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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전경련, 과거를 묻지 마세요?
[비즈니스] 전경련, 과거를 묻지 마세요?
  • 조준상/ <한겨레> 경제부
  • 승인 2001.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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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40돌 맞아 “경제성장 견인차” “총수 클럽” 평가 엇갈려 나이 마흔이면 ‘불혹’이라고들 한다.
중심이 꽉 잡혀 다른 사람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회장 김각중)가 벌써 그런 나이가 됐다.
지난 9월11일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것이다.
지금의 전경련은 애초 13명의 경제인이 만들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무역협회 등 다른 재계 단체들이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경단련처럼 한국 사용자단체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외자계 기업을 포함해 377개 주요 대기업 등 한국의 내로라는 440여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는 종합 경제단체로 성장했다.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9월11일 열린 전경련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할 만큼 전경련의 위상은 높아졌다.
실제로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과 전경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창립 첫해 외자도입 교섭단을 미국과 유럽에 파견한 이후 전경련은 민간 경제외교 활동과 경제정책 제안을 통해 정부와 함께 성장의 한축을 담당했다.
전경련이 설립을 제안했던 수출산업공단과 종합무역상사 등은 70년대와 80년대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과정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했다.
자동차공업의 메카로 자리잡은 울산지역에 울산공업지대를 만들자는 제안이나, 임해수출산업자유지역을 설립하자는 건의도 모두 전경련에서 나왔다.
초기 전경련을 이끌던, 그러나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종현 SK그룹 회장 등은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어느 정도 인정할 만큼 ‘기업가적 혁신’과 ‘창의성’을 발휘했던 게 사실이다.
“근대 산업화 과정을 주도하면서 고도성장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는 전경련의 자부심도 상당부분 여기에 바탕한다.
정부 규제완화 우산 속 성장 그럼에도 전경련에 대한 곱지 않은 눈길은 여전하다.
97년 IMF 사태를 맞은 뒤로는 더욱 싸늘해졌다.
‘재벌총수 클럽’이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IMF 사태를 낳은 장본인이 재벌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IMF 사태 이전에 재벌들이 경쟁적으로 벌인 과잉·중복 투자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한국 경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정당한 지적이기도 하다.
창립 40주년을 맞아 전경련은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경영, 소비자를 중시하는 경영, 노사가 신뢰하는 열린 경영,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경영을 실천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원천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입과 통제보다 시장원리가 우선되는 자유로운 경제환경 조성이 필요하다”며 총액출자 제한제도 등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규제가 많아 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니 이를 풀어달라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민간경제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서, 투자 위축의 원인이 ‘시장 침체’에 있다고 답한 사용자는 71%에 이른 반면, 정부 규제에 있다는 응답비율은 19%에 그쳤다.
출자총액 제한제도의 취지가 문어발 경영을 막는 차원에서 다른 회사 주식 취득만을 제한할 뿐 자기 사업에 대한 투자를 막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규투자 부진을 이 제도에서 찾는 것은 어색하다.
오히려 그동안 전경련에서 주장해왔듯, 산업적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부채비율 200%를 일률적으로 규제해온 정책이 투자 위축을 낳았다는 주장은 그나마 일관성을 갖는다.
실제로 93년 세계은행이 ‘동아시아의 기적’이란 보고서에서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의 동력은 수출이 아니라 투자에 있었다”고 지적한 점에 비춰 ‘글로벌 스탠더드’의 이름으로 강요된 부채비율 200% 규제는 지금까지도 학계의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잘못된 규제를 고치자는 차원이 아니라, 정부에 맞서기 위해 적절한 규제까지 없애자는 식의 무지막지한 주장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는 전경련 스스로에게도 자명하다.
금융개방화의 흐름 속에서 규제 공백이 낳은 외환위기가 그것이다.
단기 외화차입을 통해 장기 대출을 했던 종합금융회사들이 바로 전경련의 주류를 이루는 재벌들의 실질적인 통제 아래에 있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생생한 기억이다.
정부가 적절한 규제까지 방기하게 된 핵심 배경에 86~88년 3저호황을 거치며 전경련이 전면에 등장시킨 ‘규제완화’가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과 몇년새 전경련의 핵심을 이루는 재벌들의 입에서는 다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개발독재가 전경련과 재벌의 산파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전경련과 재벌은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국민의 강제저축과 주요 고비 때마다 국민 세금을 재원으로 한 온갖 채무경감 조처를 통해 재벌은 생명을 연장해왔다.
그동안 전경련은 이 과거를 인정하고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끊임없이 국민의 기억에서 지우고자 애써왔다.
IMF 사태 이후 자유기업주의를 내세워 강력한 소유권을 확립하고자 하는 전경련의 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부실경영을 책임지는 한 방법으로 제기된 ‘사재 출연’을 둘러싼 논쟁은 ‘한국에서 기업은 어떤 존재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대해 전경련과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산하단체였던 자유기업원 등은 “주식회사의 원리를 망각한 소유권 침해”라고 비난하기만 했다.
과연 이런 인식을 간직한 채 전경련이 총수클럽이란 과거의 오명을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인식으로 전경련이 노동자를 비롯한 일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경제 하려는 의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IMF 사태 이후 한국 경제는 선진국과의 간격은 더욱 벌어지고 중국을 비롯한 후발개도국과의 간격은 급속히 좁아지는, 즉 ‘너트 크래커’(호두까기)에 끼인 너트(호두)가 되는 현상을 더욱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의 어깨에는 훨씬 더 막중한 과제가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전경련은 스스로도 현 상황을 극복하고 우리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기 위해선 “국민과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다시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다.
불혹을 맞은 전경련의 꽉 잡힌 중심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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