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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LG, 일등 기업 ‘날갯짓’
[비즈니스] LG, 일등 기업 ‘날갯짓’
  • 이용인 기자
  • 승인 2001.09.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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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 “전자부문 중심 미래 성장산업 육성” 공격경영 대내외 천명 LG그룹이 달라지고 있다.
모두 신발끈을 바짝 죄는 분위기다.
지난달 선보인 이미지 광고에서 피라미드에 선 모델들이 비장한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특명이 떨어졌다.
“일등사업을 만들라”는 구본무 회장의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구 회장 자신도 최근 들어 언론에 노출되는 횟수가 잦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구 회장에 대한 홍보를 꺼려오던 LG그룹이 적극적으로 구 회장의 행보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구본무 회장은 지난 8월30일과 31일 이틀 동안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한 ‘글로벌 CEO 전략회의’에서 “조직문화 혁신을 통해 지속적인 일등사업을 창출하라”고 당부했다.
구 회장의 당부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CEO들은 반드시 일등을 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이를 실현하려는 강한 ‘실천력’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것이다.
일등사업 창출에 성공한 ‘LG전자’와 ‘LG카드’ 등 이른바 ‘성공사례’를 발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말은 사례발표였지만, 사실은 그 자리에 참석한 다른 CEO들에게 “1등을 탈환하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한 셈이었다.
구본무 회장은 열하루 뒤인 9월11일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이번에는 그룹 임원들까지 모두 모인 ‘임원세미나’ 자리에서였다.
그는 “(CEO와 임원들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일등 LG를 만들어나갈 것”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 그는 각 계열사 CEO와 임원들이 앞장서서 ‘조직문화 혁신’과 ‘실행력 제고’ 방안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일등 LG’를 위해 공격적 경영을 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디지털 디스플레이·차세대 이통 주력 구 회장의 발언이 뭐 그리 특별하냐고 얘기할 수도 있다.
어찌보면 기업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그룹 회장이 ‘일등사업’을 만들라고 얘기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계열사 사장들을 채찍질하고 다독거리는 것은 그룹 회장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몫이다.
LG를 잘 아는 사람들은 최근 구 회장의 잇단 발언을 상당히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본무 회장이 공개적으로 공격적 경영을 선언한 것은 IMF 사태 이후 처음”이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최근 행보는 구 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 그룹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안팎으로 발표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사실 LG그룹은 삼성에 비해 계열사간 유기적 관계가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그리고 이건희 회장을 중심으로 결집력이 강하다.
이에 비해 LG는 계열사의 자율경영을 중시하는 풍토였다.
소탈하고 정직하다고 평가받는 구 회장 스스로도 다른 그룹 오너에 비해 계열사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게다가 LG의 구조조정본부가 이전의 그룹 기획조정실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직 성격상 그룹 총괄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본무 회장이 각기 따로 움직이는 사업부문들을 통합해 강력하게 이끌겠다고 나선 것이다.
구본무 회장은 1995년 2월 회장에 취임한 직후 공격경영의 기치를 내건 적이 있긴 했다.
안으로는 보수적 기업문화를 벗기 위해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밖으로는 PCS 사업 진출, 미국 제니스 인수 등을 추진하며 강한 의욕을 보인 것이다.
LG는 PCS 사업권을 따낸 뒤 ‘종합통신서비스 사업자’를 꿈꾸며 지난해에는 데이콤을 인수했고, 하나로통신의 최대주주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구 회장의 공격경영은 기대한 만큼 성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황금알을 낳을 것으로 보였던 PCS 사업은 생각만큼 시장점유율을 올리지 못하고 뒤로 처졌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LG텔레콤이 제3세대이동통신(IMT-2000) 사업권 획득에 실패한 뒤로 LG그룹은 깊은 침묵에 빠졌다.
창업주가 키운 전자와 화학 이외에 종합통신서비스 부문에 전력을 기울이며 의욕을 불태우던 구 회장은 장고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보통신부가 지난 8월25일 동기식 IMT-2000 사업자로 LG텔레콤 컨소시엄을 선정하면서 LG그룹의 발걸음은 비교적 가벼워진 편이다.
짧게는 8개월, 길게는 2년여를 넘게 괴롭혀온 통신서비스 사업 진출 문제가 일단락됐기 때문이다.
구 회장의 자신감 넘치는 최근 행보도 성가셨던 통신서비스 문제 해결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LG그룹은 앞으로 전자부문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약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9월6일 전자부문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기술담당임원(CTO), 사업부장, 연구소장 등 50명이 ‘전자부문 사업기술 전략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LG는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차세대 이동통신’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디지털TV, PDP(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 이동통신 단말기와 시스템 등이 ‘일등LG’의 주력군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LG가 가장 신경쓰는 부문은 연구개발(R&D)이라고 할 수 있다.
LG는 올해도 전자부문 연구개발에 애초 계획보다 2천억원이 늘어난 1조4천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내년에는 이보다 22%나 늘어난 1조7천억원을 투자한다는 게 이번 사장단 회의의 결론이었다.
게다가 앞으로 전체 임원 가운데 현재 15% 수준인 순수 연구개발 전담 임원 비중을 2005년까지 30%로 늘린다는 계획도 세웠다.
연구개발 우수 인력들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구본무 회장의 구상과도 일치한다.
구 회장도 9월11일 열린 임원세미나에서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아까지 말라”고 강조했다.
경쟁력의 핵심은 기술이고, 최고의 기술 없이는 일등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최근 국내외 경영여건으로 볼 때 기술에서 돌파구와 승부를 걸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앞서 제시한 ‘일등사업’이 커다란 전략적 폭표라면, 연구개발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인 셈이다.
내년 연구개발에 1조7천억원 투자 업계 관계자들도 LG의 이러한 변신 노력에 주목하고 있다.
사실 첨단부문에서 LG와 삼성의 사업영역은 거의 다르지 않다.
게다가 PDP처럼 LG가 먼저 시작해 앞서나가는 부문도 꽤 있다.
차이점이라면 삼성이 반도체를 하고 있다는 게 거의 유일한 편이다.
그럼에도 삼성을 첨단회사(테크 컴퍼니)로 인식하는 사람은 많아도 LG를 ‘테크 컴퍼니’로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는 결국 마케팅과 인지도 약화로 연결되고 있다.
업체의 한 관계자는 “LG가 연구개발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풀이한다.
LG의 잇단 일등선언, 그리고 구본무 회장의 적극적 행보는 확실히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LG의 이런 노력이 실제로 ‘도약’으로 연결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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