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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프로] 윤성진/공연기획자
[나는프로] 윤성진/공연기획자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1.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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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향기 길어내는 참일꾼 한편의 공연이 상연되는 동안 관객의 눈에 비치는 것은 세련된 무대와 화려한 조명, 땀에 젖은 배우겠지만, 이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한편의 ‘예술’로 승화하기까지는 무대 뒤 ‘야전사령관’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 있다.
공연의 모태가 되는 작품 창작자 섭외와 전체적인 공연 컨셉 구상, 무대 기획을 비롯해 홍보와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공연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책임지는 공연기획자가 그 주인공이다.
'지하철 예술공연' 기획 공연예술 전문 기획사 ‘이일공’의 윤성진(33) 대표는 예술공연 분야에서 내로라는 공연기획 전문가로 꼽힌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에 빠져들기 시작한 윤 대표가 본격적으로 현장에 뛰어든 것은 1993년부터이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 문예진흥원 공연예술아카데미 극작·평론반에 들어가 수업을 쌓으면서 조금씩 공연예술에 눈뜨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윤씨의 머릿속엔 연극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졸업공연 기획을 맡으면서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공연기획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고 국내 공연기획의 토양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친 김에 성균관대학교 공연예술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예술경영과 이론을 공부했다.
이왕 시작할 바에야 제대로 배워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은 그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시기라고 한다.
윤성진 대표가 운영하는 이일공은 순수 예술공연을 중심으로 구상과 기획에서부터 진행과 홍보를 도맡아 하는 공연예술 전문 기획사다.
‘21세기 공연예술’의 줄임말인 이일공은 공연 시작 전의 카운트다운을 연상케 한다.
이일공은 98년 2월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국내 최대 규모의 무용축제인 ‘시댄스’(SIDance)를 비롯해 세계공연예술축제, 서울아동청소년공연예술축제 등 굵직굵직한 공연의 기획을 도맡아 성공적으로 개최해냈다.
이런 노력들이 인정돼 98년 3월에는 문화관광부 추천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진행하는 공연의 장르도 다양하다.
무용이나 아동극, 뮤지컬과 마임에서부터 이벤트성 축제 행사까지 상업적 성격이 짙은 공연을 제외한 모든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이런 공연들은 대중성이 약한 탓에 예산이 적고 규모는 큰 행사가 대부분입니다.
광고대행사에서 소화하기 힘든 공연들이죠. 이런 국제규모의 공연예술축제를 소화할 수 있는 공연기획사는 국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 그의 말에서 국내 공연기획사의 척박한 토양과 윤 대표의 고군분투가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윤 대표가 요즘 몰두하고 있는 일은 이일공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지하철 예술공연’이다.
서울시 지하철공사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행사는 지하철 역사를 중심으로 노래와 춤, 연극과 마임 등을 무료로 공연함으로써 일반인이 생활속에서 예술 공연을 쉽게 접하도록 돕는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이 행사는 지금까지 1000회 이상의 공연에 25만명 관람이라는 성과를 올리며 삭막한 도심 지하철역에 예술의 향기를 불어넣고 있다.
유동 인구가 많고 서민들의 이용이 잦은 지하철을 공연 장소로 선택한 그의 아이디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작품에 ‘사회적 가치’ 부여 “공연기획자는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잠깐 생각에 잠긴 뒤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예술가가 예술 자체에 몰두할 수 있도록 돕는 일꾼'이었다.
'공연기획자는 예술가가 아닙니다.
다만 창작가의 작품을 관객에게 전하는 중개인일 따름입니다.
' 그렇다고 예술적 안목이 부족해선 인정받는 공연기획가가 결코 될 수 없다.
좋은 작품을 선정하려면 관련 장르에 대한 기본지식은 필수이며, 작품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기 위해선 창작가와 지속적인 교류도 등한시해선 안 된다.
인맥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나의 공연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작품의 내용과 공연 장소, 공연의 성격이나 관객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장 적합한 작품과 인물을 섭외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이를 ‘예술가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실제로 윤 대표가 연간 참여하는 공연은 대략 100여건에 이르며, 이 과정에서 250여개 공연팀을 만난다고 한다.
공연기획자라고 하면 화려한 무대를 쥐락펴락하는 장밋빛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에 대해 윤성진 대표는 ‘삼디(3D) 직종 중 하나’라고 잘라 말한다.
예술가와 직장인의 세계가 뒤섞여 있는 생활이므로 짬을 내기가 여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의 일과를 들여다보자. 그는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해 공연 문의전화와 사내 업무 결재를 처리하고, 곧바로 외부로 나가 공연 관련 담당자를 만난다.
오후와 저녁에는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공연장에서 현장을 점검하고, 밤이 깊어서야 사무실에 돌아와 하루 업무를 정리한다.
퇴근 시간은 보통 밤 11시 정도라고 한다.
지방 출장 때는 차편이 맞지 않으면 새벽에 집에 들어갔다가 아침 일찍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신의 일을 웬만큼 좋아하지 않고서는 버텨내기 힘들 정도로 고된 일상의 연속이라고 한다.
그토록 힘든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물었다.
윤성진 대표는 '남들이 하지 않아서…'라고 겸연쩍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사명감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학창시절부터 접한 연극에 대한 열정이 더해져 평생의 꿈이자 짐으로 남은 것이다.
편하고 수입이 좋은 일보다는 뭔가 색다르고 도전적인 일을 좋아하는 천성도 한몫했다.
틀에 얽매인 생활을 싫어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자연스레 자신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윤 대표는 말한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을까?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으세요라고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곧바로 질문자의 어리석음을 추궁하는 답변이 날아왔다.
'작품을 만드는 건 창작가나 연출자의 몫입니다.
공연기획자는 작품이 사회에서 유통되고 인정받을 수 있는 토양을 닦는 비즈니스맨이죠. 창작가가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창조한다고 하면, 공연기획자는 작품의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입니다.
예술적 감각과 사업가로서의 안목이 잘 조화된 사람이 뛰어난 공연기획자라 할 수 있습니다.
' '공연예술의 발전은 대중화에 있다'는 게 윤성진 대표의 지론이다.
공연예술 관객이 늘어나고 공연에 대한 거부감과 괴리감이 사라져야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그는 ‘관객에 대한 관심’을 강조한다.
작품의 사회적 가치는 관객과 마주했을 때 창출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관객으로 여기고 주변에서 관객을 만들어나가라!' 공연기획 8년차인 윤성진 대표가 평생에 걸쳐 이루고자 하는 과제이다.

공연기획자가 되는 길

공연기획자는 예술 장르 전반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해당 장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에 공연을 꾸준히 관람하는 습관을 들이고 관련 기획사에서 차근차근 업무를 익히면서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
장기간의 비전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수업을 쌓는 노력도 필요하다.
공연기획 관련 정규 교육과정으로는 추계예술대, 성균관대, 동국대, 단국대, 중앙대 등의 예술경영대학원 과정이 대표적이다.
딱히 장르별로 분과가 이루어져 있지 않으므로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공연기획의 이론과 실제를 폭넓게 배울 수 있다.
사설 교육과정으로는 한겨레문화센터의 공연기획 및 연출 실무 워크숍 과정과 다움아카데미의 공연기획·축제기획·문화행정·예술경영 분과별 실습교육 과정, 예술 및 문화산업 전반에 관한 이론교육 과정 등이 알려져 있다.
진출 분야도 다양하다.
뮤지컬과 춤, 연극, 영화, 콘서트와 예술 축제 등 본인의 관심사에 따라 활동 폭도 넓힐 수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공연기획자는 많지만 아직까지 전문성을 인정받는 기획자는 손에 꼽을 수 있는 실정이므로,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아직까지 소득 수준은 높지 않다.
앞으로 가계 소득이 증대되고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자연스레 문화생활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폭도 넓어질 것이므로, 향후 유망한 직종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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