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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만화 홍보 기획자 안성혜씨
[나는프로] 만화 홍보 기획자 안성혜씨
  • 김윤희/ 자유기고가
  • 승인 2001.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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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여, 박물관을 숨쉬게 하라
출판사 이름 호산(湖山)은 안희명씨의 고향인 강원 삼척의 풍광 좋은 호산리에서 따왔다.
안희명씨는 일간지의 해직기자 출신이었다.
신문사를 나와 그가 가장 유연하게 일을 벌일 수 있는 출판사업이 ‘만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주간만화는 100호 발행을 끝으로 막을 내리고, 이후 호산만화는 선거 홍보물 전문 제작회사가 되었다.
1991년 국회의원 홍보물 제작을 시작으로 사업을 벌였고, <만화 김대중-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 등이 대표작이다.


아버지가 만화 일을 시작하자, 당시 미국 유학중이던 안성혜씨가 아버지를 도울 일이 생겼다.
아버지가 요구하는 만화를 그곳에서 부지런히 찾아다닌 것이다.
안성혜씨가 만화의 가능성에 눈을 뜬 것은 그때부터다.
만화라는 문화사업이 당시 한국과 비교도 되지 않게 발달한 미국 땅에서 안씨는 특히 미국의 박물관 홍보에 만화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클라호마의 인디언 박물관, 도쿄의 에도 박물관, 영국의 런던타워 문화상품관 등에서는 만화가 곧 대표적인 문화사절 대접을 받고 있었다.


경영학 공부 접고 만화가의 길로
아버지의 별세로 귀국했을 때, 안씨는 순탄하게 공부하던 오클라호마 주립대에서의 MIS(경영정보시스템) 과정을 미련 없이 접고 호산만화를 기꺼이 떠안았다.
95년께 대학가에 무가지로 떠돌던 <카툰 TIMES>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심도 있는 만화 비평지쯤으로 생각하면 될까? 7~8개월간 발행하다 사라진 신문이지만, 국내 최초의 만화신문이었던 <카툰 타임즈>는 대학가의 눈길을 잡기에 충분했다.
그 <카툰 타임즈>가 바로 안성혜씨의 첫 작품이었다.
5명의 지독한 만화 마니아들이 만나 만들어낸 신문이었지만 결코 단순한 마니아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만화가 갖고 있던 문화적 자리에 비해서는 너무 앞서간 기획이었다.
“<카툰 타임즈>를 기억하는 이들조차도 내가 그거 만들었던 사람이다 하면, 누가 그런 웃기는 짓을 했을까 했다면서 웃더군요.” 하지만 미련은 없다.
애초부터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시작한 일도 아니었고, 더구나 <카툰 타임즈>를 발행하며 안성혜씨는 ‘만화’ 라는 매체를 심도 있게 알게 된 수확까지 건진 것이다.

96년 안성혜씨는 만화홍보 전문 제작기획사 호산기획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만화기획자로서의 길에 들어섰다.
미국에서부터 어렴풋이 꿈꿔오던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만화기획이란 아직도 생소한 직업이다.
미국의 경우 만화 관련 학과만 보아도 프로듀싱을 가르치는 곳이 더 많고, 일본은 대부분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만화 기획자들의 손에서 만화가 시작된다.
반면 한국 만화의 경우 기획자의 역할이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이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최근에는 부천 만화정보센터, 한겨레 문화센터 등에서 만화 기획자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생기기도 했지만, 아직 ‘만화 기획자’ 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안성혜씨는 이러한 한국의 출판만화 현실에서 거의 유일한 만화 기획자인 셈이다.
안성혜씨의 전문 분야는 홍보 제작물이다.
미국에서 처음 만화 홍보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어릴 때부터 미술과 유적에 유난히 관심이 많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도 박물관 등의 문화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등 대부분의 국내 국립박물관에서 안성혜씨가 기획한 만화 홍보물을 판매한다.
만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자료 중심으로 만들어져, 방학 때면 판매 부수가 부쩍 는다.
물론 안성혜씨의 당초 타깃도 아이들이었다.
우리나라의 박물관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씨가 만들어낸 박물관의 만화 홍보물은 어른들에게도 외면당하지 않는다.
안성혜씨가 홍보물로서의 만화에 접근하는 방법이 단순하게 그림과 말풍선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만화의 범위를 넓혀 시각언어로서 접근(비주얼 커뮤니케이션)하며, 그러다 보니 교육용 아동출판으로 여겨질만한 박물관 등의 만화 홍보책자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성인들에게까지 사랑을 받고 있다.
호산기획에서 펴내는 <만화로 보는 박물관 시리즈>는 당연히 절반 이상이 지방 박물관 책자인데, 간혹 서울에서는 구할 수 없는지 문의가 들어오기도 한다.
만화 홍보물의 기획 과정은 해당 기관의 학예사로부터의 충실한 자문을 받아 주제를 잡는 데서 시작한다.
그 다음 만화가를 선정해 일단 4~5쪽의 샘플 그림을 요구한다.
주제의 이해력, 개성적인 그림체 등에 초점을 두는데, 절반은 탈락하기 일쑤이다.
특히 만화의 그림체는 단순한 작가의 그림체에서 떠나 박물관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안성혜씨의 마음에 쏙 드는 그림을 찾기가 힘들다.
그러한 안씨의 욕심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진주박물관이다.
논개를 캐릭터화해 문화상품으로 개발해달라는 주문을 받은 후, 인형연구가 이승옥씨와 함께 한달 이상 캐릭터 개발에 매달리기도 했다.
이처럼 까다로운 작업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다.
김종범, 심재봉 등 우리만화연구회 소속 작가와 최민호, 임덕규를 비롯한 대학의 만화 강사 등 모두 25명의 젊은 만화가들과 든든한 연대와 인간적 관계를 돈독하게 쌓아 놓은 것이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아직은 미지의 영역, 인력수급이 절실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안성혜씨는 만화와 함께 각종 일러스트레이션, 박물관 자료를 포함한 사진 등을 함께 디자인한다.
활자보다 쉽고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는 모든 비주얼이 여기 동원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획자인 동시에 호산기획의 경영자이기도 한 안성혜씨는 시장을 확보하기에도 바쁘다.
최근에는 발로 뛰어다니지 않아도 일감이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그동안 안씨의 만화홍보물에 대한 기대 이상의 반응이 가져온 결과이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에게 반응이 생기며 자연스럽게 만화홍보물에 대한 긍정적 인식도 자리잡았다.
그러나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온라인으로 오프라인으로,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달리는 노고를 아끼지 말아야 했다.
만화 홍보가 무엇인지부터 그 필요성까지 차근차근 설명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 안성혜씨의 욕심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현재 출간된 책들의 언어만 달리 해도 수요자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이미 박물관을 찾는 외국인들 중 다수가 한국말로 된 안성혜씨 기획의 만화홍보물을 사들고 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공급자들이 거기까지 관심을 갖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대부분의 기획은 안성혜씨가 직접 하지만, 가끔씩 프리랜서로 기획자를 고용한다.
당장 함께 일할 기획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후배를 양성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찾는 것이다.
때문에 대학생 등 누구든 만화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격요건을 가리지 않는다.

만화 기획자가 되는 길

대중만화 기획자라면 대중의 입맛을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거기에 만화홍보물에 관심이 있다면 홍보대상에 대한 이해력까지 필요하다.
비주얼에 대한 애정과 섬세한 시각도 필수다.
몇년 전부터 대학에 만화 관련학과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긴 했지만 기획자를 양성할 수 있는 커리큘럼은 국내에 거의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유일한 과정은 부천 만화정보센터 정도이다.
이 과정을 이수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같다.
그러나 안성혜씨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볼 줄 아는 창의적 마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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