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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프로다] “영화처럼 살고 싶다”
[나는 프로다] “영화처럼 살고 싶다”
  • 한정희
  • 승인 2001.0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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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가란 말이야! 너 만나면서부터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눈물을 머금고 연인을 향해 내지르는 이 절규는 요즘 한창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린다.
마치 영화의 한장면 같은 이 CF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장면과 CF답지 않은 형식 때문이다.


영화나 CF, 뮤직비디오, 게임 등을 구성하는 영상은 단순히 보여지는 화면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하나의 영상에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관성의 틀을 깨버릴 땐 더욱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의 감성을 깨우는 것이다.
영상디자이너 김희동(28)씨는 이 때문에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철학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사회 깊숙이 녹아들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상디자인의 소재는 모든 사물 “저기 화면에서 빙빙 돌아가는 게 뭔지 아세요?” 김씨가 속한 회사 모션팩토리를 알리는 시디롬 타이틀이다.
뭔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영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 모양이 정확하진 않지만 마치 비행물체 같은 느낌이다.
“마우스예요.” 김씨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정말 마우스가 틀림없다.
“어느날 갑자기 마우스 끈을 잡고 흔들다가 눈앞에 바로 두고 빙글빙글 돌려봤죠. 뭔가 신선한 영상이 나올 거 같더라고요.” 그는 그 즉시 카메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우스를 촬영했다.
공상과학 같으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는 그렇게 해서 연출됐다.
“중요한 건 물건을 보는 시각이에요.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영상으로 나타낼 수 있죠.” 그는 주위의 어떠한 물건도 흘려보지 않는다.
그에게 모든 사물과 시야, 빛과 색깔은 영상디자인의 멋진 소재인 것이다.
그가 말하는 영상디자인은 컨셉을 도출해서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을 가리킨다.
단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도 작품의 기획단계부터 마무리까지 같이 참여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영화감독들이나 피디들은 자신의 작품에서 어떤 영상을 원할 때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그냥 전달하고 ‘그려줘’ 합니다.
예쁘기는 하겠죠. 하지만 그래서는 원하는 그림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영상디자이너가 기획하는 과정에 같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지금까지 관행을 보면 영상디자이너는 감독이나 디렉터가 컨셉을 주면 그 한도 내에서 기능적인 일을 위주로 해왔다.
그렇게 해서는 상상력과 창조력을 맘껏 발산하기 어렵다.
“외국에서는 전문 영상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영역을 인정받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파트너라기보다는 하청업 같은 위치에 있죠.” 그는 영상디자인을 독립된 분야로 키워가고 싶다.
그가 모션팩토리라는 회사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모션팩토리는 영상디자인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소화한다.
영화 타이틀, CF, 뮤직비디오, 게임 타이틀 등 영상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은 다 모션팩토리의 타깃이 된다.
김씨는 중학교 때 일주일에 4~5일을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광이었다.
그후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전공은 디자인을 택했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디자인은 현실에 있는데 학교는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던 3학년 때였다.
하루는 담당교수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HTML로만 만들어오라는 숙제를 냈다.
마침 플래시가 막 나오고 있었다.
그는 플래시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교수에게 플래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교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한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반드시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그는 플래시 책을 사서 3일을 꼬박 매달렸다.
결국 플래시로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점수는 C였다.
“그때 생각했죠. 사회의 룰을 따라야만 인정받는 틀에서 벗어나겠다고요. 독자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걸 만들겠다고요.” 그는 3학년부터 영상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3학년부터 영화동아리를 만들어 제작과정에 직접 참여했다.
“당시에 통신을 많이 이용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에틱 www.attik.com이나 토마토 www.tomato.co.uk 같은 외국의 영상디자인 회사를 구경했죠. 그때 내가 갈 길은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그때부터 벤치마킹에 나섰다.
외국의 유명한 영상디자인 회사의 포맷을 연구하고 실험작품을 만들었다.
만든 것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반응을 살펴봤다.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먼저 반응이 왔어요. 4학년 때였는데요. 작품을 보고는 외국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까지 왔죠. 그리고나서부터 작품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는 부랴부랴 사업자등록증을 냈다.
모션팩토리는 99년 그렇게 만들어졌다.
뜻을 같이한 후배 2명과 함께 간판을 걸었다.
초기엔 돈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이 일하자는 업체들이 줄을 잇고 있다.
큰 기업들을 제치고 올해 개봉될 장선우 감독의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타이틀 제작도 따냈다.
그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좋아한다.
쓰레기 같은 소재로도 좋은 영화를 만든 천재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도 영화감독을 꿈꾼다.
하지만 그가 진짜 바라는 건 “영화 주인공처럼 사는 것”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일까. 그런데 그는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이미 그는 충분히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고 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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