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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정통부의 인터넷등급제 집착
[포커스] 정통부의 인터넷등급제 집착
  • 김윤지
  • 승인 2001.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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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심의에서 삭제된 부분 시행령에 슬쩍 끼워넣자 시민·사회단체 반발
때때로 정보통신부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법안으로 증명하려 할 때가 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부분에 정통부가 나서는 걸 두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혹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영역에까지 정통부의 존재의의를 넓히려 할 때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인터넷내용등급제도 그런 경우 가운데 하나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안’을 둘러싸고 진행된 쟁점은 인터넷내용등급제 문제였다.
정통부의 입법예고안에는 정보제공자가 ‘내용선별소프트웨어’라는 것을 통해 정보 등급을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한다는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많다는 주장에 휩싸였다.
국회 심의과정에서도 논란은 계속되었고 결국 ‘정보내용등급자율표시제’는 삭제된 채 법안이 통과되었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대통령령이 정하는 표시방법에 따라 당해 정보가 청소년유해매체물임을 표시”하도록 한다는 수준으로 축소·변경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4월23일 정통부가 발표한 이 법률 시행령안에서 내용선별소프트웨어는 다시 살아났다.
법안에서 삭제된 조항이 하위법령인 시행령을 통해 부활한 것이다.

법조계와 사회단체는 이 시행령안이 모법의 입법취지를 완전히 무시했을 뿐 아니라 입법기관인 국회마저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안은 정보가 ‘청소년유해매체물임’을 표시하도록 했을 뿐 별도의 기술적 방법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정통부가 ‘표시방법’이라는 의미를 확대 해석해 “내용선별소프트웨어가 인식하여 청소년의 접근이 차단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으로 표시”하도록 한 애초의 입법예고안을 시행령에 슬쩍 끼워넣었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장유식 변호사는 “내용선별소프트웨어에 의해 정보를 걸러야 한다는 것은 본법이 시행령에 위임한 권한범위를 벗어난다”며 이 부분은 삭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기국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이 법안에 반대했던 원희룡 의원측도 “아직 공식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지만 16대부터 법안이 바뀌어 시행령안도 상임위원회에서 다시 한번 통과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논의가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밝힌다.
정통부는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가 오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할 뿐이다.
정보이용보호과 라봉하 과장은 “국회에서 문제의 조항을 삭제한 것은 자율적으로 내용등급표시 서비스를 하도록 유도하자는 취지였다.
이 취지를 살려 특별한 제재조항은 두고 있지 않다”고 밝힌다.
그러나 개정법률안 62조에 따르면 “청소년유해매체물임을 표시하지 않고 영리를 목적으로 제공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내용선별소프트웨어의 문제점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특정 단어가 몇번 이상 들어 있고 특정한 색(살색, 피색)이 몇% 이상이면 어느 수준 이상의 사람만 볼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가 등급을 부여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부작용이 더 많다는 것이다.
지난 4월26일 있었던 ‘인터넷내용등급제 반대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에서 서울산업대 백욱인 교수는 “인터넷의 모든 정보를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사람을 선별해서 처벌하게 될 것이며, 결국은 청소년 보호보다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도 통신품위법에 내용등급제와 같은 조항을 넣었다가 위헌판결을 받은 바 있다.
청소년 보호에는 무력한 반면 오히려 표현의 자유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게 명확하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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