안팎이거든요. 그렇지만 기업에서 실무 프로세스를 겪어본 것은 제게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6시그마는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알아야 조직 안에 사상을 제대로 전파하고 적용할 수 있거든요.” 그는 6시그마의 핵심은 CEO의 리더십이라고 믿는다.
제너럴일렉트릭(GE)만한 성공사례가 없는 것은 잭 웰치 회장만한 리더십이 흔치 않기 때문이란다.
특히 우리 기업에는 리더가 없다.
보스가 있을 뿐이다.
“리더는 ‘가자’고 말하고, 보스는 ‘가라’고 명령합니다.
보스는 아웃풋(산출물)은 효율적으로 낼 수 있죠. 그러나 그 효과는 어떨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리더는 조직원들에게 확신을 줍니다.
효율적이라기보다는 효과적으로 결과를 내죠. 천천히 해도 정확하게 합니다.
” 여기서 ‘효율’이란 투입 자금이나 시간 안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이고 ‘효과’란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의 기업 문화는 효율을 중시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대책은 이것’이라고 내놓는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고, 문제의 정도를 어떻게 측정해 시정하는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너진 성수대교 다시 세우듯 문제가 발생한 후에라야 대책을 세우게 되죠. 이젠 효율과 함께 효과를 말할 때입니다.
” 반면에 6시그마는 프로세스를 관리해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에는 6시그마 리더십이 없다” 김 연구원은 문제를 정의(Define), 측정(Measure), 분석(Analyze), 개선(Improve), 유지·규제(Control)하는 6시그마의 다섯단계(DMAIC) 중 정의, 측정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 기업의 업무프로세스에서 흔히 빠져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LG전선 직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일이다.
직원들은 뜨거운 쇠가 식는 속도에 따라 성질이 변한다며 불량을 줄이려면 온도에 따른 성질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온도변화를 측정하라고 하니 “1천도가 넘는 온도를 어떻게 재냐, 그렇게 하려면 생산에 차질이 빚어져 안된다”며 투덜거렸다.
그는 “데이터로 증명할 수 없으면 당신의 가설이 맞다는 걸 뭘로 증명하겠냐”고 반문했다.
직원들은 추석연휴 내내 교대로 출근해 측정작업을 했다.
어떤 이는 달아오른 쇠의 온도를 재느라 작업화를 두켤레나 태워먹기도 했다.
결국 직원들은 가설에서 결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뒤풀이 때 그 팀 중 서너명이 곁에 오더니 입사 8년 만에 모처럼 열정적으로 회사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뿌듯했다.
“성공한 6시그마는 문제를 정확히 보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것은 무지지만,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고 열심히 일만 하는 것은 우매죠. 직원들을 무지와 우매에서 벗어나게 하면 회사가 강해집니다.
” 그의 얼굴에서 6시그마 컨설턴트로서 강한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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