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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위기의 한컴, 비상구를 찾아라
[비즈니스] 위기의 한컴, 비상구를 찾아라
  • 김윤지 기자
  • 승인 2001.09.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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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적자 100억원 기록… 새 버전 출시 계기로 살길 찾기 부산 한글과컴퓨터 전하진(42) 사장은 늘 보이던 자신만만한 모습과는 달리 조금 지친 듯한 표정이었다.
풀어야 할 문제를 이제는 풀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조금씩 내비치기도 했다.
전 사장은 “‘한컴의 위기’라는 말조차 이젠 식상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컴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이미 얘기해왔다.
올해 상반기 실적은 한컴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컴의 상반기 매출액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13.2% 늘어났지만 지분평가 손실이 78.1억원이나 발생해 결국 101억2천만원의 적자에 마이너스 77.2%의 순이익률을 기록했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에 힘입어 한글과 오피스 제품이 제법 팔리기는 했지만, 자본투자를 한 네띠앙, 하늘사랑, 한소프트네트 등이 실적을 올리지 못해 투자금액이 모두 손실로 잡혔기 때문이다.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예카사업을 접게 되면서 관련개발비 19억7천만원도 손실로 잡혔다.
한마디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 덕에 한글의 매출은 유지됐지만, 투자한 인터넷 사업들이 모두 실적부진에 빠지면서 부담이 돼버린 셈이다.
전하진 사장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몇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다.
TVG의 버룬 베리, 모니터컨설팅그룹의 폴 류, 김정태 부사장, 최승돈 상무이사, 김진 상무이사 그리고 한솔그룹 조동혁 부회장 등으로 새로운 이사회를 구성했다.
네띠앙을 이끌어오던 홍윤선 사장 대신 그 자신이 네띠앙을 직접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투자한 ‘가족사’들을 이젠 그냥 두고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워디안을 출시한 지 1년 만에 새 버전인 ‘한글2002’도 내놓았다.
한컴이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을까? 전 사장에게 한컴이 나아가는 길을 물었다.
-네띠앙 경영을 직접 맡게 된 배경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네띠앙은 이제 분명한 자기 색깔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홈페이지와 도메인을 제공하는 마이웹 서비스가 그런 성격의 대표적 서비스다.
마이웹 서비스는 자영업자, 소호 등에게 사이버 상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동대문의 밀리오레와 같은 형태다.
지난 7월엔 흑자를 볼 정도로 호응이 좋다.
네띠앙의 성격을 변화시킨다기보다는 좀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 직접 맡았다.
홍윤선 사장이 쉬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네띠앙을 이익 나는 구조로 만들어, 더는 한컴에 짐이 되지 않게 할 것이다.
-앞으로 한컴이 가고자 하는 장기적인 그림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한컴은 인터넷 기업’이라고 주장하다가 인터넷 기업의 전망이 전반적으로 급속히 악화하자 올해 초 ‘한컴은 소프트웨어 기업’이라고 번복해 이런 궁금증이 더 커졌다.
새로 출시하는 ‘한글2002’는 장기적인 그림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 =지난 10여년간에는 아날로그 정보를 디지털 정보로 바꾸는 게 워드프로세서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제 단순한 워드프로세서로는 필요한 기능들이 다 구비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워드프로세서 수준이 발전했다.
이젠 워드프로세서의 역할이 변해야 한다.
지식에 의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을 우리는 ‘지식강자’라고 정의한다.
이들이 힘을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 이를테면 문서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데이터베이스 관리, 커뮤니케이션 관리, 프리젠테이션, 홈페이지 관리 등에 필요한 모든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게 한컴이 가고자 하는 큰 방향이다.
‘지식강자를 위해 한글에서 인터넷으로’가 한컴의 새로운 슬로건이다.
한컴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맞다.
앞으로 2~3년 뒤 소프트웨어 기업이 어떤 모습일 것 같은가? 이제는 인터넷과 소프트웨어를 따로 생각할 수 없다.
이제까지 PC의 기본이 오피스 소프트웨어였다면, 인터넷이 중심이 된 세상에서 PC의 기본은 인터넷상에서 자유롭게 연동되는 툴들이다.
지난해까지는 이런 환경 변화를 강조하기 위해 조금 미약했던 인터넷을 강조했을 뿐이다.
소프트웨어 부분은 계속 끌고가는 것이니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산발적으로 사업을 했지만 이제는 모든 기능들을 하나로 정리할 것이다.
기존 소프트웨어들을 웹 환경에 맞춰 한꺼번에 제공하는 형태다.
네띠앙이 웹 환경에서 e메일과 홈페이지를 담당한다면, 한컴은 뒤에서 넷피스로 오피스와 데이터베이스를 담당하고, 다른 솔루션들도 각각 나름의 기능을 가지고 하나로 통합되는 식이다.
그래서 새로 출시하는 ‘한글2002’에선 인터넷과의 쉬운 연동을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다.
-그런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인터넷 기업에 대한 투자들은 조금 방만하게 느껴진다.
=한때는 홀딩컴퍼니를 지향했던 게 사실이다.
캐피털 회사라면 지분평가 방법을 적용하지 않는데, 소프트웨어 기업이니까 이 방법이 적용돼 실적에서 부담스럽게 작용했다.
하지만 기업은 최소한 3년은 해야 효과가 나기 마련이다.
다는 아니겠지만 도움이 되는 기업이 있을 것이다.
한컴을 제대로 정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시간들이었고, 느슨한 연방 개념이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젠 타이트하게 관리할 계획이다.
1주일에 한번씩 경영진 미팅을 하며 점검을 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정리할 기업이 생길 수도 있다.
-MS와의 싸움이 점점 더 힘겹게 느껴진다.
워디안은 같은 한글의 아래 버전과도 호환이 되지 않아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다.
소프트웨어가 점점 더 많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호환은 단순한 기능 이상이고, 이 점에서는 MS를 따라갈 수 없다.
현재 한컴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워디안은 현실적으로 무리였다.
1년 안에 엔진까지 바꾼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는 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새 버전에서는 워디안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돌아갔다.
겸허하게 시장의 반응을 받아들인 것이다.
한글2002는 새로운 개발 시스템에 의해 탄생하는 제품이다.
이전처럼 개발자 개인에게 의존해 그 개발자가 없어지면 아무도 손댈 수 없는 그런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시스템화된 개발조직과 개발환경을 통해 만드는 첫 작품이다.
경영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하지만 제품은 철저히 로컬라이즈해야 한다고 본다.
그게 제품의 경쟁력을 만든다.
MS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에서 기능 하나가 조금 더 뛰어나고 아니고가 중요하다고 보는가? 소프트웨어에서도 중요한 것은 ‘브랜드’다.
어떤 제품이 내 정서에 맞는가가 중요하다.
이런 점이 우리의 강점이고, 앞으로도 그것을 지향할 것이다.
그런 시장들은 우리나라에도 있고 해외에도 있다.
MS가 손대지 않고, 들어가기에도 힘든 시장이 우리가 보는 시장이다.
중국이나, 전세계에 퍼진 중국인 시장 같은 아시아 시장도 있고, MS가 지원하는 41개 언어권 밖의 지역에도 시장이 있다.
우리는 그런 틈새들에 계속 진출할 것이고, 그런 곳에서 ‘정서적인 게임’을 할 것이다.
-한컴이 핵심적으로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자 하는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엇인가. =한글을 유지, 강화,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름은 같지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소프트웨어라는 좀더 변형된 형태라는 것이 전과 다르다.
한글을 중심으로 고객의 지식을 극대화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하고, 세계 시장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시장이 어디인지 찾아내야 한다.
웹이라는 환경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면 글로벌 진출은 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걸 예상하고 국내 제품에도 그런 사상을 강하게 넣고 있다.
-지난 3년간 정말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한컴의 조직을 바꾸어 안정을 이뤄가는 시기였다.
이제야 그 효과를 보겠지만, 아직도 역동적인 구조다.
일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경험들은 많지만, 한컴 안에서의 경험은 조금 부족한 면이 있다.
이들을 조화시켜 나가는 게 쉽지 않다.
지난해 주가가 떨어지고 예카사업이 순조롭지 않았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요즘 가족사들의 문제로 그만큼 힘들다.
인터넷 기업을 너무 쉽게 생각한 면이 있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관심도 경영자에겐 큰 부담이다.
한컴은 80% 가까이가 개인 소액주주들로 구성된 회사기 때문에 이런 관심을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이런 형태의 기업은 정말 드물다.
단순한 소프트웨어 기업이 아니다.
힘든 점은 많지만,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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