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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와건강] 골프공은 날아다니는 흉기?
[골프와건강] 골프공은 날아다니는 흉기?
  • 오세오(오세오안과)
  • 승인 2001.04.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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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리는 재난은 피하고 스스로 초래한 재난은 피하지 말라.” <맹자>
골프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장대한 스케일과 섬세한 플레이의 ‘절묘한 조화’라고 할 수 있다.
탁구처럼 세밀한 기술과 축구나 야구를 능가하는 선 굵은 플레이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가히 천혜(天惠)라고 할 만하다.
직접 골프를 치지 않더라도 갤러리로 경기를 참관만 해도 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평야처럼 넓은 필드에서 지름이 고작 4인치 정도인 구멍에 4cm가 조금 넘는 공을 작대기로 쳐서 집어넣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컬한 흥분을 전파시킨다.
방만에 가까운 자유와 숨을 멎게 할 정도의 집중력이 공존하는 골프는 사람들의 혼을 빼앗을 자격이 있다.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보기 드문 진풍경이 벌어졌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강속구 투수 랜디 존슨이 던진 공에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날아오르던 비둘기 한마리가 정통으로 맞아 죽은 것이다.
100년이 넘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이 비둘기 즉사 사건(?)은 이미 스포츠뉴스 시간에 보도돼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전 타자에게 몸쪽 공을 던져 설전이 오간 뒤 바로 다음 타석에서 일어난 일이라 랜디 존슨도 황망했으리라. 더욱 압권은 동료 투수인 김병현의 반응이었다.
그는 갑자기 ‘퍽’하는 소리가 나자 싸움이 붙은 줄 알고 덕아웃에서 뛰쳐나갈 채비를 했다고 한다.
스포츠경기를 하다보면 이처럼 게임의 흐름을 끊는 엉뚱한 사고가 종종 일어나곤 한다.
골프도 예외는 아니다.
골프는 특히 자연상태에 가까운 경기장(필드)에서 하는 게임이니만큼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고도 가끔 일어난다.
낙뢰를 맞는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필드에서 일어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거의 골퍼의 부주의 때문에 발생하는 안전사고다.
골프공에 맞는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공의 재질이 딱딱한데다 날아가는 속도가 최고 시속 210km로 현역 최고의 강속구 투수라는 랜디 존슨의 160km를 훨씬 웃돌아 총알에 맞는 것이나 진배없다.
임팩트할 때 클럽에서 공으로 전달되는 힘의 세기가 무려 1t이라고 하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스윙 연습을 하다가 아이언으로 뒷땅을 쳐 모래나 돌이 옆에 있는 사람의 눈에 맞게 되면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퍼터로 연습스윙을 하다가 그립이 미끄러져 클럽이 무시무시한 흉기로 돌변하기도 한다.
스윙을 하다가 옆 사람의 얼굴을 가격해 유혈이 낭자한 참사가 벌어지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이는 페어웨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상대방이 스윙을 할 때 앞으로 나아가면 안된다.
이런 실수는 흔히 초보 골퍼들이 저지르기 쉽다.
공은 둥글다.
이 말인즉슨 공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골프장에서 모자를 쓰는 것은 필수다.
골프의 메커니즘상 하체보다는 상체에 공을 맞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샷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앞사람의 위치를 확인한 뒤에 스윙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특히 나무로 둘러싸인 러프에서 공을 칠 때는 나무에 공이 맞지 않도록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어쨌든 선수는 플레이에 집중하면 이런 안전사고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골프경기를 구경한 죄밖에 없는 갤러리에게 엉뚱한 피해를 끼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힘차게 휘두른 공이 생크(Shank)가 나 큰 곡선을 그리며 페어웨이를 벗어나 갤러리쪽으로 급선회하면 참변이 일어날 수 있다.
생크가 나는 이유는 대부분 클럽 헤드의 각도가 나쁜 것이 원인이지만, 골퍼의 부주의도 한몫을 한다.
특히 바람이 등 뒤에서 불 때 방심하면 더욱 위험하다.
얼마 전 한 골프장에서 억대의 배상금을 물어야 할 사건이 터졌다.
풀스윙으로 드라이브샷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그 공이 앞에 있는 팀원을 향해 날아갔다.
골퍼는 다급한 나머지 “포어”(fore)라고 외쳤지만, 오히려 그게 더 큰 낭패를 불렀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얼굴을 돌린 팀원의 눈에 공이 정면으로 박힌 것이다.
팀원은 그 자리에서 실명하고 말았다고 한다.
골프는 흥미진진한 스포츠임에 분명하지만 자칫 방심하면 이처럼 대형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
특히 눈에 공이 맞으면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다.
골퍼나 갤러리나 아무쪼록 게임에 집중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안과전문의로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서바이벌게임을 할 때 쓰는 보안경을 착용하고 골프를 하는 것은 어떨까. 공에 맞아도 깨지지 않을 만큼 내구성이 강한 것으로 말이다.
미국에서는 보안경을 쓰지 않으면 라켓볼장에 출입할 수 없다고 하는데, 선글라스가 전투경찰의 헬멧에 부착되어 있는 얼굴보호대처럼 충격에 잘 견디는 소재로 만들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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