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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 헤지냐, 연·기금이냐
[머니] 헤지냐, 연·기금이냐
  • 이원재 연구기자
  • 승인 2001.01.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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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외국인 자금 대거 유입돼 주가 상승행진…구조조정이 가장 큰 변수 “외국인들의 광적(?)인 매수세에 주식시장이 끈 풀린 풍선처럼 떠밀려 올라가고 있다.
” 삼성증권 전상필 연구원은 1월26일 내놓은 일간시황 보고서에서 연초 서울 주식시장의 장세를 이렇게 요약했다.
그리고는 우려가 이어졌다.
“이 풍선이 어느 시점 어느 고도에서 터질 것인지….” 외국인 ‘바이 코리아’ 재시동 거나 외국인 투자가들의 ‘바이 코리아’ 행진이 다시 시작되려나. 연초부터 시작된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수세가 투자자들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다.
외국인들은 연초부터 1월26일까지 거래소에서 2조5천억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순매수했다.
코스닥시장에서도 순매수대금이 2500억원에 육박한다.
두 시장을 합쳐 사상 최대 순매수세를 보인 지난 한해 동안의 전체 순매수대금 13조여원의 5분의 1에 가까운 수치다.
99년의 1조5천억원대는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500선에서 힘없이 느물대던 종합주가지수는 순식간에 600선을, 50선이던 코스닥지수는 80선을 들락거린다.
지난 99년 말부터 물꼬가 터졌다가 지난해 10월부터 주춤거렸던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 행진이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투자자들의 기대 덕분이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외국인들이 언제까지 얼마나 사줄 것인지에 쏠린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주식투자를 머뭇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장세가 이어지려면 이들이 매수세를 이어가줘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관심은 1월26일 외국인들이 거래소에서 순매도세로 돌변하면서 무게를 더했다.
곧 ‘터져버릴 풍선’인지, 아니면 주식시장을 들고 올라갈 수 있는 초대형 비행선인지…. 최근 한국시장을 사들인 외국인 투자가들이 단기성 헤지펀드라면 주가가 일정한 수준만큼 올라 차익을 낼 수 있게 되면 바로 매도세로 바뀔 것이고, 그때 도리어 주가상승의 발목을 잡게 된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하는 뮤추얼펀드나 연·기금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이들은 단기차익을 노리기보다는 철저하게 펀더멘털 위주로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한다.
한번 매수로 입장을 정하면 장기간 매수세를 이어간다.
즉 종합주가지수가 단기간에 많이 올랐더라도, 주가가 조정에 들어갈 때마다 주식을 사들이면서 시장을 떠받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단타에서 장타로 증권가에서는 연초 외국인 투자자금의 성격을 논하면서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 논쟁이 불붙었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초저금리 상태인 일본 자금시장에서 엔화를 조달한 뒤 신흥시장에 투자해 단기간에 고수익을 올리는 단기 헤지펀드의 투자기법을 일컫는다.
엔화가 약세일 때는 고수익이 가능한 신흥국가 자본시장에 엔 캐리 트레이드성 매수세가 생기고, 반대로 엔화가 강세일 때는 매도세가 생긴다.
일부 분석가들은 연초 일부 초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가 연초의 엔화약세 국면을 이용해 한국시장에 몰려들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그것도 특히 낙폭과대 중소형주를 집중매수하는 현상이 벌어졌다는 얘기다.
이들의 주장은 이제 주가가 급히 올랐으므로 외국인들이 적당한 시기를 보아 매도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논리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하지만 1월 중순 이후 외국인들의 순매수세가 좀더 이어지면서 매수종목이 대형주·우량주로까지 번지자, 이런 우량종목의 매수까지 ‘치고 빠지기’식의 엔 캐리 트레이드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장기성 뮤추얼펀드 자금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미국 뮤추얼펀드의 움직임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미래에셋증권과 미국 투자정보 서비스 AMG에 따르면, 올 초부터 1월24일까지 미국의 이머징마켓 주식형펀드에는 5억200만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돼 총자산이 166억4200만달러가 됐다.
이머징마켓펀드는 한국을 포함한 신흥시장에 집중투자하는 뮤추얼펀드 자금인데, 2000년 한해 동안 2억5100만달러가 빠져나갔던 것과는 반대로 순유입세로 돌아서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투자하는 펀드들에도 올해 들어 1억3400만달러가 순유입돼 총자산 43억200만달러가 됐는데, 역시 2000년에 12억6700만달러가 빠져나갔던 순유출 추세가 반전되는 조짐이 보인다.
미국 뮤추얼펀드가 아시아 신흥시장에 투자할 실탄이 급격히 넉넉해지면서 가장 저평가된 한국시장으로 상당부분이 흘러들어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이번에 한국시장에 유입된 뮤추얼펀드 자금에는 초장기의 안정적 투자성격을 띤 미국 연기금이 위탁한 자금이 포함됐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4조원 가량의 운용규모로 미국 10위권에 드는 헤지펀드인 아팔루사펀드의 숀 조 펀드매니저는 <닷21>과의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라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헤지펀드라고 해도 그렇게 위험천만한 초단타매매를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연초에 미국계 헤지펀드는 한국시장을 거의 사지 않았다.
오히려 연금 위주의 장기적 자금으로 보인다.
” 그는 아팔루사펀드 미국 본사에서 아시아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도 연초에 미국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낸 ‘신흥시장보고서’에서 아시아·남미·동유럽지역 26개 신흥시장 가운데 한국의 투자추천 순위를 전달의 7위에서 4위로 끌어올려 맞장구를 쳤다.
살로먼스미스바니는 “아시아지역에 대한 비중확대와 남미지역에 대한 비중축소”를 추천하면서 “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가 낮은 금리와 높은 환율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는 조심스레 단기랠리 가능성까지 점친다.
외국인들의 투자가 단기에서 중장기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1월 둘쨋주를 기점으로 외국인의 매수세가 단기 위주 헤지펀드에서 중장기 중심의 뮤추얼펀드나 연기금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이는 1분기에 단기랠리가 지속될 수 있는 기본 여건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대체 어떤 변화가 생겼기에 외국인들이 매수로 방향을 튼 것일까? 역시 ‘너무 많이 떨어진 탓’이라는 게 분석가와 펀드매니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급락세가 이어지면서 주가가 바닥수준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ING베어링 서울지점 조사부 빌 헌세이커 상무는 “최소한 더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국제경제 움직임이나 수급상황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좋지 않지만, 주가는 그런 요소들을 모두 반영하고도 남을 만큼 많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팔루사펀드 숀 조 펀드매니저도 “절대적으로 보면 한국시장이 아시아에서 가장 저평가돼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연초에 산업은행을 통해 회사채 20조원어치를 인수하도록 하는 강공을 감행하면서 증시부양 의지를 밝힌 것도 ‘여전히 한국에서는 정책변수가 주가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믿는 외국인 투자가들의 투자심리 호전에 기여했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론 주가를 장기상승 추세로까지 이끌기에는 역부족이다.
‘너무 많이 떨어졌던’ 주가는 3주 만에 100포인트 이상 올라 ‘너무 많이 오른’ 게 아니냐는 걱정을 낳고 있다.
산업은행의 회사채 긴급인수는 중장기적으로 기업부실 심화라는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지적을 받는다.
외국인들의 투자가 계속 이어지려면 ‘또 다른 뒷심’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이제는 펀더멘털 지켜봐야” 메리츠증권 조익재 연구위원은 “지금 필요한 ‘뒷심’은 펀더멘털”이라고 말한다.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공감이나 정부의 유동성 공급이 단기적으로 외국인 자금을 불러들였다면, 기업 펀더멘털의 개선이 그 흐름을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반등기미가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국제 반도체값을 중요한 변수로 살펴보라고 충고한다.
아무래도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인은 무엇보다 고위험 고수익의 첨단기술주에 투자하는 것이고, 반도체값 상승은 한국시장의 대표주 삼성전자뿐 아니라 IT산업 전체에 대한 밝은 전망을 표현하는 지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최근 한국시장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자금의 주류가 단기성이 아닌 장기성 펀드라면 펀더멘털에 대한 강조는 더욱 중요해진다.
“외국인들은 이제 조금 사기 시작했을 뿐이다.
정말 덩치가 크고 장기투자하는 세력은 아직도 시기를 따져보고 있는 상태다.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완성을 통해 경기 회생가능성을 확인시켜줘야만 그들의 발걸음을 한국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 ING베어링 빌 헌세이커 상무의 말이다.
정부의 ‘주가 과잉관심증’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주식시장 활성화를 언급하더니, 매일 아침 주가를 직접 챙긴다는 얘기가 들린다. 여기에 금융감독위원장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이 위원장은 1월16일 기자간담회에서 “요즘 주가가 과열됐다고 하는데, 무슨 기준으로 과열됐다고 하는지 모르겠고 여전히 저평가돼 있으며 거품은 없다”고 말했다. 진념 재정경제부장관도 가는 곳마다 주가 얘기를 꺼낸다고 한다. 최근 주가 상승세를 유동성장세도 실적장세도 아닌 ‘정책장세’라고 일컫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증시에서는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고맙지만, 비정상적 개입은 시장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반응이다. 특히 경력이 오랜 증권전문가들은 주가를 부양하려다 결국 패가망신한 과거 정부의 무리수들을 떠올리며 걱정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분석경력만 10년이 넘는 한 투자전략가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효과도 없을 뿐더러 경제에 부담만 더하게 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입증된 엄연한 사실”이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과거의 무리수’들은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먼저 89년의 이른바 ‘증시 12·12 사태’. 전두환 정권의 집권 쿠데타가 벌어진 뒤 꼭 9년 만에 일어난 ‘주식시장 쿠데타’였다는 뜻이다. 이날 재무부는 “폭락증시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돈을 찍어내 주가를 올리겠다는 이 발표의 약발은 꼭 이틀간 이어졌다. 이틀 연속 주가가 오르는가 했더니 사흘째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약발이 안 듣는다 싶어지니 무리수는 점점 정도를 더해갔다. 이듬해에는 이른바 ‘순매수 우위의 원칙’이라는 ‘폭력적’ 증시부양책이 등장한다. 정부가 나서서 금융기관들이 하루 기준으로 주식을 순매도하지 못하도록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당시 펀드매니저들은 이 방침 때문에 정상적으로 매매하다가도 장이 끝나기 30분 전이 되면 하루 매매금액을 순매수로 맞춰놓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상장기업들로부터 출연을 받아서 증시안정기금도 만들었지만, 결국 제대로 해산시키지 못하고 출연기업들에게 부실을 떠안겼다. 당시에 증시부양책의 부담을 떠안느라 생긴 각종 부실이 IMF 이후 금융시장안정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등장한 투신사들의 수조원대 부실로까지 자라났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금융선진국이며 주식투자자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는 관료들이 주가에 대한 관심은 무척 높지만, 직접 주가를 언급하는 일은 드물다고 한다. 시장에 개입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탓이다. 오직 한사람, 금융정책의 열쇠를 쥐고 있어 시장에 가장 가까이 있는 연방준비제도위원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만이 때때로 주가를 언급했다. 한국 관료들과는 반대로 ‘과열’을 걱정하는 발언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미국 증시는 한차례씩 충격을 입었다. 그가 금리인상 또는 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을 할 때에도 주가는 여기에 맞춰 출렁거렸다. 그에게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 정책수단이 있고, 발언에 일관성이 있다고 시장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근영 위원장이 ‘주가 저평가론’을 피력한 바로 다음날인 1월17일, 종합주가지수와 코스닥지수는 오랜만에 상승세를 접고 조정을 받았다. 한국시장에서 금감위원장의 말발이 먹혀들지 않는 이유는 그에게 주어진 정책수단이 약해서일까, 아니면 그의 말이 믿겨지지 않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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