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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국제유가 불안감 확산
[초점] 국제유가 불안감 확산
  • 강남규/ <한겨레> 국제부
  • 승인 2001.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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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다” 국제유가 “내린다” 미국 보복공격 발표 후 불안감 확산…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감소론도 고개 미국 심장부에 대한 동시다발 테러로 국제 원유가격이 또 한번 요동쳤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허망하게 무너져내리는 순간 세계 증권시장과 외환시장에서 주가와 달러 가치가 급락하는 동안 상품거래소에서는 금과 원유값이 급등세를 보였다.
동시다발 테러 직후 북해산 브렌트유 10월 인도분은 장중 배럴당 4달러 급등해 31달러에 거래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알리 로드리게스 사무총장이 긴급 성명을 통해 “회원국들은 적절한 공급물량과 가격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면 추가 증산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자 유가는 29.25달러까지 후퇴했다.
분노한 미국이 보복공격을 천명하고 장기전도 불사하겠다고 나서자 국제유가는 29달러선에 머물며 떨어질 줄을 몰랐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이 “테러의 뿌리를 뽑기 위해 장기적인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언급하자 보복전쟁의 불똥이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이란·이라크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거론되면서 국제유가의 강세행진이 계속됐다.
석유수출국기구의 연간 생산쿼터 중 13%와 5%를 차지하고 있는 이란과 이라크가 화난 황소처럼 물불 가리지 않고 덤비는 미국의 보복전쟁에 말려들 경우 세계 석유시장은 더욱 심각한 충격을 받을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9월12일 미국의 원유 재고량이 3억1500만배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자 국제 원유시장은 다시 한번 흔들렸다.
미국의 원유 재고량은 7월 초 3억2600만배럴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재고량이 계속 하락할 경우 보복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변동에 대해 미국이 완충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사정이 이쯤되자 유가와 환율 변동에 내성이 거의 없는 한국 경제에 대해 음울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9월17일 ‘미국 테러 사태로 인한 전쟁 시나리오별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전쟁의 전개양상별로 세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각각의 경제적 여파를 분석했다.
첫번째 시나리오는 사태가 조기 수습돼 유가가 배럴당 5달러 정도 상승하고 환율에는 변화가 없는 경우다.
이때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애초 한국경제연구원 전망치인 2.7%보다 0.5%포인트 하락한 2.2%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분기별 성장률은 3분기 0.8%, 4분기 1.5%로 예상됐다.
경상수지 흑자는 117억2천만달러에서 105억200만달러로 12억달러 감소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6%에서 4.9%로 높아질 것으로 분석됐다.
두번째 시나리오는 전쟁이 인근 국가로 일부 확산돼 유가가 배럴당 5달러 오르고 미국 달러화 가치가 5% 정도 떨어지는 경우다.
이때는 우리나라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1.9%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경상수지 흑자는 97억2천만달러로 20억달러가 줄어드는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8%로 첫번째 시나리오의 경우보다 약간 낮을 것으로 전망됐다.
전쟁 장기화를 가상한 세번째 시나리오는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고 미국 달러화 가치가 5% 낮아지는 경우다.
이때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7%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고, 분기별로는 3분기와 4분기 성장률이 모두 0.4%에 그치면서 전쟁의 여파가 내년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는 78억7천만달러로 애초 예상치보다 38억5천만달러나 줄어들며 유가폭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5.2%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도 음울한 전망 배상근 연구위원은 “미국의 보복전이 시작되면 미국 정부의 유동성 공급 확대와 안전한 자산으로의 자금이동 현상으로 달러화 약세가 예상되며,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미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이런 음울한 분석을 내놓은 이날, 영국 런던으로부터는 다소 다른 전망이 전해졌다.
런던에 있는 세계에너지연구센터(CGES)는 미국에 대한 동시다발 테러 공격은 유가를 상승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유가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외의 전망을 내놓았다.
이번 테러 공격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원유의 공급 측면보다 수요 측면에 더 큰 위협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연구소는 “세계경제의 경기 회복은 지연될 게 거의 확실하며, 더 나아가 침체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크다.
이르면 내년 4분기부터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경기침체가 원유 수요에 미칠 영향은 엄청나다”고 내다봤다.
이런 관점에서 이 연구소가 제시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면, 세계경제의 극심한 침체로 세계 원유수요는 올해 4분기에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0.8% 하락해 하루 7700만배럴에 그치게 되고, 내년 1분기에 0.3%가 더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항공유 시장이 타격을 받아 수요가 하루 40만배럴선까지 하락할 것이며, 미국의 보복공격에 따른 수요증가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테러 이후 18일 거래를 재개한 뉴욕상품거래소에서 텍사스산 중질유 10월 인도분 값은 최근 두달 사이의 최대 낙폭인 배럴당 1.11달러(3.85%) 떨어져 27.70달러에 거래돼, 세계에너지연구센터의 예상에 힘을 실어줬다.
경제조사 기관인 뉴욕 페니그의 에너지부문 연구책임자 모르데차이 아비르는 “석유수출국기구는 세계경제 침체가 더 길어지면 지난 2년간 계속됐던 고유가 국면이 종식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쿠웨이트 석유장관 압델 알-사베도 18일 “석유수출국기구가 미국의 보복전쟁으로 세계 석유수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부족분을 보충할 수 있으나 목표 가격대를 낮추지는 않을 것”이라며 유가하락을 경계했다.

유가 50년 조용하다 30년 출렁
최근의 국제유가 흐름에 대해 석유 전문가들은 “50여년간의 고요 뒤 30여년간의 회오리”라고 묘사하고 있다.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대중화의 길에 들어선 1920년대 이후 국제유가는 1973년 1차 석유파동 때까지 배럴당 1~3달러 수준에서 움직이며 ‘고요함’을 유지했다.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열강의 이해를 대변했던 엑손, 로열 더치 셸, 영국 석유 등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유가를 묶어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에 1·2차 중동전이 발생했지만 원유가는 별다른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가의 결정권은 60년 9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회의를 계기로 출범한 석유수출국기구(오펙)로 이동했다.
그뒤 중동지역의 정치·군사·경제적 상황에 따라 국제유가는 춤을 췄고, 73년과 79년에 각각 석유파동이 일어나 세계경제를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동시다발 테러와 미국의 보복전쟁으로 원유공급이 차질을 빚고 세계경제가 73년과 79년 직후처럼 심각한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앞으로 유가 흐름이 90~91년 걸프전 이후 상황과 더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다.
90년 8월 이라크가 기습적으로 쿠웨이트를 침공한 직후 국제 원유시장은 순간 공황상태에 빠졌다.
쿠웨이트 석유까지 이라크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세계 원유시장에 대한 이라크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것으로 우려됐고, 미국이 전쟁을 시작한다면 유전파괴 등으로 공급 차질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순식간에 30% 가까이 치솟아 배럴당 20달러선으로 급등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면서 이라크의 위협에 직면한 사우디아라비아를 설득해 생산량을 늘리도록 함으로써 유가 급등세를 완화시켰다.
국제유가가 단순히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에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경제가 심각한 침체국면에 빠져 수요마저 급감했다.
당시 미국 경제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3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급격하게 침체국면으로 빠져들어갔다.
이에 따라 한순간 배럴당 20달러선 치솟았던 유가는 다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94년에는 15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에 국제유가는 일시적으로 급등해 30달러선까지 올랐으나, 세계경제의 동반 둔화로 연초 이후에는 하락세를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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