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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여자의 성(性)이 열린다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커버스토리] 여자의 성(性)이 열린다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 이경숙
  • 승인 2001.01.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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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사 휴게실에 여자직원들이 와글와글 모여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통신프리텔에서 최근 출시한 여성전용 단말기 ‘드라마’다.
단말기 주인이 “신기한 것 보여줄게” 하면서 단추를 누르자 ‘오늘의 가임확률 10%’라는 메시지가 뜬다.
여자직원들 사이에서 “와아~” 하고 감탄사가 터진다.
한 기혼여성이 말한다.
“이거 편리하겠는데. 얼마야?”


여성고객 사로잡는 ‘성과 로맨스’
요즘 여성 대상 e비즈니스에서 빠지지 않는 ‘감초’가 등장했다.
성(性) 정보 서비스다.
여자의 성과 관련한 콘텐츠들은 경품이나 영화, 패션 정보보다 강력한 흡인력으로 여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여성전용 단말기 드라마는 40여만원에 이르는 고가품인데도 출시 한달 만에 한국통신프리텔 여성 신규가입자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성과를 올렸다.
경품 경쟁에 지친 여성 포털사이트들은 저렴하고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른 성 콘텐츠의 위력에 흥분하고 있다.
유료회원 확보에서 한계에 다다른 성인방송국들은 남자 인터넷자키의 옷을 벗기면서까지 여자 네티즌의 성을 공략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미디어라는 인터넷의 특성상 성 콘텐츠가 인기를 끈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특이해 보이지 않는다.
검색엔진 사이트에서 인기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검색어는 언제나 성과 관련돼 있다.
성인방송은 게임과 함께 콘텐츠 유료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몇 안되는 사업분야다.
꿀단지에 꿀벌이 모이듯 네티즌들은 성 관련 정보에 모여든다.
그러나 모든 꿀단지에 모든 네티즌이 모이는 건 아니다.
여성용 꿀단지와 남성용 꿀단지가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여성용 꿀단지에 남자들이 더 감탄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 화장실 변기를 사용할 때와 비슷하다.
남자화장실의 남자용 변기는 남자만 사용하지만 여자화장실의 좌변기는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쓸 수 있다.
“여자의 몸이 이런 거예요?” 성인방송과 여성포털 사이트의 성 채널이 대표적 예다.
월 유료회원 4만명 선에서 한계에 부닥친 성인방송국들은 성인물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여자회원 개척에 나섰다.
이들이 내세운 전략상품은 옷을 벗는 남자 인터넷자키와 여성용 에로영상물이었다.
성인방송국들은 사회적으로 더 억압받고 있는 여자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면 남자회원들 이상으로 호응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전체 회원 가운데 여자회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남자 인터넷자키 등장 이후에도 여전히 7~8%대를 유지하고 있다.
최초의 여성전용 성인방송을 표방한 프리존21 www.freezone21.co.kr 은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이 사이트 게시판은 “실망했다”며 회원 탈퇴를 요구하는 여자 네티즌의 항의글로 가득차 있다.
반면 여성포털 사이트의 성 채널은 문지방이 닳는다.
마이클럽 www.miclub.com 과 주부닷컴 www.zubu.com 회원들이 지난해 가장 선호한 코너는 단연 성 관련 서비스였다.
여자와닷컴 www.yeozawa.com , 해피올닷컴 www.happyall.com 회원들도 패션, 영화 다음 순위로 성 콘텐츠에 높은 호응도를 나타냈다.
이런 현상은 바다 건너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다르지 않다.
미국 최대의 여성포털 사이트 위민닷컴 www.women.com의 고객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이용자들이 가장 자주 가는 코너는 ‘섹스&로맨스’(31%)이다.
여성포털 사이트들은 피임이나 성 의학, 체험담 같은 기본 서비스 외에 저마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해 여자 네티즌을 불러들인다.
마이클럽 ‘섹스&로맨스’는 신혼부부를 위한 체위, 부부금슬을 좋게 하는 오일마사지법 따위의 성 정보를 동영상으로 제공한다.
주부닷컴 ‘성크리닉’은 기혼여성의 눈높이에 맞춘 정보와 산부인과 상담으로 회원들의 충성도를 높인다.
여자와닷컴의 ‘사랑과 성’은 릴레이 섹스로 유명한 애나벨 청의 연재에세이와 ‘위쯔의 응큼한 상상’, ‘로맨스양&심드렁양’ 등 여성의 시각으로 본 성 콘텐츠로 회원들을 유혹한다.
해피올닷컴의 ‘남자’에서는 ‘으랏차차 러브킹’, ‘너희가 남자를 아느냐’ 등을 통해 남자들이 직접 자신의 몸과 성을 말하고 여자들과 대화를 나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남자 네티즌들도 이런 성 콘텐츠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여자와닷컴 ‘사랑과 성’ 커뮤니티는 여성포털 사이트로는 이례적으로 남자회원 비율이 35%에 이른다.
‘남자가 있는 여자포털’을 표방하는 해피올닷컴도 회원의 26%가 남자다.
마이클럽과 주부닷컴에서도 남자회원이 10% 안팎을 차지하고 있다.
여자와닷컴 콘텐츠 담당 김성은 PD는 ‘응큼한 상상’ 등 여성 중심적 성 콘텐츠에 대한 남녀 회원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한다.
“여자들 가운데는 ‘시원하다, 공감한다, 좋다’는 부류가 많아요. 개중에는 ‘창피하다’는 부류도 더러 있지요. 하지만 남자들은 거의 100% 찬사와 감탄을 보내요. ‘여자들의 마음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이런저런 내용을 보고 시원하다고 느낀다’ 면서요. 저로선 좀 의외예요. 여자들을 다독이는 건데 남자들이 더 좋아하니….” 이런 열띤 반응은 여성포털 사이트 기획자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사이트 개장 전 콘텐츠 기획자들은 각종 설문조사 자료를 토대로 미혼여성에게는 패션과 미용, 기혼여성에게는 육아와 요리 콘텐츠가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서비스 개시 후 회원들의 반응은 생각 외였다.
성이나 로맨스와 관련한 콘텐츠가 결혼 여부나 연령대를 막론하고 최고의 인기를 끌어모은 것이다.
이것은 ‘여자의 성’이 그 자체로 새롭고 낯선 정보라는 데서 기인한다.
여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가임주기, 성감대, 여자들을 위한 피임방법 같은 기본정보들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다.
정규교육 과정에서는 물론 사회에서도 여자들이 성 정보를 얻을 만한 곳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포털 사이트들이 다양한 정보와 즉각적 상담, 커뮤니티를 제공하니 여자들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주부닷컴 이민희 홍보과장은 성 콘텐츠의 인기 요인을 이렇게 분석한다.
“여자들은 결혼 전이든 후든 성에 대해 알기 어려워요. 특히 기혼여성은 결혼을 한 후 곤란을 겪을 때가 많지요. 남편은 뭔가 불만족스러워하는데 원인은 모르겠고, 그러다가 남편이 바람이라도 나지 않을까 두렵고…. 요리나 육아는 사전에 배울 수 있지만 성 관계는 그게 안되잖아요. 그렇다고 정신과나 산부인과에 찾아가기는 부담스럽죠. 결국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게 되는 거죠.” 남자 커뮤니티는 여자들에게 배타적 남성 중심의 콘텐츠나 커뮤니티가 여자들에게 배타적이라는 점도 여자의 성과 관련된 콘텐츠의 매력을 강화한다.
성인방송에서 남자 인터넷자키가 나오는 시간이라고 해도 시청자의 70~90%는 남자다.
채팅창에 뜨는 회원들의 요구를 수용해 생방송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남자회원들 중심으로 방송이 흘러갈 수밖에 없다.
예컨대 남자 인터넷자키는 남자회원들의 주문에 따라 여자 인터넷자키의 옷을 벗긴다.
남자의 노출은 여자보다 훨씬 적다.
남자가 옷을 벗으려 하면 채팅창에는 ‘벗지마, 벗지마’ 하는 남자회원들의 요구로 가득찬다.
남자 인터넷자키는 남자회원의 분신, 혹은 대리만족 수단에 가깝다.
그래서 바나나TV의 ‘빵찌’나 엔터채널의 ‘수빈’ 같은 남자 인터넷자키들은 오히려 남자팬이 더 많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자회원은 여간해선 버티기 힘들다.
바나나TV 금민석 PD는 여자들은 자신의 성을 숨기기 위해 아버지나 남동생 주민등록번호로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남자 인터넷자키 수빈씨는 “남자회원들은 여자회원이 나타나면 집단으로 ‘껄떡’거려 5분도 못 버티고 나가게 한다”고 귀띔한다.
에로배우 출신인 그는 여자회원들에게 주체적으로 성을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직업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온통 남자회원뿐이 성인방송에서 그런 가치관을 관철시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적으로 여자는 성을 즐기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어요. 남자와는 다르죠. 그래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남자회원들에게 강조해요. 오르가즘 없는 성교는 폭력이다, 뚫으려 하지 말고 열어라, 라고요.” ‘플레이걸’이 뜰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여자들이 성을 즐길 만한 곳은 아직 없다.
성 정보를 동영상으로 서비스하는 마이클럽 콘텐츠팀은 최근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여성 시각의 동영상을 제공하고 싶은데 그런 작업을 하는 제작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제휴사에서 받은 동영상을 ‘덜 남성 중심적인 것’으로 편집해야 했다.
마이클럽 콘텐츠팀 이경화 부장은 “성 문화에 형평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변화의 가능성을 느낀다.
인터넷의 효율적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는 인식이 빠르게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는 한꺼번에 바뀌지 않습니다.
의식을 바꾸며 서서히 발전하지요.” 인터넷에서 시작된 문화의 변화는 산업을 바꾼다.
산업은 경제 토대를 바꾼다.
경제 토대는 다시 문화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
여성의 성에 입과 귀를 연 네티즌들은 이제 막 사회 변화의 첫 도미노를 쓰러뜨린 셈이다.
여성이 자신의 성에 대해 똑똑해지고 경제력도 갖는 문화에서는 <플레이보이>에 필적할 만한 <플레이걸> 사업이 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안드로젠의 지배기는 갔다
왜 여자들은 성인방송의 남자 인터넷자키(IJ)에 무덤덤할까? 남자들은 왜 여성포털 사이트에까지 가서 여자들의 수다에 끼어들까? 정신분석의 김병후 박사는 여자와 남자의 성적 관심이 다르다고 말한다.
우선 유전학적으로 남자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벗기고 싶어하지만 여자는 세상의 모든 남자를 벗기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임신의 가능성 때문이다.
여자는 더 좋은 형질의 유전자를 받고 싶어한다.
그것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이라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유전적 특성이다.
그래서 여자 네티즌은 특정 남자와 ‘친해지길’ 원하지만 남자 네티즌은 여러 여성을 ‘감상하길’ 원한다.
물론 인간의 성은 동물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일본의 심리학자 기시다 슈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의 성 본능은 고장나 있다.
그 때문에 인간의 성적 관심과 관계는 본능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이다.
가령 동물들은 수컷이든 암컷이든 발정기가 되면 서로 자연스럽게 반응해 성교를 한다.
그러나 인간은 발정기가 따로 없어 한쪽 성이 다른 쪽을 무리하게 일치시키지 않으면 성교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사회지배력이 우월한 남자의 성이 여자의 성을 자기 쪽으로 일치시키면서 남성 중심의 성적 환상이 태동했다.
남자는 성에 능동적이고 여자는 수동적이라는 사회적 환상이 한 예다.
김 박사는 디지털시대가 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사이버공간이나 정보기술사회는 근육의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근육을 움직이는 안드로젠(남성호르몬)은 개척시대나 모험시대에는 상당히 유용했지만 정보사회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어요. 이미 가치가 변했는데 농경사회적 분업이나 성 역할을 여자들한테 강요하니 먹히겠습니까? 정보와 지식, 네트워크가 힘인 정보화사회에서 세상의 반인 여성은 중요한 동반자이자 고객입니다.
이젠 여성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는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비참한 남자가 될 겁니다.
우아하면서도 응큼하게 외국에서도 인기를 끄는 여성포털 사이트들은 ‘성’을 통해 여성고객의 마음을 연다. 회원 3600만명, 16만 페이지의 콘텐츠를 자랑하는 미국 최대의 여성포털 위민닷컴 www.women.com은 , 등 11개 오프라인 잡지를 기반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섹스&로맨스’ 채널은 여성의 몸에 대한 해부학적 기사에서 부부금슬이 좋아지는 수면 자세 안내에 이르기까지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정보로 선호 콘텐츠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위민재팬닷컴 www.womenjapan.com 설립을 필두로 여성포털 사이트 붐이 일고 있는 일본도 분위기는 같다. 위민재팬닷컴 CEO 사로 구미는 “서구 여성들에 비해 내향적인 일본 여성들은 산부인과 상담마저 꺼린다”며 “인터넷을 통하면 익명으로 상담할 수 있어 성 관련 서비스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자들이 성인사이트의 성 관련 서비스보다 여성포털 사이트를 애용하는 이유는 여자들이 ‘노골적인 것’보다는 ‘고급스러운 것’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e비즈그룹 컨설팅팀 조주익 팀장은 여성 e비즈니스 시장은 여성잡지 시장과 비슷하다고 분석한다. 여자들은 대개 브랜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같은 성 정보라도 3류 성인잡지보다는 상류층이 봄직한 고급잡지에서 얻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을 겨냥한 시장에서는 비즈니스우먼 종합지 처럼 ‘응큼하되 우아한’ 상품이 잘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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