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6:14 (화)
[커버스토리] 비트밸리가 부르는 '부활의 노래'
[커버스토리] 비트밸리가 부르는 '부활의 노래'
  • 김주현
  • 승인 2000.08.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비공식 교류의 장 메일링 리스트 폐쇄…힘과 지혜를 축적할 시기 지난 4월20일 아침, 4500명이 넘는 비트밸리 회원들에게 한통의 메일이 날아들었다.
1년여 전 회원들에게 메일링 리스트(ML)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정확히 1만2200통째 메일이었다.
“메일링 리스트 서비스를 정지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갑작스레 날아온 서비스 정지 메일에 회원들은 당황할 뿐이었다.
한때 메일링 리스트는 비트밸리 활동의 중심이었다.
서비스를 중단하기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일본 벤처 최고경영자(CEO)나 벤처 예비군들은 의문사항 문의나 제안, 의견교환 등을 목적으로 하루에 400통의 메일을 주고 받았다.
비트밸리협회 www.bitvalley.org가 매달 첫째 목요일 열던 비트밸리 벤처인들의 파티 ‘비트 스타일’을 지난 2월 중단한 터라 서비스 중단의 아쉬움은 더욱 컸다.
‘씁쓸한 디지털’, 예고된 몰락 인맥과 정보를 교류하던 비트밸리 모임의 침체는 일본 벤처기업들이 앓고 있는 ‘넷 버블’ 몸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벤처기업들은 지난 3월 주가가 곤두박칠치면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닷컴 위기에서 일본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기를 누리던 히카리통신 주가는 6월 들어 최고치의 2% 수준으로 폭락했고 히카리통신은 첨단주 가격을 부풀린 주인공으로 손가락질 받고 있다.
비트밸리의 메일링 리스트 역시 3월 이후 주가폭락 등에 대한 공격과 비판이 거세지면서 건설적인 토론장소라는 취지가 무색해졌다.
정보통신 전문 월간지 <사이조>의 고바야시 기자는 이런 비트밸리의 ‘몰락’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실리콘밸리는 그 안에서 성공한 기업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비트밸리는 반대로 자신들이 붙인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트밸리에는 기업공개(IPO)로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다는 허황된 말들만 떠돌았을 뿐입니다.
” 비트밸리의 ‘해산’은 이미 예고됐었다는 것이다.
비트밸리의 태동은 지난해 3월로 거슬러올라간다.
넷에이지의 니시가와 기요시 사장이 정보교환의 장으로 ‘비터밸리’(bitter valley) 구상을 발표하면서 벤처기업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터밸리라는 이름은 씁쓸하다는 뜻인 ‘시부’와 계곡이란 뜻의 ‘야’를 영어로 직역한 것이다.
하지만 이름이 다소 부정적이라고 해서 디지털을 뜻하는 ‘비트’(bit)로 바뀌었다.
24시간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도쿄의 시부야 전철역 근처. 언뜻 평범한 사무실들로 채워져 있지만 인재를 공급할 수 있는 명문대학이 많다.
게다가 임대료 또한 다른 곳과 비교해 싼 편에 속한다.
니시가와 기요시 사장은 이런 입지 때문에 비트밸리가 벤처산업에는 적지였다고 회고한다.
일본식 벤처문화를 꽃피운 주역 비트밸리에 모인 이들은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벤처경영에 필요한 정보나 지식을 교환했다.
메일링 리스트에 회계사나 변호사가 가세하면서 무료상담소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신문보다 정보가 빠르다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로 올 1월 미츠모리닷컴 www.mitumori.com을 설립한 시노다 사장은 비트밸리에서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8월 홈페이지 제작의 발주와 수주를 인터넷으로만 연결한다는 사업구상을 메일링 리스트에 올렸다.
이것을 보고 컨설팅을 해주겠다는 경영자가 나타났으며 뒤이어 투자자도 구할 수 있었다.
비트 스타일에서 처음 만난 사람을 설득해 부사장으로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그에게 비트밸리는 ‘인생을 바꿔 놓은 존재’였다.
비트밸리는 벤처문화가 생겨나기 힘든 일본 풍토에서 그나마 인터넷 비즈니스를 지금까지 끌고온 주역이었다.
일본에서 아이디어만을 갖고 벤처를 설립한다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다.
일본 문화는 가족끼리도 금전 문제만큼은 냉혹하기 때문이다.
대형 금융회사의 자회사인 벤처캐피털 역시 보수적인 투자관행이 뿌리깊다.
이런 어려움을 뚫고 자금과 우수한 인재가 벤처로 몰려들 수 있었던 것은 비트밸리 구상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은 부활을 위한 힘을 모을 때” 비트밸리의 벤처기업들은 부활을 꿈꾼다.
비터밸리 구상을 세우고 “미숙함을 자각하고 진보하자”라는 비트밸리의 슬로건을 만들었던 니시가와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의 미숙함을 느끼고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간다는 취지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공하기 전부터 들떠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 위기의식을 갖고 지금의 넷 버블에 좌우되지 않는 확고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 미츠모리닷컴의 시노다 사장도 이제 각자가 힘을 축적할 때라고 말한다.
“비트밸리를 넷 버블의 상징이라든가 아이들의 장난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없어진 메일링 리스트의 후손으로 앞으로 비트밸리의 진짜 힘을 증명할 것입니다.
” 메일링 리스트와 같은 비공식 모임의 부활, 더 나아가 비트밸리의 부활은 뒤늦게 불붙기 시작한 일본 인터넷 비즈니스의 생명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글로벌전에서는 한국이 이기고 있다”
8월22일부터 사흘간 도쿄에서 열리는 제2차 한일문화산업투자설명회를 준비하면서 일본은 식은땀을 흘렸다.
대규모 행사장임에도 통신 인프라가 부족해 한국 참가업체들의 동화상 화면을 매끄럽게 작동시키기 어려웠던 것이다.
급기야 한국 전문가들이 날아와서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최근 한국 인터넷 비즈니스 업체들의 일본 진출이 눈에 띄게 늘면서 도쿄 바닥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다.
“인터넷 산업은 확실히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일본이 한국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대부분이 일본에 진출한 한국 기업가들에게서 나오는 말들이지만 일본인들에게서도 이런 말을 듣는 게 드문 편은 아니다.
지난 6월 말에 나온, <2000년판 IT벤처@21>(쇼에이 출판국)이라는 정보통신 전문 무크지는 표지에 “한·미·일 전자상거래 사정-미국은 3년 앞서가고, 한국은 1년을 앞서간다”는 제목을 달았다.
르포형식으로 한·미·일 3국의 현지 사정을 전한 기자는 서울 시내 PC방을 둘러보고는 “한국의 채팅 환경은, 기껏 종합통신망(ISDN)으로 느려터진 일본의 인터넷 환경에 비해 몇 발걸음 앞선 미래였다”고 썼다.
그는 “동화상이나 그래픽, 음성을 자유롭게 날려보내는 (한국 PC방의) 기술도 ISDN의 약 10배 속도라는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이 전국적으로 정비돼 있기 때문”이라며 “인터넷 비즈니스 발전에서 인프라가 먼저인가 수요가 먼저인가 하는 문제는 인프라 우선 전략에 매진한 한국에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기 생산업체인 미국 시스코시스템스의 최고경영자 존 체임버스가 지난 7월 “항상 일본 뒤만 열심히 쫓아온 한국이 글로벌화 대응에서는 일본보다 한걸음 앞섰다”고 지적한 말도 일본 언론들은 크게 다뤘다.
<닛케이산업신문>은 체임버스 사장의 국가별 IT수준 촌평을 실었으며,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최근 ‘IT와 일본경제’라는 연재 사설 첫회분에서 “일본은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유럽, 아시아 일부 국가에도 뒤처진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일부 국가’에는 싱가포르와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그리고 한국이 포함된다.
최근 일본에서 아시아 국가를 언급할 때 순서상의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아시아 국가들을 나열할 때 대부분 한국을 맨 먼저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2000년도판 경제백서> 등을 통해 각국 IT 기반 수준을 평가하면서 미국, 일본, 싱가포르, 홍콩, 대만순으로 서열을 정하고 그 다음에 한국과 말레이시아를 갖다 붙이던 몇개월 전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아시아 네트워크 연구소’ 관계자는 “아시아 인터넷 환경은 전체적으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국가별로 승자조와 패자조로 뚜렷하게 나뉘고 있다”고 말한다.
승자조에는 돌연 급성장을 시작한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 홍콩, 대만 등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직 뭐라 말하기 어렵고 일본은 이대로 가면 패자조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물론 일본의 ‘진짜 실력’이 아직 발휘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일본인들은 “한국을 보라”며 인터넷 비즈니스의 발전을 부추기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