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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고이즈미식 경제처방의 향배
[포커스] 고이즈미식 경제처방의 향배
  • 이현숙(와이즈인포넷)
  • 승인 2001.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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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한 개혁정책 추진 공언… 금융부실 처리 등 골칫거리 산적해 당분간 시련 겪을 듯 일본의 새로운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과거 총재선거에서 두번의 고배를 마신 그가 드디어 총리 직책을 거머쥐었다.
자민당 최대파벌인 하시모토파의 거목이자 전직 총리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당내 비주류파인 그가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총재 자리에 우뚝 섰다.
이런 이변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은 다름아닌 자민당 내부에 있었다.
바로 ‘개혁파’라는 그의 이미지였다.
변화를 갈구하는 당원의 기대감에 이런 이미지가 부응했던 것이다.
‘긴급 경제대책’엔 불투명한 자세 그동안 자민당은 건설업과 특정우편국 등 업계에 이익을 유도해주거나 기득권을 옹호하는 대가로 표를 얻어왔으며, 하시모토 역시 이러한 계보를 이어가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과거의 고도성장 시대에서 벗어나, 이익분배형 정치가 아니라 불황에 빠진 국가를 되살리는 경제개혁 정책이 필요한 시국이다.
하시모토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잘못 해석해 패배하게 된 것이다.
과거 하시모토 정권 시절의 시행착오가 지금의 불황을 초래했다는 불만으로 가득한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고이즈미는 ‘구조개혁’을 외치면서 인기를 얻었다.
그는 총재선거 기간 중 다른 후보자들과는 달리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경기부양’이 아닌 ‘구조개혁’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고이즈미는 재정 재건을 위해서라면 “앞으로 1~2년 동안은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을 한다고 해도 이를 감수해야 한다”고 발언해 다른 총재 후보들로부터 반발을 사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는 달리, 일각에서는 고이즈미 새 정부가 말처럼 쉽게 경제구조 개혁에 과감하게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을 제기한다.
지금처럼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진 상황에서는 세수가 줄어 재정재건이 늦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경기회복 처방전을 제시하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즉 경기가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진다면 구조개혁 프로그램을 강력하게 추진할 만한 뒷심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여기다 일본 정부여당이 경제개혁을 위해 발표한 ‘긴급 경제대책’에 대해 불투명한 자세를 내비치고 있는 것도 개혁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한 요인이다.
긴급 경제대책은 심각한 일본 재정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마련됐는데, 일본 주요은행이 안고 있는 약 12조7천억엔 규모의 부실채권을 처리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고이즈미는 이를 원칙대로 실행에 옮길 것이라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은행보유주식취득기구’의 설치와 투자가를 우대하는 방향으로의 증권세제 재검토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좋겠다”며 벌써부터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면서 시장 관계자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특히나 7월로 코앞에 다가온 참의원 선거 때문에 고이즈미 새 정부가 갖는 운신의 폭은 훨씬 좁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 언론들에서 그의 경제정책 지도력에 대해 회의 섞인 보도가 나오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칫하면 선거에 패배하고 3개월짜리 정권으로 중도하차할 수도 있는데 섣불리 ‘과감한 개혁’에 나서기는 어려우리라는 회의론이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이런 우려에 반박하듯 새 내각 경제팀, 특히 경제 4인방인 재무상, 경제재정상, 금융상, 경제산업상에 새로운 인물을 입각시키거나 시장의 지지를 받는 인물을 유임시키면서 개혁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줬다.
우선 유명 이코노미스트인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교수가 경제재정상에 기용됐다.
그는 오부치 정권의 경제전략회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고, 일본 경제 재생을 위해서는 마이너스 성장을 감수하더라도 개혁을 철저히 추진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유임된 야나기사와 하쿠오 금융상은 시장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다.
야나기사와는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구조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야나기사와의 유임은 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밖에 경제산업상인 히라누마 다케오도 유임됐다.
한편 재무상으로 기용된 시오카와 마사주로는 ‘의외의 인물’로 지적되기도 한다.
나이가 79살로 각료 가운데 최고령인데다, 재무행정을 이끌어간 경험이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지론인 우정사업 민영화를 지지한 게이오대학 인맥이고, 경제구조 개혁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면서 불거질 자민당 내 알력과 반발을 정치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정치수완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개혁정책 추진에 일익을 담당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기용됐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고이즈미 신임 총리는 666조엔 규모의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연간 국채발행을 30조엔 안팎으로 억제하는 재정재건 노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 그동안 경기부양 정책을 견지해온 자민당 주류노선과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출범 직후 시장 평가 엇갈려 고이즈미 새 정부 출범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엇갈렸다.
총재로서 첫번째 임무를 통해 ‘탈 파벌’이라는 그의 의지를 펼치는 자세를 보여준 탓인지 일단 고이즈미 총리 당선과 함께 일본 금융시장에서는 정치, 경제 전반과 재정에 대한 구조개혁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지표 전반이 안정세를 보였다.
주가는 사흘 연속 상승세를 보이면서 닛케이평균주가가 1만4000엔에 육박하기도 했고, 일부 불안한 조짐을 보였던 장기금리도 안정세를 되찾았다.
하지만 경제팀 조각내용이 시장에 알려진 4월26일에는 야나기사와 금융상의 유임과 다케나카 게이오대학 교수의 경제재정상 발탁은 주가 상승요인으로, 개혁 이미지가 부족한 시오카와의 재무상 기용은 하락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돌았다.
특히 고이즈미 내각 구성원들이 취임 직후 잇따라 엔 약세 용인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엔-달러 환율이 급등해 124엔을 돌파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4월26일 금융 관련 경력이 전무한 시오카와가 재무상으로 임명됐다는 소식만으로도 환율이 장 중 122.11엔선에서 122.57엔까지 급등하는 등 시장반응이 좋지 않았는데, 여기다 시오카와가 “환율은 시장에 맡겨야 하며 정부가 조정에 나서면 안 된다”며 외환시장 불개입을 시사하면서 환율은 123엔대까지 진입했다.
다음날 시오카와는 부랴부랴 “엔 약세를 용인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했으나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다.
여기에다 히라누마 경제산업상이 “엔-달러 환율이 130엔 이상으로 오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 뒤 시장이 130엔 수준까지 상승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서 환율은 123.9엔대까지 진입했다.
근본적으로 구조개혁에 따른 일본 기업의 구조조정은 엔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고, 이 경우 엔-달러 환율이 다시 130엔대로 상승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실 예고한 대로 구조개혁을 실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갖가지 후유증이 나타나고 이를 수습해야 할 것이다.
우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처리가 본격화되고 그 과정에서 종합건설회사 등 부도로 쓰러지는 기업이 잇따라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금융기관은 9월의 중간결산에서 시가회계가 도입되면 자금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기업 도산으로 늘어날 실업자 문제 역시 골칫거리다.
한국에서 재벌 및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수행하면서 겪었던 어려움들이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어려움들을 내다보면 고이즈미 새 정부는 당분간 혹독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 결과에 따라 3개월로 단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파벌을 초월한 당 3역 인선을 통해 그의 의지를 재확인시켜줬다.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파를 배제하면서 하시모토파와 대립하는 YKK 세력 가운데 한명을 기용한 파격적인 인선을 했던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이제 곧 경제 구조개혁을 위해 나설 차례가 될 것이다.
“완고한 자세로 초지일관하는” 성품으로 알려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구조개혁 정책 향방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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