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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정보통신 분야 남북협력 '흐린 뒤 맑음'
[지식창고] 정보통신 분야 남북협력 '흐린 뒤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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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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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등 ‘북한과 인터넷’ 심포지엄 개최
북한 관련 전문가를 찾으려면 베이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가 활기를 띠면서 이 항로가 북적거리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도 앞다퉈 대북경협을 “검토중”이라고 발표한다.
특히 정보통신 벤처기업들은 “성공만 한다면” 브랜드 이미지를 단박에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듯하다.


정보통신 분야는 북한의 우수한 소프트웨어 인력과 남한의 기술·자본력을 결합하면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대표적 윈윈 모델로 꼽힌다.
하지만 정치·군사적으로 가장 민감한, 따라서 성과를 점치기 힘든 분야이기도 하다.
남북경협의 당사자들도 이 분야만큼은 유독 조심스러워 한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단편적일 수밖에 없었던 정보통신 분야의 남북교류 문제를 조망해볼 수 있는 학술대회가 최근 열렸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서대숙)와 하나로통신(사장 신윤식)이 23일 ‘북한과 인터넷’이라는 색다른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 것이다.
북한 전문가도 흔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의 정보통신’을 논할 전문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인데, 이번 심포지엄에는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참석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심포지엄은 ‘북한의 정보통신’ ‘정보통신과 남북통합’ ‘남북경협과 e-비즈니스’ 등 크게 세가지 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토론을 통해 “북한이 서서히 세계 디지털 경제권으로 편입되고 있으며, 인터넷이 남북한의 활발한 교류를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데 일치된 의견을 보였다.
또한 남북교류를 뒷받침하기 위해선 정부가 이른 시일 안에 현재의 법률과 제도적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 글로벌통신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애틀러스리서치그룹의 노승준 사장은 ‘북한의 정보통신 현황과 정책’이란 기조발표를 통해 “북한도 세계 디지털 경제의 흐름과,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정보통신 동향을 보면 90년대 후반 들어 곳곳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98년 각 교육기관에 컴퓨터 프로그램 교육을 강화하도록 명령했으며, 평양 근처에 대동강밸리를 건설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올해 6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인터넷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도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또 그가 이메일이나 웹 서핑을 즐긴다는 사실도 외신을 통해 간간이 보도되고 있다.
노 사장은 이러한 편린들을 통해 북한의 지도층이 세계적인 디지털 경제권으로 편입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관건은 속도와 정도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오랫동안 남북경협에 종사해온 시스젠 권오홍 회장도 북한이 광범위하게 인터넷에 대한 개념을 파악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인터넷과 남북경협’이란 주제발표에서 “최근 외국으로 출장온 북한의 상당수 ‘무역일꾼’들이 인터넷 웹사이트 주소를 갖고 나와 서핑을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접근이 허가되지 않은 부서나 회사도 이런 활동을 통해 인터넷에서 필요한 정보들을 획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북한과 인터넷’이 조만간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권 회장은 또 북한의 정보통신 인력이 남아돌고 있다며, 남북한이 공동으로 제3국에 기업을 세우는 것이 무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은 85년 이후 대학 및 고등중학생 일부를 상대로 프로그램 교육을 실시해 우수한 인력들이 많지만 취업률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그는 북한에 약 10만여명 수준의 유휴인력이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분야의 남북경협이 그렇듯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증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 대북 접촉을 중개해주겠다는 대개의 사람들이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특히 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은 항상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신뢰를 쌓고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선 애초 생각한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경비가 들어가며, 북한쪽 담당자가 바뀌어 중도에 사업 자체가 완전히 무산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연철 수석연구원은 국내외 전략물자 반출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되지 않으면 정보통신 분야의 남북협력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신소재, 전자장비, 통신, 정보보안 등의 전략물자들을 반출제한 품목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어계측기기가 컴퓨터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런 규정은 제조업은 물론이고 정보통신 분야의 대북 진출 확대를 결정적으로 막고 있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통제대상이 아니지만, ‘전략물자 수출입공고’에서는 정보보안 관련 소프트웨어, 센서 및 레이저 관련 소프트웨어 등 광범위한 분야를 통제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재수출 조항도 대북교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미국 상무부는 미국 성분이 10% 이상 포함된 이중제품을 북한으로 반출할 경우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생산장비, 공작기계, 통신장비 등의 상당 부품을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한국 기업들은 대북교류에 앞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는 “전략물자에 대한 규제는 군사적인 전용을 막는 데 목적이 있지, 평화적인 산업용 이전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가 용도 판정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북한과의 정보통신 교류 기상도가 맑음이라는 데 동의했다.
단기적으론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론 가장 성공적인 협력모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이런 결론을 집단적으로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사회 분야 일변도였던 북한 관련 심포지엄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분야와의 접목을 시도했다는 점도 참석자들의 후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보 접근의 한계 탓에 기존에 알려진 내용을 크게 뛰어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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