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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ADSL 핵폭발 열도 강타
[특집] ADSL 핵폭발 열도 강타
  • 도쿄=글 이경숙 기자
  • 승인 2001.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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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가 경쟁으로 월 50% 고속성장… ISDN·케이블망 업체도 덩달아 신바람
다키모토 다이스케(28)는 9월을 손꼽아 기다렸다.
야후BB 서비스가 시작되는 달이기 때문이다.
6월에 가입을 신청한 뒤 석달이나 지났다.
애초 8월에 시작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서비스 개시가 한달이나 미뤄졌다.
본 서비스가 시작되었다지만 신청자가 30만명이나 밀려 있어 언제 차례가 올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다키모토는 계속 기다린다.
왜? 싸니까.

2001년 9월, 지금 일본은 브로드밴드(초고속통신) 전국(戰國)시대다.
경쟁에 불을 댕긴 건 야후BB의 초저가 ADSL(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 서비스. 야후BB는 6월에 일본 최초의 ADSL 업체인 도쿄메탈릭을 인수하면서 기존 요금의 절반 수준인 2280엔짜리 서비스를 내놨다.
이 불길에 일본전신전화(NTT), 이액세스 등 ADSL 망사업자들과 소니의 소넷, 빅글로브, 앳니프티 같은 인터넷서비스제공업자(ISP)들이 뛰어들어 차례로 요금을 인하했다.
9월 현재 ADSL의 한달 사용료는 평균 3천엔대로 낮아졌다.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ADSL 시장은 폭발했다.
지난해말 1만7천세대에 그쳤던 가입자 수는 3월 8만, 5월 20만으로 급증하더니 7월엔 40만세대로 늘어났다.
월간 50%에 가까운 성장세다.


이것은 일본의 유명 조사기관이나 인터넷 업체들조차 예견하지 못한 현상이다.
지난해만 해도 일본 인터넷 사업자들은 NTT가 종합정보통신망(ISDN)을 보급한 뒤 ADSL을 거치지 않고 가정과 사무실을 구리선 없이 완전히 광케이블로만 연결하는 FTTH(Fiber to the Home)로 곧바로 이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일본에서 초고속통신 보급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노무라종합연구소는 ADSL 가입자 수가 2001년 말까지 31만여세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FTTH·FWA 가세, 경쟁구도 심화 이 예측은 7월에 이미 깨지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전망치를 수정하느라 바쁘다.
다이와증권 IT 담당 애널리스트 하세베 준은 내년 3월이면 ADSL 가입자가 150만~200만세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본다.
언뜻 보기에 일본 초고속통신 붐은 1998년 한국 상황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경쟁구도는 훨씬 더 복잡하다.
98년 한국은 빠르고 값싼 케이블망과 ADSL이 ISDN을 몰아내는 형국이었다.
FTTH 서비스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에 비해 2001년 일본에는 ISDN, ADSL, 케이블망은 물론 FWA(fixed wireless access), FTTH까지 서비스하고 있다.
이들은 ‘래스트 1마일’(광통신 기간망에서 이용자까지 거리)을 차지하기 위한 혈전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ADSL이 초고속통신 시장을 지배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ADSL 업체인 이액세스의 오바타 오시히로 이사는 적어도 2005년까지는 ADSL이 대세라고 본다.
“ADSL이 음성 통신에서 데이터 통신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서비스이긴 합니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커지지 않으면 소비자는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지 않습니다.
” ADSL에서 볼 수 없을 정도의 대용량 콘텐츠 서비스가 많아져야 소비자가 FTTH 같은 서비스에 눈을 돌린다는 것이다.
유선브로드밴드 후지모토 이사도 그러한 시장전망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2003년에서 2005년쯤이면 ADSL 시장이 성숙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래서 그는 2003년 뒤부터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ADSL이나 케이블망 사업자들이 5년 뒤 우리가 들어갈 시장을 넓혀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시장이 무르익는 데까지는 변수가 많다.
우선 ADSL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ADSL은 일본 전역에 거미줄처럼 깔린 ISDN, FTTH 망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동일 규격의 ADSL 모뎀을 사용하고 있는 한국이나 미국과는 다르다.
여러 규격의 모뎀이 필요하다.
벌써부터 일본 기업들은 ISDN, FTTH에 간섭을 받지 않는 모뎀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장성숙 때까진 아직 변수 많아 초고속인터넷 사용 욕구를 가진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구 고령화 때문이다.
구조조정 대상인 50대들은 컴퓨터나 영어 사용에 미숙하다.
결국 젊은 층에서 인터넷 붐을 일으켜줘야 하는 데 아직 이들은 초고속인터넷의 맛에 눈뜨지 못했다.
이들한테 초고속인터넷은 있으면 편리한 것이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도쿄의 한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30대 초반의 일본인은 왜 집에까지 ADSL을 깔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뉴스는 휴대전화로 찾고 게임은 비디오 게임기로 하면 되잖아요. 영화는 비디오로 보고요.” 그는 한국인들이 왜 ‘스타크래프트’와 사이버 트레이딩과 ‘오양 비디오’에 매료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일본 초고속통신 붐은 ADSL 사업자들의 초저가 경쟁으로 첫장을 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싼 가격만으로 경쟁에서 끝까지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ADSL 시장을 성숙시키고 FTTH 붐으로까지 이어가려면 한국이 그랬듯 또 한번의 폭발이 필요하다.
킬러 콘텐츠, 킬러 서비스의 출현 말이다.
일본의 초고속통신 업체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인터뷰|하세베 준/다이와증권 애널리스트
NTT 분할이 촉발한 인터넷전국시대

난데없는 DSL(디지털가입자망) 바람에 일본 열도가 들썩인다.
다른 나라들이 온통 초고속통신 열병에 달떴을 때도 저 홀로 무선인터넷 최강 국가로 입지를 다져온 일본에 무슨 변화가 생긴 걸까. 다이와증권 IT 담당 애널리스트 하세베 준은 첫번째 요인으로 NTT 분할을 꼽는다.
일본 정부는 지난 6월 유선전화를 맡고 있는 NTT이스트, NTT웨스트를 비롯해 장거리전화 사업의 NTT커뮤니케이션, 무선통신 사업의 NTT도코모 등 NTT그룹 관계사들을 서로 완전히 분할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정보기술 분야에서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이 표면적 이유였다.
이것은 사실상 NTT가 독점하고 있는 통신회선을 다른 경쟁자들한테 값싸게 개방하라는 압력이나 다름 없다.
지난해 10월 일본 우정성은 NTT에 “경쟁업체에 회선을 개방하든가, 싼 가격으로 제공하라”고 권고한 적이 있다.
그룹 분할론은 NTT그룹 안에 경쟁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하세베는 NTT가 변화의 기로에 서있다고 설명한다.
“NTT 계열사들은 이제 제각기 새로운 수입원을 개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주요 수입원인 음성전화 시장은 더이상 클 여지가 없고, 통신사업의 새로운 동력은 데이터 전송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외부경쟁자들은 NTT의 입지를 바짝 조여왔다.
NTT가 ISDN과 FTTH를 고집하고 있는 동안 도쿄메탈리크, 이액세스 같은 신생 ADSL 기업들이 초고속통신 시장을 선점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설치하면 교체가 쉽지 않은 특성 때문에 초고속통신 시장 선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NTT는 긴장했다.
NTT이스트, NTT웨스트는 지난해 12월 광대역 FTTH와 DSL 서비스를 동시에 선보였다.
일본 최대의 통신회선 보유자인 NTT가 DSL 시장에 나서자마자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지난해 1만7천세대에 그쳤던 ADSL 시장은 한달에 10만여세대씩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세베는 일본 초고속통신 붐의 계기를 세가지로 정리한다.
2005년까지 초고속통신 사용자를 4천만명까지 늘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e재팬’ 정책, NTT의 DSL 시장 참여, 야후BB 등 신규사업자의 진출이 그것이다.
이 세가지 열쇠가 일본 초고속인터넷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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