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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신 군웅 할거, 전국시대 돌입
1. 통신 군웅 할거, 전국시대 돌입
  • 도쿄=글 이경숙 기자
  • 승인 2001.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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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T에 KDDI·야후BB·이액세스 등 군소업체 다양한 전략으로 도전장 “오다 노부나가는 적이면 가서 죽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적을 움직이게 한 뒤 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적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칩니다.
결국 천하를 얻은 건 이에야스였죠.” 이액세스 오바타 요시히로 이사는 일본의 초고속통신 시장 상황을 에도막부 이전의 전국(戰國)시대에 비유한다.
독점력을 무기로 시장을 휘두르는 NTT를 마치 오다 노부나가의 카리스마에 비교하는 듯 들렸다.
“글쎄요. 그보다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의 중간에 가까울 것 같네요.” 지난해부터 일본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쓰면서 NTT의 독점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그의 비유대로 초고속통신 시장은 군웅들의 할거로 전국시대 못잖게 치열하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6월 야후BB가 “8월1일부터 기존의 절반 가격 서비스, 기존보다 다섯배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선전포고한 뒤 일본 통신시장은 대변화를 겪었다.
소넷은 7월말 2980엔짜리 서비스를 발표했다.
빅글로브는 9월말까지 가입한 사람에 한해 야후BB와 같은 금액으로 서비스하겠다고 선언했다.
ADSL망 제공업자인 이액세스와 아카네트웍스는 인프라 렌탈 요금은 대폭 인하했다.
속도경쟁도 가열됐다.
야후BB가 8Mbps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선포한 뒤 이액세스와 아카네트웍스도 가을부터 8Mbps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맞섰다.
통신시장의 ‘노부나가’ NTT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NTT는 광통신(FTTH)과 ADSL 서비스를 둘다 시작하면서 양면작전에 나섰다.
계속 FTTH 노선만 고집했다가는 시장을 잃기 쉽다고 판단한 것이다.
10월부터는 현재 3800엔대인 ADSL 요금을 3100엔으로 인하할 예정이다.
NTT는 시장이 성숙하기 전에 저가격, 고품질로 경쟁자들을 압도하려 하고 있다.
첫번째 희생자가 일본 ADSL 시장의 개척자인 도쿄메탈릭이다.
NTT의 공격에도 선방하던 도쿄메탈릭은 추가 펀딩에 실패하면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투자자들이 신흥세력인 도쿄메탈릭을 외면한 것이다.
일본 정부 규제완화 나서 이제 시장의 관심은 인터넷 콘텐츠 서비스의 최강자인 야후를 앞세우고 초고속통신 사업에 진출한 야후BB에 쏠리고 있다.
쓰러져가는 도쿄메탈릭을 인수하고 NTT에 도전장을 내민 손정의 사장의 야후BB가 과연 시장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일단 일본 ADSL 서비스업은 한국과 달리 진입하기가 쉽다.
한국의 ADSL 사업자는 초고속망 접속과 인터넷서비스제공(ISP)을 함께 하지만 일본은 분리되어 있다.
한국과 비슷한 모델은 야후BB와 도쿄메탈릭 정도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NTT, KDDI, 이액세스, 아카네트웍스 같은 ADSL 망업자와 소넷, 빅글로브, 니프티 같은 ISP 업자로 분업돼 있다.
현재 사업을 하고 있는 ISP만 해도 20여개가 넘는다.
야후BB는 수많은 ADSL 망업자와 ISP 업자 양쪽을 상대로 경쟁해야 한다.
물론 야후의 강점을 무시할 수 없다.
야후BB 가입자가 늘면 야후를 보는 인터넷 이용자도 는다.
이와 함께 광고비용 등 야후 사이트의 가치도 증가한다.
또 야후BB는 야후의 콘텐츠 사업에서 경쟁에 드는 비용을 조달받을 수 있다.
다이와증권 IT담당 애널리스트 모리유키 신지는 “야후BB가 30만명이나 되는 가입자들을 어떻게 잘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8월에 시작한다던 야후BB의 본서비스는 9월에 들어서야 시작됐지만, 설치공사 인원의 한계 탓에 아직도 서비스를 받고 있는 가입자는 많지 않다.
다른 도전자들은 서로 손잡고 상당히 신중한 전략을 펴고 있다.
ADSL 망사업자인 이액세스는 소넷, 빅글로브, 니프티 같은 주요 ISP와 손잡고 인프라 가격을 낮췄다.
야후BB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NTT보다는 대폭 싼 가격대다.
니프티 서비스만 비교해도 NTT의 플레츠(Flet's) ASDL를 사용할 땐 ISP 요금 2000엔과 NTT망 사용료 3800엔을 포함해 5800엔인 데 비해, 이액세스망을 사용할 땐 모두 합해 2980엔만 내면 된다.
아카네트웍스도 소넷, 니프티와 손잡고 2980엔짜리 특가 상품을 내놨다.
모두 다 9월30일 가입자에 한정된 특별가로, NTT나 야후BB에 대응해 가입자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액세스 에릭 간 이사는 NTT의 브랜드 파워를 의식해 브랜드 파워가 높은 ISP와 제휴했다고 말한다.
이액세스는 99년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후지은행 등이 투자해 만든 벤처회사다.
이 회사의 요시히로 오바타 이사는 안정적인 성장을 강조한다.
그는 설비투자의 균형을 잡는 데 주력한다.
“세가지를 봅니다.
투자의 최적화, 경비의 최적화, 시간의 최적화. 이 세가지의 균형을 잡기 위해 3개월 이후를 바라보는 투자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가경쟁 장본인 야후BB에 관심 집중 ADSL 이외의 초고속통신망 사업자들은 멀찌감치서 관망하는 자세다.
ADSL로 초고속통신에 맛을 들인 소비자들이 케이블망이나 FTTH 서비스로 이동해올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FTTH망을 보유한 유선브로드밴드의 후지모토 아츠시 이사는 “야후BB 같은 회사는 우리로선 고마운 존재”라고 말한다.
“시장을 키우기 위해선 시장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유선브로드밴드는 일본 면적의 6.5%에 해당하는 인구 30만명 이상의 도시와 현에 진출해 일본 인구의 45%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곳곳에서 도전자가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지금도 일본 통신시장은 ‘노부나가’ 시대다.
NTT는 여전히 ADSL, FTTH 등 초고속통신 시장에서 점유율 50% 이상의 절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KDDI 같은 중진세력이나 이액세스, 야후BB 같은 신흥세력 중 누가 ‘히데요시’, ‘이에야스’가 될 재목일까. 아직은 경기불황, 정부정책 변화 등 변수가 너무 많다.
심지어 시장논리에 맞춰 변신을 모색하고 있는 NTT가 새로운 영웅으로 거듭날 가능성도 있다.
새 영웅의 윤곽은 초저가 정책의 포연이 사그라들고 나면 차츰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인터뷰 | 오바타 요시히로/ 이액세스 이사
일본에선 브랜드가 경쟁력

일본은 흔히 ‘1.5’의 사회라고 불린다.
한명의 최강자가 ‘1’을 차지하고 나면 나머지 ‘0.5’를 두고 수많은 경쟁자가 쟁탈전을 벌인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최강자의 힘을 존중한다.
초고속통신 시장에서 NTT는 제1강자다.
통신회선을 독점하고 있는 NTT는 지난해 12월 ADSL 사업에 뛰어들자마자 신규시장을 독식해 올 5월부턴 ADSL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소비자한테 NTT의 브랜드 파워는 그만큼 강력하다.
이액세스의 최고기술경영자(CTO)인 오바타 요시히로 이사는 “공공성이 큰 사업이라 브랜드 파워가 더 중요한 데 NTT의 힘이 커서 힘들다”고 말한다.
“미국은 사람도, 회사도, 자금도 움직임이 빨라서 브랜드 파워의 유동성이 큽니다.
그래서 신생 기업이 브랜드 파워를 높이기가 수월하죠. 하지만 일본은 그런 움직임이 늦습니다.
브랜드 파워를 얻기도 어렵고요.” 일본에서 브랜드 파워를 얻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방법은 실적을 올리는 것이다.
“브랜드가 힘을 얻으려면 여러가지 형태의 실적 달성이 있어야 합니다.
또 인프라면에서도, 그밖의 사업적 측면에서도 실적을 잘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 그는 결국 시장을 결정하는 건 넘버원의 회사라고 보고 있다.
초고속통신 산업에서 최강자가 되려면 인터넷기간망, ADSL 접속, 인터넷서비스까지 관련비즈니스 전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여력을 가진 곳은 지금은 NTT밖에 없다.
“이미지의 리더가 곧 산업의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 그의 말은 ADSL 선두업체의 이미지를 얻고도 NTT의 추격에 의해 몰락한 도쿄메탈릭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이미지보다 실적’. 이것이 이액세스의 브랜딩 전략이다.
인터뷰|후지모토 아츠시/ 유선브로드밴드 이사
인터넷 천국 최대 걸림돌은 저작권

38년 역사, 136만명 가입자의 케이블방송사를 보유한 유선 그룹조차 콘텐츠 확보는 골칫거리다.
유선브로드밴드 후지모토 아츠시 이사는 저작권 문제가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정도라면서 손을 내젓는다.
“일본과 한국의 저작권 문제는 상당히 달라요. 한국 기업이 독자적으로 일본에 와서 일본 콘텐츠를 파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될 거예요.” 영화나 TV 드라마에는 저작권 관계를 명확히 나타내는 계약서가 없다.
거의 다 계약 없이 인간관계에 의해 지켜진다.
그런데 통신은 다르다.
반드시 저작자한테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인터넷에 영상물 하나를 올리려면 감독, 음악감독, 조명감독, 배우, 시나리오작가, 심지어 각종 협회의 중진들까지 30~40개의 허가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일본, 특히 영상 콘텐츠 업계는 철저한 인맥사회”라고 강조한다.
방송사처럼 오랜 인맥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기업은 인터넷 콘텐츠 사업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일본인들은 매출 대비 예상이익이 분명하지 않으면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는다.
그건 저작권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방송사들조차 자기 영상 콘텐츠를 인터넷에 올려놓기가 어렵다.
TV 방송물을 자유롭게 인터넷에 올리는 한국의 방송사들이 일본인의 시각에선 신기할 따름이다.
“저작권 문제는 둘째 치고, TV 광고주들한테는 항의받지 않나요? 인터넷은 TV의 경쟁매체 아닙니까?” 후지모토 이사는 한국의 콘텐츠 붐을 부러워하는 눈치다.
초고속통신을 깔아놔도 거기에 실어나를 콘텐츠가 없다는 고민이 도통 풀리지 않는 탓이다.
“한국의 인터넷은 TV방송물이나 영화 등 좋은 콘텐츠들이 넘쳐나면서 큰 수요를 일으켰습니다.
일본에서도 그게 가능하다면 초고속통신 사용자가 급증할 겁니다.
우리는 그때를 준비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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