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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침실 위 비즈니스 동반자 ‘부부 CEO’
[직업] 침실 위 비즈니스 동반자 ‘부부 CEO’
  • 한정희
  • 승인 2001.01.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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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건 우리 사회에서 흔한 일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에는 맞벌이 중에도 같은 업종에서 일을 하거나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부부를 종종 보게 된다.
심지어 어떤 부부는 창업 파트너로 만나 회사를 만들고 회사를 이끌어가는 동반자가 된다.
그게 맘에 차지 않으면 새로운 사업을 기획해 각기 독립된 사장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비즈니즈 경쟁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부부의 모습은 지난날 남편과 아내로 구분지은 우리네 전통 부부관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집안일을 해야 하는 아내의 본분이라든가 돈을 벌어야만 하는 가장의 책임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은밀한 침실에서도 공동 경영자로서, 아니면 비즈니스 경쟁자로서 남편을 또는 아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좀 삭막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의외로 이렇게 말한다.
아내이기 전에, 남편이기 전에 하나의 인격체를 만나고 있노라고.둘이 만나면 온전한 한사람 무선인터넷 게임 전문업체인 컴투스 www.com2us.com 박지영(26) 사장과 남편인 전략기획팀 이영일(29) 팀장은 흔히 말하는 캠퍼스커플이었다.
고려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박 사장을 보고 이 팀장은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때부터 박 사장은 이 팀장에게 찍혀 1년 동안 집요한 구애를 받았다.
그들이 연애를 할 땐 아무도 같이 사업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 성격이 많이 다른 데도 둘은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게임을 무진장 좋아한다는 거였다.
“둘다 컴퓨터게임을 너무 좋아했어요. 자취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놀 정도로 게임을 즐겼죠.” 이런 성향 때문에 둘은 자연스럽게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같이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결혼을 전제한 것이었다고 봐야죠.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어요.” 박 사장과 이 팀장, 그리고 또다른 친구 이렇게 세명은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창업자로 나섰다.
컴투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박 사장이 사장을 맡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3명 중에 누구 하나는 대표를 맡아야 했다.
이 팀장은 당시 병역문제가 걸려 있어 사장자리에 나설 수가 없었다.
“솔직히 처음에 사장할 땐 얼굴마담이었어요. 그렇게 수동적으로 맡았는데 경력이 쌓이면서 5년을 하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사장이 되어 있더라고요.” 박 사장은 이제 사장자리가 부담스럽지가 않다.
이영일 팀장도 지금은 아내가 훨씬 더 CEO로 적합하다고 느낀다.
“박 사장은 의외로 냉철해요. 전 일을 벌이는 편이죠. 기획하고 추진하는 건 제몫이지만 추스르고 마무리하는 건 박 사장이 더 잘해요. CEO다워요.” 그 둘은 각기 맡은 영역이 있지만 항상 혼자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학교다닐 때 서로 게임을 하면서 늘 붙어다녔기 때문일까. 둘은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게 더 자연스럽다.
자주 붙어 있는 만큼 자주 다투기도 한다.
특히 일과 관련해서 2~3년 전까지는 의견차이가 많았다.
그건 직책에서 비롯한 차이기도 했다.
둘은 서로 주장이 다르면 끝까지 설득하는 방법을 택한다.
“공동대표인 경우 둘이 친하면 엄청 싸우게 되고요, 둘이 친하지 않으면 파벌을 형성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싸우는 것은 그만큼 서로에게 근본적 이해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봐야죠. 결국 설득하는 방법으로 가요. 그래서 응어리가 없어요.” 한번은 직원들과 회의를 하는 중에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느새 싸움 양상은 토론을 지나 부부싸움처럼 번졌다.
직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결국 직원들이 자리를 비켜주고 박 사장과 이 팀장은 부부공방전으로 치달았다.
“그렇게 격렬한 토론이 오가다보면 결국 결정을 하게 돼죠. 결정이 끝난 다음엔 좀 멋쩍으니까 직원들에게 밥 사주면서 은근슬쩍 넘어가기도 해요.” 하지만 이것도 옛날 얘기다.
2~3년간 회사를 운영하면서 서로 적응하는 방법을 이제는 터득했기 때문이다.
컴투스의 박 사장과 이 팀장 부부는 결혼생활을 한다기보다 같이 생활하고 같이 일하고 같이 논다고 표현한다.
서로 다른 객체라기보다 마치 자기 몸의 일부처럼 느낀다.
“일과 관련해서 말인데요. 나중에 같이 일하게 되면 역할 분담을 서로 잘 하세요. 그러면 이혼방지에도 도움이 돼요. 왜냐하면 서로 없으면 안되니까요.” 이영일 팀장도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에겐 6시간 정도가 한계다.
6시간이 넘어가면 혼자 있다는 게 지루해지기 때문이다.
너는 장군, 나는 참모 컴투스 두사람이 한몸처럼 일하는 경우라면 콘텐츠 전문업체인 컨텐츠코리아 www.contents.co.kr 이영아(36) 사장과 하재구(40) 사업본부장은 장군과 참모 같은 스타일이다.
역할분담이 뚜렷하다는 얘기다.
“뭐 5일날 미팅이 있다고…. 거긴 사장님이 꼭 참석해야지.” 이 사장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하재구 본부장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어, 난데, 그건 급한 게 아니잖아. 이건 중요한 거야. 사장이 꼭 참석해야지.” 마치 어머니가 학교 가는 어린아이를 챙기듯 일일이 체크하고 간섭한다.
이건 월권행사가 아닐까? “그래야 회사가 살죠.” 하재구 본부장은 의외로 명쾌하게 대답한다.
스스로를 전형적 참모장이라고 평가하는 하 본부장은 사장과 자신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
“저는 지휘관 참모 스타일이지, 지휘관 스타일은 아니에요.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력이 약해요. 그건 제가 잘 알아요.” 육사 소령 지휘관 참모 출신으로 종합기획일만 7~8년을 해온 그였다.
그는 CEO로서 아내의 장점을 이렇게 평가했다.
“일단 마음이 맑아요. 마음이 맑다는 건 정상적이고 건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얘기죠. 박 사장은 깨끗하고 합리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 실제 건전한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 이영아 사장은 자기 개발을 위한 공부를 아끼지 않는다.
“한달에 두번 정도는 교보문고 같은 곳에 꼭 들릅니다.
” 이영아 사장은 책을 보기 위해서는 밤잠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이 두아이의 엄마 아빠임에도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건 집에서 숙식하는 아주머니가 가사노동을 100%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사장이나 하 본부장이 오로지 회사일에만 신경쓸 수 있는 조건이 확보되었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하 본부장은 이 사장이 최대한 자신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끌어가기 위해 잔심부름부터 중요한 사항에 이르기까지 참모 역할에 충실하다.
심지어 아침마다 이 사장이 인삼주스를 마셨는지 마시지 않았는지 체크하는 일까지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이 사장은 하 본부장에게도 리더십을 발휘한다.
컨텐츠코리아에서 공을 들인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회사규모가 작다고 무시당했던 때가 있었다.
그날 밤 하 본부장은 정말 기운이 빠졌다.
한 중국집에서 군만두에 고량주를 시켜놓고 휴대전화도 끄고 직원 모르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래도 밤 늦게 걱정할까봐 이 사장에게 전화했는데 곧장 달려와서 위로를 해주더라고요. 힘내라고.” 그때 하 본부장은 누군가 내 옆에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서로에겐 진정한 후원자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듯하지만 아주 깊은 곳에서 근본적 도움을 주는 비즈니스 커플도 있다.
바로 알라딘 www.aladdin.co.kr 조유식(37) 사장과 아이코 www.ico.co.kr 정진영(37) 사장이 그렇다.
흔히 한 업체에서 경영진에 참여하는 부부들은 많지만 서로 다른 독립된 업체의 CEO 커플은 거의 드물다.
그래서인지 이 커플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크다.
더구나 알라딘은 단기간에 비교적 성공적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고, 아이코도 멀티미디어 콘텐츠쪽으로 꾸준히 이력을 쌓아온 저력있는 기업이다.
사업으로 보자면 정진영씨가 선배다.
조 사장은 그에게 한수 배운다고 말한다.
“아내는 인간관계에서 현명해요.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쉽게 친해지죠. 저는 내성적이고 영업을 잘 못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아내에게 많이 배우죠.” 그가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게 된 것도 아내의 한마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98년 초 조 사장이 월간 <말>지 기자를 그만두고 사업구상을 하고 있을 즈음 정 사장은 조 사장에게 “미국에 가볼 것”을 진지하게 권유했다.
“미국에 가자마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사람들이 이메일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마치 예전에 전보를 대신해 전화를 사용했듯이 앞으로 인터넷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거라고 확신했죠.” 그는 아직도 그때 일을 아내가 준 최대의 선물로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CEO로서 같은 고민을 하지만 각자 회사 내부 이야기는 감춰둔다.
CEO자리가 얼마나 고민과 스트레스가 많은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또다른 걱정을 얹어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웬만한 문제들은 알아서 해결한다.
“흔히들 생각하는 두 회사 사이의 협력이랄까 시너지 효과랄까, 그런 게 별로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것도 좋아요. 오히려 그런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도움, 근본적인 자신감을 주고 서로 믿어주고 하는 것이 훨씬 힘이 돼요.” 조 사장과 정 사장은 서로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그래도 부부라 그런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닮아가는 구석이 생긴다.
그런데 요즘 조 사장은 그게 고민이다.
사실 조 사장은 결혼하기 전에는 TV를 잘 보지 않았다.
아예 TV도 없었다.
“밤 12시면 잠을 잤고 아침엔 조깅을 했어요. 그런데 집사람은 새벽 2, 3시까지 잠도 안 자고 TV를 보고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요. 부부 사이에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이 적용되나 봅니다.
” 조 사장도 어느샌가 TV를 보기 시작했고 시트콤 <세친구> 방송시간을 기다리며 또 TV를 보다 잠이 들고 아침이면 늦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데는 6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 습관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작심을 하고 조깅을 시작했어요. 주말에 산에도 가고요.” 조 사장과 정 사장은 아직 아이가 없어서인지 결혼한 지 3년이 됐지만 신혼 분위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 친구같다.
정 사장은 그런 느낌이 다른 부부들과 다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보통 부부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건 친구 같을 때요. 직원들과 같이 놀러갔을 때 보면 부부지만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서로에 대해 인정하는 거겠죠. 너는 너, 나는 나….” 언뜻 냉정한 듯하지만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는 이런 관계가 일방적 권위나 역할규정에 얽매인 부부관계를 동등하고 독립된 삶의 동반자로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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