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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자금시장의 봄’ 아직 멀다
[포커스] ‘자금시장의 봄’ 아직 멀다
  • 유병연(한국경제신문경제부)
  • 승인 2001.01.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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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인위적 대책으론 한계…은행 구조조정 조속히 마무리할 필요
꽁꽁 얼어붙었던 자금시장에 봄기운이 돌고 있다.
국고채 금리가 연 5%대에 안착한 데다 정부의 강한 ‘햇볕정책’(자금시장 안정대책)이 가세하면서 자금경색 현상이 부분적으로 개선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자금시장의 온기가 신용도가 높은 일부 ‘윗목’ 기업에 한정돼 있을 뿐 아랫목(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냉기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인위적 자금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은행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해 금융시스템을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회사채 발행 증가세로 반전 연초 자금시장의 훈풍은 회사채 시장에 불고 있다.
회사채는 올 들어 1월20일까지 1600억원의 순발행(발행액-상환액)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그동안 시장에서 외면받던 투자적격 최하위등급(BBB급) 이하 기업의 회사채 발행도 일부 재개되고 있다.
올 들어 한화(300억원), 제일모직(300억원), 대한제당(90억원) 등이 회사채 발행에 성공했다.
국공채 금리가 연 5%대로 떨어지면서 돈 굴릴 곳을 찾지 못한 금융기관들이 우량기업의 회사채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분위기가 호전되면서 얼마 전까지 중견기업들로서는 엄두도 못 냈던 무보증사채 발행도 러시를 이루고 있다.
삼성, LG, SK 같은 우량 대기업뿐만 아니라 그동안 돈가뭄에 시달린 중견기업들까지 자금조달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B등급 기업 무보증사채까지 팔릴 정도로 실적도 기대 이상이다.
한화, 두산, 금호 등 신용등급 A급 미만의 중견기업들은 최근 공모를 통해 잇따라 회사채 발행을 성사시켰다.
코오롱, 동부 등도 다음달 중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기업들의 단기자금 조달창구인 기업어음(CP) 시장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초우량기업(A1)에 한정됐던 발행이 신용등급이 다소 낮은 기업(A3)으로까지 확대되는 모습이다.
BBB급 회사채의 차환율도 지난해 11월 7.9%, 12월 20.0%에서 이달 들어 67%로 높아졌다.
자금시장의 말초신경인 사채시장에서도 할인대상 채권의 종류가 늘고 금리도 낮아지는 추세다.
진성어음(물품대금지급어음) 할인율이 연말에 비해 1%포인트 이상 떨어졌고 거래량도 2~3배 늘어났다.
거래가 거의 끊겼던 현대건설 어음도 융통되고 있다.
은행, 예·대금리 인하 러시 최근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대표적 예금상품인 1년제 정기예금 고시금리를 은행권 처음으로 연 6.5%에서 6.0%로 내렸다.
이에 앞서 한빛은행, 서울은행, 조흥은행 등은 1년만기 정기예금 고시금리를 연 6.5%로 최고 0.5%포인트 인하했다.
꿈쩍도 않던 은행 대출금리도 떨어지고 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기준이 되는 프라임레이트(우대금리)를 연 9.5%에서 연 9.2%로 0.3%포인트 내리기로 해 은행의 대출금리 인하 바람을 부채질했다.
이 여파로 은행권으로만 쏠렸던 뭉칫돈이 수익률을 좇아 제2금융권으로 분산되는 등 자금시장에 재편 조짐이 일고 있다.
올 들어 투신사의 MMF(머니마켓펀드) 수신은 7조8천억원 가량 증가했다.
금리가 낮은 은행 정기예금에 맡겨두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식시장에도 선뜻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부동자금이 MMF에 대기하고 있는 형국이다.
종금사 수신은 지난해 10월 4천억원, 11월 3천억원, 12월에는 2조9천억원이 각각 줄었으나 올 1월20일까지 1조4천억원의 증가세를 나타냈다.
고사상태에 몰렸던 은행 신탁상품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신노후생활연금신탁을 포함한 추가형 금전신탁 수신고는 올 들어 4천억원 가까이 늘었다.
고객이 자금의 운용방법을 직접 지시하는 은행권 특정금전신탁 수탁액도 지난해 12월 1조원 이상 빠졌다 올 들어 2600억원의 증가세로 돌아섰다.
은행보다 3%포인트 정도 높은 금리를 주고 있는 신용금고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올 들어 신용금고 업계 전체 수신액은 지난해 말보다 5천억원 이상 늘어났다.
금고업계 관계자는 “올 들어 은행들이 금리를 또다시 내린 데다 금고업계의 유동성 위기도 고비를 넘겨 예금자들이 금리가 높은 신용금고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2금융권으로 자금 유입은 주식과 회사채 등 매입 수요를 부추겨 기업의 신용경색 완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자금시장이 선순환 구조로 접어들고 경기도 바닥을 때렸다는 성급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기업자금, 부익부 빈익빈 심화 올 들어 회사채 발행에 성공한 기업들은 포항제철이나 SK(주), 현대자동차, LG화학 등 신용등급이 좋은 기업과 두산, 한화 등 구조조정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대다수 기업들에겐 ‘그림의 떡’에 다름아니다.
자금시장이 풀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인 기업들은 아직 회사채 발행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투자적격 기업조자 여전히 회사채 차환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회사채 금리가 연 7%대로 떨어졌는데도 기업들에 대해 연 11~12%가 넘는 고금리를 적용하는 한편 부도위험을 줄이기 위해 회사채 만기를 1년 정도로 줄이고 있다.
오히려 기업자금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심화되는 추세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최근의 자금시장 해빙조짐은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을 통한 정부의 인위적 자금배분에 힘입은 것일 뿐 시장기능이 되살아났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채권시장이 그런대로 돌아가는 것도 산업은행을 통해 부실징후 기업의 회사채를 일괄 인수토록 해 1년간 부도를 유예해준 데 따른 것으로 기업 신용위험이 낮아지면서 금융기관의 자발적 채권투자가 늘어났기 때문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신용평가사들이 신속인수 대상 회사채의 신용등급을 오히려 강등시키는 사례까지 발생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5%대로 떨어진 국고채 금리 또한 정상 금리라고 말하긴 어렵다.
위험을 꺼리는 자금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옮아다니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높은 국고채 가격이 형성된 것이란 분석이 많다.
더욱이 올해 자금시장은 산 넘어 산이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는 65조원에 이른다.
이중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화의 등 만기가 자동으로 연장되는 업체를 제외한 일반기업의 만기물량은 37조7천억원이다.
차환발행이 불가능한 투자부적격과 무등급 회사채 물량도 7조4천억원에 이른다.
특히 올해 만기도래하는 회사채의 73%가 하반기에 몰려 있고 4분기에 만기 회사채의 절반 가량이 집중돼 있는 상황이다.
“경기 하강기가 길어지거나 유가가 급등하는 등 돌발변수가 발생할 경우 자금시장은 급속히 한겨울로 돌아갈 것”(한국은행 관계자)이란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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