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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바벤] ⑪ 유전자변형식품
[닥터바벤] ⑪ 유전자변형식품
  • 허원(강원대 교수)
  • 승인 2001.04.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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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의 빛과 그림자 질병과 곤충, 냉해에 저항성 갖는 곡물…인체유해, 생태계 교란 우려도 유전자변형식품(GMO)의 기준안을 마련하기 위한 유엔 실무자 회의가 최근 일본에서 열렸다.
회의에선 2003년까지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보고서가 완성되면 세계무역기구(WTO)의 식품이나 곡물 거래의 기초자료로 사용되고, 갖가지 분쟁을 해결하는 기준으로도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과학 차원에서 논의됐던 유전자변형식품의 안전성 문제가 사회·경제적인, 또는 국제 무역의 쟁점으로 떠오르는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유전자변형식품의 안전성 문제는 더욱 뜨거운 감자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7월부터 유전자 재조합 식품 표시제를 실시해 유전자변형식품 여부를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
이와 함께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한 시민단체의 반대 운동도 불이 붙고 있다.
여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과 호응도 꽤 높은 수준이다.
바이오 기술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안고 있는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해충에 강하고, 영양도 듬뿍 현재 세계적으로 콩, 옥수수, 감자, 토마토 및 식용유 원료로 사용하는 카놀라 등 50여종 이상의 유전자변형식품 원료가 생산·유통되고 있다.
유전자변형식물은 주로 곡류로, 곤충이나 바이러스에 대해 저항성을 갖거나, 냉해 또는 건조한 환경에서 견딜 수 있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것이다.
제초제에 대해 저항성을 갖도록 변형해 수확량을 높이거나, 영양학적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품종을 개량한 것들도 있다.
전통적인 품종 개량 방법인 육종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 유전자 변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변형식물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은 지난 80년 처음으로 외래 유전자를 식물로 전달하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시작됐다.
첫 유전자변형식물은 세균에 저항성이 있는 유전자를 주입한 ‘페츄니아’라고 할 수 있다.
페츄니아는 자신의 유전자 일부를 식물로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아그로박테리아’라는 미생물이 발견되면서 만들어졌다.
아그로박테리아는 식물과 접촉하면 자신의 유전자 일부를 식물체로 옮겨 병을 일으킨다.
이때 식물로 전달되는 유전자를 분리해 병을 일으키는 중간 부분을 잘라내고 여기에 원하는 유전자를 삽입한다.
이렇게 조합한 유전자를 아그로박테리아에 넣어 식물과 접촉시켜 자라게 하면 원하는 유전자 변형식물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이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복잡하고 어렵다.
게다가 식물의 모든 세포에 원하는 유전자가 전달되는 게 아니므로 유전자가 전달되지 않은 세포는 죽이고 유전자가 전달된 세포만 살려 완성된 식물체로 키워내야 한다.
유전자가 전달되지 않은 세포를 제거할 때는 식물 세포를 죽이는 항생제를 사용한다.
미세한 텅스텐 입자를 유전자로 코팅한 다음, 마치 산탄총을 쏘듯 공기의 압력으로 식물체에 쏴 유전자를 전달하는 방법도 개발돼 사용하고 있다.
그 다음 과정은 박테리아를 이용하는 것과 거의 엇비슷하다.
항생제를 이용해 유전자가 전달되지 않은 세포를 없애고, 유전자가 전달된 세포를 분리해 완전한 식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식물은 하나의 세포에서 줄기나 뿌리를 가진 완성된 식물체로 자라는 능력을 갖고 있어 식물호르몬을 적당하게 조절해 배양하면 된다.
하지만 모든 유전자가 식물체에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매킨토시 컴퓨터 프로그램이 펜티엄 컴퓨터에서는 실행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식물체에서 유전자를 해석해 기능을 발휘하도록 유전자 일부를 변형하는 작업이 앞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최근엔 한걸음 더 나아가 잎이나 뿌리 등 식물의 특정한 부위에서만 유전자가 기능을 발휘하도록 조작할 수도 있다.
잎을 갉아먹는 곤충을 죽이기 위해선 독성물질을 내는 유전자가 잎에서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연구소 탈출한 프랑켄슈타인 식품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전자변형 식물을 만드는 기술은 연구실 밖으로 나와 상업화의 길을 걷게 된다.
미국의 식품의약관리청(FDA)은 93년 처음으로 유전자변형 토마토 판매를 허용했다.
이 토마토는 숙성과 관계있는 식물호르몬이 생산되지 않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것이다.
따라서 쉽게 시들지 않고 오랫동안 토마토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상품성을 높여준다.
그뒤로 병충해나 제초제에 저항성을 갖도록 유전자 변형된 곡류들이 계속 개발됐다.
90년대 후반에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곡물의 25%가 유전자변형된 품종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농산물 수입국인 우리나라에서 팔고 있는 두부의 82%도 유전자변형 콩을 포함한 원료로 만들어졌다는 발표가 있었다.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해선 사람들의 관심과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유전자변형을 통해 전통적인 육종으로는 불가능하던, 병충해와 질병에 강하고 생산성이 높은 품종을 개발할 수 있다.
때문에 일부에선 유전자 조작을 통해 식량난을 해소할 수 있다며 유용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쪽에선 유전자변형식품을 오랫동안 먹어도 인체에 해가 없다는 사실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유전자변형 식물로 생태계가 교란되는 등 환경재앙이 발생할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반대론자들은 주장한다.
유전자변형식품을 보는 미국과 유럽의 시각도 서로 크게 다르다.
농산물 수출국이자 유전자변형 식물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슈퍼마켓에서 팔고 있는 식품의 절반 이상이 유전자변형식품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저항감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하지만 유럽 국가의 환경단체들은 ‘프랑켄슈타인 식품’이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어가며 유전자변형 식물의 개발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의 유전자변형식품에 대한 호응도도 아주 낮다.
최근 들어 유전자변형식품에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단백질이 발견됐다는 보고도 있고, 유전자변형 감자를 먹고 자란 쥐의 면역기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인체에 해가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되기는 부족하다.
이에 비해 유전자변형 식물이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증거들은 상당히 강력한 편이다.
유전자변형 곡물에 들어 있는, 제초제에 저항성을 갖는 유전자가 장기적으로는 잡초에게로 전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검증되고 있는 것이다.
낮은 확률이지만 일단 유전자가 잡초로 옮겨지면 기존 제초제는 무용지물이 된다.
제초제에 저항성이 있는 잡초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제초제 개발에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야 하고 곡물의 생산성이 다시 줄어들게 된다.
곡물과 잡초가 공존할 때의 수준으로 생산성이 하락할 가능성이 다분한 셈이다.
선택은 언제나 인간의 몫 물론 유전자변형 식물이 위험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타민A를 합성하는 능력을 가진 수선화의 유전자와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조합해 개발한 ‘황금쌀’은 비타민A의 함량이 높다.
식량이 부족한 제3세계 국가에서 매년 비타민 부족으로 실명하거나 죽어가는 몇천명의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또 케냐에서 생산하는 고구마는 바이러스에 저항성을 갖도록 유전자변형을 시도해 개발된 품종이다.
그뒤 고구마의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져 굶주림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과학의 기준만으로 유전자변형식품의 위험성이나 유용성을 판정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웠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이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과학적인 판단을 떠나 경제적인 측면과 국제무역 등 복잡한 변수가 늘어나면서 선택의 문제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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