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뜻 사기에는 비싸지만 당장 써야 할 물건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사더라도 한번 또는 두세 번 쓰고 나면 그만인 물건이라면 구입을 더욱 망설이게 된다.
가뜩이나 주머니 사정까지 변변치 않다면 마음은 더 내키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이른바 ‘렌털’이다.
렌털은 장난감이나 웨딩드레스처럼 값이 비싸면서도 수명이 짧거나 싫증나기 쉬운 제품을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유리하다.
PC 제조업체인 현대멀티캡 www.multicav.co.kr이 최근 시작한 ‘PC 렌털’ 사업도 그래서 눈길을 끈다.
일정 기간 돈을 받고 PC를 빌려주는 이 서비스는 값비싼 PC를 구입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PC를 대여하는 일은 렌털 전문회사와 닷컴기업들이 온라인에서 이미 시도하고 있지만, 제조업체가 직접 나선 것은 현대멀티캡이 처음이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무이자 분할납부 대금에 매달 10% 정도의 비용만 더 지불하면 최신 사양의 PC를 쓸 수 있다.
데스크톱, 노트북, 모니터, 서버, 프린터, TFT-LCD 일체형 PC를 빌려준다.
임대 기간을 1개월 미만과 1개월 이상으로 나눠 할인율을 달리 적용한다.
임대기간이 길수록 할인율이 높다.
예컨대 17인치 평면 모니터를 장착한 펜티엄Ⅲ 866MHz 컴퓨터는 5일에 6만5520원, 1개월에 18만7200원, 10개월에 93만6천원이다.
펜티엄Ⅲ 866MHz 컴퓨터를 10달 동안 쓰는 데 100만원 가까이 든다면 결코 싼 가격은 아니다.
중견 PC업체인 ㅎ컴퓨터가 공급하는 같은 사양의 데스크톱이 현재 139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PC 수명주기를 따져도 2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사양이고, 프린터는 물론 초고속망 가입 혜택과 무이자 할부판매라는 당근까지 제공한다.
그렇게 보면 사는 게 임대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현대멀티캡 임대사업팀 권대환 과장도 이를 인정한다.
임대기간을 1년6개월 이상으로 계약한다면 구매하는 게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는 “구매와 렌털을 단순 비교하면 렌털이 당연히 비싸다”며 “렌털은 구매의 대안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장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즉, 며칠간의 출장이나 행사, 태스크포스팀 같은 ‘단기’ 수요에 맞추었다는 것이다.
PC 렌털 비용이 비싼 이유는 기술발전 때문에 수명주기가 짧아져 싼값에 대여해서는 ‘본전’을 뽑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경우 내용연수를 5년 이상으로 잡기 때문에 장기 렌털을 해도 합리적 수준의 가격이 나온다는 것이다.
김정렬 마케팅부장은 “현대멀티캡은 생산원가를 기준으로 이용료를 산정하고 기존 업체는 구매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에서 제조업체 임대 PC가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PC를 임대해서 사용하면 유리한 점이 있다.
우선 초기 투자비용이 없고, 단기간의 프로젝트나 행사를 위해 고가의 장비를 사는 낭비가 사라진다.
또 기술발전에 신속하게 대응해 언제나 신제품을 쓸 수 있다.
PC는 구입하자마자 금방 구형이 되는 대표적 물건이다.
장비가 고장나도 렌털 업체가 보험을 들어놨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고, 고장이 심하면 장비를 교체해주기 때문에 업무 공백이 생기지 않는다.
현대멀티캡을 통해 40여대의 데스크톱을 임대해 쓰고 있는 한 직업전문학교 시스템 관리자는 “최신 기종으로 교육을 해야 하는 특성상 구매보다 임대가 훨씬 유리하다”고 말한다.
TCO(총소유비용) 개념으로 소유에 따른 유지나 관리 같은 보이지 않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임대가 결국은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는 “적은 예산으로 어렵게 구매한 장비가 몇개월도 안돼 수십만원씩 가격이 떨어지고 새로운 기능의 신제품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구매시기조차 종잡을 수 없었다”며 “렌털은 임대 시점에서 최신 기종을 들여놓을 수 있고, 감가상각에 따른 손실도 없어 좋다”고 말했다.
알앤텍 www.rentisgood.com은 올 2월부터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PC 전문 렌털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회사 김희수 사장도 기업이 PC를 구매할 때 초기 비용말고 관리 비용을 따진다면 임대가 더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PC만큼 소유에 따른 불편이 큰 게 없다.
구입하는 데 목돈이 들고, 관리와 유지보수에도 많은 인력과 비용을 추가로 들여야 한다.
” 그는 가트너그룹 자료를 인용하면서 PC 총소유비용이 구매비용의 5배가 넘는다고 전한다.
“렌털비가 비싸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TCO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비용 분석에 철저한 외국계 기업과 회계법인이 PC 임대를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알앤텍의 고객 중에는 삼정컨설팅과 삼일회계법인 같은 회계법인을 비롯해 머큐리, 시스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따위의 외국계 기업, 그리고 새롬기술, 옥션을 비롯한 닷컴기업이 있다.
국내 렌털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금융 차원에서 제조업체가 고가의 생산설비를 임대하는 방식을 제외하고는, 개인 대상 렌털 문화가 활성화하지 못했다.
소유욕이 강해 남의 것을 빌리는 것을 어색하고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풍토가 남아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전통적 기업은 아직도 구매를 선호한다.
PC 렌털도 장기계약 방식의 대량 임대보다는 단기성 프로젝트나 파견 근로, 행사장에 설치하는 용도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전체 PC 생산량의 10%를 렌털 시장에서 소화하고 있을 만큼 렌털 문화가 활발하다.
업계에서는 한국의 PC 렌털 시장이 지난해 3만5천대 규모를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렌털이 주는 경제적 효과가 널리 알려진다면, 전체 생산량의 10%라는 미국형 렌털 시장으로 3년 안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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